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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에 국산 커피 농장이 있다고?

[인터뷰] 이천 커피가 국산 커피의 기준이 되는 그날을 꿈꾸는, 박혁원 이천커피체험농장 대표

등록 2022.03.30 10:37수정 2022.03.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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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신둔면 마교리에 위치한 이천커피체험농장에서 레드버번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 김희정


이천에서 커피(coffee)나무를 재배하는 농장이 있다고 하여 블로그를 검색했다. 나는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커피 애호가이다. 블로그에서 이런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이천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국내산 커피의 기준이 되는 그날을 위하여~~'

우리나라에, 그것도 내가 사는 이천에서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아라비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말이지. 3월의 어느 주말, 블로그에 있는 전화번호로 박혁원(54) 이천커피체험농장(이커체)대표와 통화를 했다. 마침 그날은 박 대표가 농장에 있다고 해서 바로 체험 예약을 했다. 커피에 관한 다양한 체험 가운데, 커피농장을 둘러보고 이천산 커피를 핸드드립해 마셔보는 것을 택했다. '신의 선물'이라는 커피, 그것도 이천산 커피맛에 대한 궁금증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이천시 신둔면 마교리 마을회관에서 굴다리를 지나 좁은 농로를 따라 둔덕으로 올라가자 드넓은 대지에 비닐하우스 6동이 나란히 있었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자 농장은 온실 속 또 하나의 식물카페 같았다.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시설과 도구, 원두, 다양한 다육식물과 야생화, 바나나·파파야·애플망고·야자·구아바나무 등 아열대과일나무, 그리고 오렌지자스민 모종, 레드 버번 모종 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특히 아열대 나무에 핀 꽃과 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농장을 더 둘러보니 정말로 커피나무가 있었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농장의 총 면적은 2000평, 그 가운데 800평 정도에 키 큰 커피나무가 약 2000그루라고 했다. 모양이 체리를 닮았다 하여 커피체리라고도 불리는 커피열매도 눈에 띄었다.

커피꽃이 지면 그 자리에 초록색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는 품종과 열매가 익었을 때의 색깔에 따라 옐로우 버번(Yellow Bourbon. 노란색), 레드 버번(red Bourbon. 빨간색. 보편적인 커피)이라고 한단다. 농장을 둘러보며 박 대표가 이천에서 커피 수확에 성공하고 커피체험까지 운영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구색 맞추려고 키운 커피나무가 2000그루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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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원 이천커피체험농장 대표는 7년 만에 국산커피 재배에 성공했고 2021년부터 커피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 김희정


- 이천에서 나무농장을 하게 된 계기는.
"이십 대에 서울에서 자동차 관련 프레스 금형 일을 했다. 1997년 IMF로 인해 그 업체가 어려움에 처해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99년 이천에 사는 친척의 권유로 화훼농장인 산하농원(국산 커피 수확에 성공한 2021년부터 이천커피체험농장으로 이름을 바꿨다)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이 농원을 임대해 관엽식물을 키웠고 나중에는 농원을 인수했다. 그 당시 나무 시장은 경제성이 좋았다. 고무나무, 킹벤자민나무, 홍콩야자나무 등 나무가 개업식에 선물로 들어갔고 열심히 일하면 성과가 바로 나타나던 시절이었다."


- 환경에 민감한 커피나무를 키우게 된 사연은.
"커피나무를 재배한 것은 우연이었다. 2000년대 중반 국내 나무 시장은 침체 위기에 처했다. 중국에서 조직 배양된 나무가 국내에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나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때 많은 화훼농가가 폐업했다. 그즈음 화훼농장을 한 이웃이 커피모종을 대량 수입했는데 사정이 생겨 재배하기 어렵게 됐다고 하여 우리가 키워보겠다고 했다.

