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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동, 주4일제 먼저 시작할 수 있을까?

[차이를 좁혀 평등하고 건강한 노동시간으로③] 주4일 근무제라는 화두

등록 2022.03.12 11:17수정 2022.03.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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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20시간이라도 일하고 싶은 사람 일하게 하자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불안정 노동 시장에서 착취 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 노동을 끝내는 일은 시급하다. 또 한편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 요구를 사회에 던지는 것도 필요하다.

불규칙하고 긴 노동시간은 뇌심혈관계 질환을 야기하는 등 노동자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이 사회는 아직까지 장시간 노동이 퍼져있다. 노동 이슈가 크게 쟁점화되지 못한 이번 대선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비교적 대중의 관심을 끌어낸 노동 공약이었다.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한국에서 주4일 근무제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되자 사람들은 현실적인지 의구심을 내비치면서도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다.

그 흐름에서 주4일제 공약에 대해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과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토론회를 열어 주4일제 노동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이번 대선에서 주4일제 근무라는 의제가 하나 제시되었고 금융업 양 노동조합이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모두가 써야 할 이 우산을 처음에는 일부가 쓸 수도 있지만 차츰 그 범위를 확대해가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황복연 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월 양 노조가 개최한 '주4일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의 의의를 들어보았다. 또 지금까지 금융권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한 시도들,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서 짚어야 할 쟁점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 단축 시도가 일부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두의 장시간 노동 철폐로 이어지는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일견 단순해 보이면서도 쉽지 않은 이 주에 대한 이번 토론회의 취지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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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열린 <주4일제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에서 토론 중인 황복연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황복연 부위원장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우리 사회는 불평등,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주5일제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이 있는 나라죠. '주4일제는 기득권층만을 위한 논의 아닌가?'하는 비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토론회를 하면서는 앞으로 주4일 노동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지만, 당장 주4일 노동 못 하는 노동자들이 주5일제부터 하면서, 이후에 주4일 노동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5년 걸릴지, 10년 걸릴지 모르지만 이 논의는 중요하기 때문에 두 노조가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1금융권을 대표하는 금융산업노조, 2금융권이 많이 포진된 사무금융노조가 불평등, 양극화가 퍼지고 있는 이 시점에 무조건 주4일제 노동을 해야 한다고 토론회를 연 것은 아니었어요. 먼저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고, 주5일제도 못 하는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이 문제들이 더 현실 속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그것들도 바로잡아지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봤습니다."


고질적인 노동강도 문제


자본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몫만을 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두 명이 해야 할 일을 노동자 한 명이 맡게 해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든다. 작년 연구소와 사무금융노조에서 실시한 '사무금융 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1)를 보면 노동자들이 실적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또 증권사 노동자들은 미국 주식 거래를 위해 새벽까지 밤을 지새운다는 답을 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 시도는 고강도 업무 현실에서 벗어나 보자는 의미도 있다. 

"자본은 주 40시간에 더해 연장근로 12시간 이상 일하게 할 수 없으니, 이 시간에 해결되지 않으면 조직 재편, 업무 분장 등을 통해서 생산성을 높이려 하는데 그건 결국 업무 강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일하는 시간을 연장하지 못 하니까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어요.

쉴 수 있는 시간 확보를 위해 노조가 있는 곳은 노조에서 회사에 노동강도 완화 요구를 하죠. 그런데 노동자는 임금 인상, 복지를 기대하고 회사는 더 높은 생산성을 원하죠. 노동강도를 두고 이런 갈등 구도 속에서 실질 노동시간 단축 없이는 제대로 쉴 수 없다고 봤습니다. 노동자 건강권 문제도 있고요."


다양한 노동에는 다양한 과로 형태가 있다. 금융업계 노동자들은 외부에 드러나는 영업시간 전후로 업무가 이어진다. 은행이나 증권업 노동자들은 근무 시간이 끝나도 업무가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노동자들에게 실적 평가는 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비정규직인 보험 설계사들은 영업으로 올린 실적이 소득이 되기 때문에 실적 스트레스와 불안정에 떨어야 한다.

노동자 시간을 빼앗는 사회

금융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었던 일이다. 업무 시간 이후에 어느 때든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연락해 업무 지시를 하던 때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휴식을 방해받고 건강에 악영향을 입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한 것이 바로 피씨 오프제(PC OFF)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고 화면이 잠기는 것이다. 업무 시간 이후 사용을 위해서는 관리자 승인을 받아야만 컴퓨터를 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컴퓨터를 잠가야만 과도한 노동시간이 제어될 수 있었다.

주식시장에서는 점심시간에 분명 휴장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토요일 오전 근무가 사라지자 증권사는 평일 점심시간 휴장을 폐지해버렸다. 노동자들은 점심을 어떻게 먹을 수 있었을까. 마침내 노사가 합의에 이른 것이 바로 점심시간 유급화였다.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던 노동자들은 4시 퇴근으로 사측과 합의하고 노동시간을 비로소 줄일 수 있었다.

"노조 내에서는 하나의 대안으로 교대 근무제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고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는 방안 중 하나로 출퇴근 시간 선택제도 하나의 개선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덜 붐비는 시간에 출퇴근해서 스트레스 줄이는 것만으로도 피로를 줄이고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어요.

사무금융노조는 주4일제 동의는 하나,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대안적으로 주35시간 근무제를 제안합니다. 그 후 주4일제가 되면 생산성 향상,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life balance), 충분한 휴식, 삶의 질 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어 긍정적 의견이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실제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요."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주4일 근무제는 한 걸음에 이루기 쉽지 않다. 임금 하락 문제, 노동자 실적 수준 조정, 하루 노동시간 줄이기 등 노동시간 단축, 주4일제 도입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필요한 시간만큼 인력이 충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을 그 효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일자리 창출은 전 사회가 공감하고 요구할 때 달성 가능하다. 주4일제 논의를 통해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에 문제의식을 던진 만큼 이 주제를 전 노동자, 사회에 확대하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는 길

주4일 근무제라는 하나의 화두가 던져진 만큼 이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런 시도를 통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최근에야 주5일 노동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더 단축하라는 요구를 할 때다. 이렇게 여러 목소리가 등장하다 보면 하나의 큰 요구가 되어 사회 변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지독히도 길던 노동시간을 지나 근무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 결과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하루 8시간 일하고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초과노동을 할 수 없다고 법과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지금 접근할 것은 8시간 안에서 업무 강도 어떻게 낮출 것인가, 업무 강도를 줄인다면 1.5에서 2배 가까운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1~2인 더 충원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씨 오프제 도입으로 근무시간이 정상화 되었다면, 이제는 주4일제(또는 주35시간제) 도입과 업무 강도 정상화를 통해서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이 필요한 거죠. 노동시간 단축은 시도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금융권이 먼저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곳이라도, 공공이건 민간이건 주4일제 시도 하고, 이후 확대하다 보면, 정규직, 비정규직 이분법을 넘어서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담론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자 투쟁의 역사가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잖아요?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도 더 드러낼 수 있고, 노동조건에 대한 하나의 화두를 던지는 의미 있는 시도예요.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법과 제도를 만들어낼 투쟁의 깃발이 올려졌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여러 노동조합에서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을 끊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금속노조 완성차 노동조합에서는 24시간 주야 맞교대제를 철폐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로 변화시켰다. 이후 자동차 부품사에도 영향을 끼쳐 부품사 노동자들의 건강 회복, 일상생활 균형을 이루어냈다.

물론 자동차 업계의 45년 된 주야 맞교대제를 끊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터에 속박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그러한 경험처럼, 장시간 노동을 끊어내자는 노동자와 사회의 합의,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지도록 뜻을 모을 때가 왔다.

1) 사무금융 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21. http://kilsh.or.kr/?p=2692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노보연 상임활동가인 유청희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 3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주4일제 #노동시간 #금융_노동자 #금융_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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