그땐 단순히 농장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였는데 어느 날부터 우리나라에 커피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관엽식물 시장은 위축돼 갔다. 그래서 '이참에 우리 농장에서 커피나무를 잘 키워서 열매까지 수확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 커피나무 재배에 대해 따로 공부를 했나. 
"커피나무는 우리농장에서 재배한 관엽식물 가운데 하나여서 재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커피 모종부터 시작해 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커피나무 재배에 대해 제대로 배울 곳을 찾지 못했다. 커피로 유명한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아라비카 원산지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등 커피 원산지에 간다고 한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또 그 나라 환경과 우리나라 환경은 너무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원두커피, 맛과 향이 탁월한 아라비카는 주로 에티오피아의 해발 600~2000m의 고산지대에서 재배한다. 그 지역 평균기온은 20℃ 전후이고 기후, 토양, 습도, 강수량 등이 아라비카 재배에 적합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4계절의 특성이 뚜렷하다. 특히 여름은 길고 무덥고 겨울은 길고 춥다. 커피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는 것과 함께,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지역의 토양이나 환경에 맞게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나무를 키우면서 직접 실험하고 관찰하고 그것이 합리적인가 생각해보고 적용하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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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신둔면 마교리 이천커피체험농장에서 옐로우 버번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 김희정


- 커피나무 농사를 지은 지 8년째인데, 그동안 좌충우돌한 사연이 궁금하다. 
"커피나무 농사를 지으며 시행착오가 많았다. 열매가 열릴 즈음 열매 틈 사이에 하얀 깍지벌레가 생긴다. 이 벌레를 잡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비싼 약을 구입 해 뿌린 적도 있고 친환경 약이라고 해서 직접 약을 만들어 스프레이로 뿌려본 적도 있다. 집게로 일일이 잡아 본 적도 있는데, 고생한 것에 비해 효과를 거의 못 봤다.

그렇다고 해서 벌레를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지금은 약을 뿌린다. 다만, 횟수는 적다. 비료가 커피나무 성장에 좋다고 하여 묘목에 실험을 한 적도 있다. 비료를 준 묘목은 이파리가 누렇고, 주지 않은 것은 초록색이었다. 커피는 환경에 예민한데 평소 안 주던 양분을 많이 줬으니 탈이 난 것이었다. 그 후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에 먼저 샘플링 작업을 한다. 그리고 커피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지면 그대로 둔다. 그 이파리가 나무를 키우는 양분이 된다. 농장 주변은 지천이 낙엽이다. 그것도 거름으로 사용한다. 풀도 나무하고 같이 살게 한다. 이천 스타일 커피재배법이다."

- 커피열매 수확 시기는.
"커피 수확은 보편적으로 3월~7월 사이에 한다. 꽃은 주로 3월~4월 즈음 예고 없이 피는데 무척 아름답다. 꽃은 피어있는 시간이 짧다. 찰나를 잘 포착해야 볼 수 있다. 열매는 사시사철 열린다. 실내 온도가 연중 일정하기 때문이다."

- 농장의 실내 온도는 어떻게 맞추나.
"실내온도는 연 평균 15도로 일정하게 유지한다. 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높아지는데 우리나라 여름 날씨에도 적응해보라고 그대로 둘 때도 있다. 하지만, 바깥 온도가 35도 이상일 경우 비닐하우스의 비닐은 모두 열고 대신 비닐하우스에 설치한 커튼으로 농장을 덮는다. 커튼이 햇볕 차단막과 그늘 역할을 해 실내 온도가 2도~3도 정도 떨어진다. 겨울에는 비닐 위에 커튼을 덮어주면 실내 온도가 조금 올라간다. 그래도 유지비와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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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나무꽃은 3월~4월에 피는데 피어있는 시기가 짧아 찰나를 포착해야 볼 수 있다. 향기롭고 아름답다. ⓒ 김희정


- 연간 커피 수확량은 어느 정도인가.
"해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커피체리(열매)를 기준으로 했을 때 5톤~7톤, 생두를 기준으로 500kg~700kg 정도이다. 국산 커피 농가 중에서 많은 양을 수확하는 편이다. 생두를 로스팅하면 양은 더 줄어든다. 국산 커피 가격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 커피나무 재배 농가에 국가의 지원이나 혜택은 없나.
"없다.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농가가 적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한 수입으로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국산 커피 농가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커피나무에서 열매가 열리기까지 3년, 그 열매의 과육을 벗기면 두 개의 씨앗이 나오는데 그 씨앗을 육묘상자에서 발아시키고 모종을 만들어 다시 땅에 심고 키워 열매를 수확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아내(최경화)와 둘이 손수 작업했다.

씨앗을 건조 후 볶은 (로스팅)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두커피이다. 때문에 커피에 대해 공부하려는 사람들한테 국산 커피의 기본부터 다양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에 있어 보이지 않듯, 현장에서 터득한 기본기는 책에서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지식이 가정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 커피 한 잔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어제와 오늘의 마음이 수시로 바뀌면 나무 일을 하기 어렵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 일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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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열매가, 육묘상자에서 심을 수 있는 씨앗이 되기까지 변천 과정. 이천커피체험농장에서. ⓒ 김희정


- 복잡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나무를 보고 힐링한다. 20여 년 이상 나무와 함께 살아왔는데 대표님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인가.
"가야할 곳,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한 번 더 고민하게 하는 존재이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진도이다. 농장 일을 하면서 고향에 두세 번 정도 간 것 같다. 나무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를 괴롭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대로 사는데, 나는 나무를 예쁘게 다듬고 변형해보고 실험한다. 나무 입장에서 내가 적일 수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보는 시각은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듯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 커피나무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분들한테 팁을 준다면.
"커피나무를 잘 키워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권한다. 커피는 파종부터 시작했을 경우 보통 4년 후부터 열매가 열린다. 국내에서 나온 씨앗이나 수입산 씨앗으로 커피농장을 시작하시려는 분들이 있다. 그럴 경우 초기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7~8년 정도 고생해야 한다.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 시행착오,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견디고 기다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다. 수입산 씨앗의 발아율이 낮은 것도 문제이다. 우리 농장 커피나무 아래를 보면 열매가 익어서 저절로 땅에 떨어진 후 싹이 난 것이 많다. 나무는 씨앗이나 모종 가격보다 비싸지만, 키울 때 고생은 덜 한다."

"커피나무를 잘 키우는 농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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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상자에서 발아하여 화분에 옮겨 심은 레드 버번(커피 열매가 익었을 때 빨간색) 모종. ⓒ 김희정

 
국산 원두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팁은.
"원두는 볶은 후 3일 정도 숙성된 것이 맛과 향이 좋다. 볶은 후 바로 내려 마시면 맛이 텁텁하고 역한 향이 난다. 원두에 가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입산 고가의 귀한 원두도 아껴 드시는 분이 계시는데, 원두는 과감하게 마시는 게 좋다. 시간이 흐르면 맛도 향도 변한다."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커피나무를 잘 키우는 농부가 되고 싶다. 이천에서 생산한 커피가 국내 커피의 기준이 되어 '국산 커피, 정말 신선하고 맛있다'라는 평도 듣고 싶다. 커피나무 아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식물카페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 아내는 이천쌀빵을 만드는, 제빵기술도 배우고 있다."

지난 2월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에 커피(생두, 원두, 캡슐, 인스턴트믹스 포함)를수입해 해외로 나간 외화가 9억1648만 달러(약 1조1190억 원)가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2019년도 비해 24.2% 증가한 금액이다. 또,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커피음료점은 2017년 4만4305곳, 2021년에는 8만3363곳이라고 한다. 국산커피 농가 지원과 국산커피나무 재배 활성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이다.

농장의 커피나무 이파리는 윤기가 흐른다. 수만 그루의 모종도,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주인의 사랑과 수고없이 어찌 저 혼자 저절로 자랐겠는가. 농장을 둘러본 후 이천산 커피를 핸드드립해 한 모금 마셨다. 향은 입 안에 가득하고 맛은 신선하다. 식어도 맛있다. 지금도 생각난다. 이천커피체험농장은 여러 종류의 커피를 혼합하지 않는다. 이천산 오리지널 맛을 고집한다. 커피열매 과육을 말린 카스카라차도 맛있다. 커피열매 따기 체험은 4월 중순 경부터 가능. 농장에 문의.
#이천커피 #이천커피체험농장 #식물카페 #농업 #핸드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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