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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육지 사이,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세상

[기후위기 최전선, 제주바다 인터뷰 ④]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

등록 2022.04.07 06:04수정 2022.04.0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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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웅덩이를 촬영하고 있는 임형묵 감독 ⓒ 임형묵

 
화산섬인 제주에는 파도에 잠겼다가 드러난 갯바위 사이에 웅덩이가 참 많다. 대개는 이 바닷물 웅덩이를 지나 저 멀리 수평선과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데, 카메라를 들고 가만히 엎드려 웅덩이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 뷰파인더를 통해 그가 바라본 모습은 무엇일까.

제주 조간대(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지역)의 다양한 생태를 담은 영화 <조수웅덩이: 바다의 시작>(2019)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연출·제작한 임형묵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을 지난 2월 중순, 제주 평대리 중동마을 작업실에서 만났다.

- 안녕하세요, 제주 조수웅덩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제주에 내려와 자연다큐 제작에 전념한 지 어느새 14년이 됐네요. 이전에는 서울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영상 프로덕션, 방송국, 광고 분야에서 촬영감독으로 일했어요. 한동안 프리랜서 촬영감독으로 일했는데, 업무 특성상 일이 들쭉날쭉하게 들어와 늘 아슬아슬한 느낌이었어요. 이대로는 내가 원하는 영상 작업을 하면서 못 살겠다는 생각에 지치기도 했고요. 그러던 참에 2008년에 EBS 자연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팀 제안으로 '자연의 길, 올레' 편 촬영을 맡게 된 것이 전환점이 되었어요.

처음부터 조수웅덩이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주에 내려온 것은 아니에요. 이 프로그램 마지막 편 촬영을 하러 제주에 내려와 성산일출봉 조간대 주변 생태를 기록하던 중 곳곳에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가 눈에 들어온 거죠. 무심코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 놀라운 세계가 있더라고요. 다양한 생물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끊임없이 보였어요. 제주의 조수웅덩이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 영화를 전공하셨다고 했는데, 그 무렵부터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꾸셨던 거예요?

"훨씬 전이에요. 제가 네 살 무렵 무거운 장비를 메고 바닷속을 누비는 흑백 TV 속 스쿠버다이버 모습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했던 게 생각납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특히 물고기를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낚시할 때 옆에서 잡은 물고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집마당에 있던 작은 연못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 내내 제 기억 속엔 물고기가 있어요. 영화를 전공한 것도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갈망이 있어서 선택한 거였어요."

- 갯바위 사이 조수웅덩이를 촬영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아주 작고 느린 존재가 되어서 들여다봐야 해요. 퇴적물이 많아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부유물로 물이 흐려져서 숨어버리거든요. 수심이 얕아서 따라다니기도 어렵고요. 한 자리에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촬영을 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촬영량도 많고, 몇 시간씩 물속에 엎드려 있는 건 예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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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웅덩이를 촬영하고 있는 임형묵 감독 ⓒ 임형묵

 
- 저는 사실 그저 바닷가 물웅덩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제주 조수웅덩이에 관심을 둔 이유가 궁금해요. 조수웅덩이 속 놀라운 세계를 보셨다고 했는데, 그 특징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일단 스쿠버다이빙을 하지 않아도 돼서 돈이 안 들고, 제 성향상 남들이 관심 안 두는 영역에 더 끌리기도 하고요(웃음). 밀물엔 잠겼다가 썰물이 되면 드러나는 지역, 조간대를 흔히 갯벌이라고 하지요. 갯벌(갯가에 펼쳐진 너른 벌판)은 끈적하고 질척거리는 펄로 된 공간만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펄, 모래, 자갈, 바위로 이뤄진 곳 모두 갯벌이에요. 제주는 암반 갯벌(조간대) 모습이 평평하면서 갈라진 틈도 많고, 굴곡과 구멍이 많아 생물이 서식하기에 좋거든요. 조수간만의 차도 2m 정도라 곳곳에 조수웅덩이가 형성되어 지형과 생물상 등 관찰할 게 많아요. 제주 바다의 암반 갯벌은 면적 대비 생물다양성이 정말 뛰어납니다. 이 공간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작은 공간에 집약된 다양성과 생태를 보면 이곳이 훼손되지 않고 유지되길 바라게 돼요."
 
 
- 제주도 대표적인 조수웅덩이 지역을 꼽으라면 어디일까요? 대표적인 생물도 궁금합니다.

"제주도 대부분 지역에서 조수웅덩이를 관찰할 수 있는데, 바위 조간대가 넓게 퍼져있고 인공적인 시설이나 훼손 없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곳들이 몇 곳 있어요. 성산일출봉 서쪽 해안 작은 선착장 옆 편평한 암반 지역엔 크고 작은 조수웅덩이가 많습니다. 다른 곳보다 해조류가 많아 어린 물고기도 많고요. 보목동 소천지, 중문 예래마을 암반 조간대도 조수웅덩이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에요. 대정읍 신도리엔 마치 일부러 파놓은 듯 원형의 둥근 웅덩이 세 개가 나란히 있어요. 태풍이 지나간 후엔 웅덩이에 큰 물고기가 갇혀 있기도 합니다.

조수웅덩이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물고기는 점망둑이에요. 바위 굴곡과 틈 사이에 살기 좋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다에 잠겼다가 햇볕에 노출도 되는 공간이라 온도 차가 큰 극단적인 환경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점망둑은 염분이 아주 높거나 낮거나 산소가 부족하다든가 어떠한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의연합니다. 두줄베도라치, 앞동갈베도라치, 풀비늘망둑, 동갈자돔, 범돔 등 물고기와 납작게, 사각게, 바위게, 참집게, 갯강구, 갯지렁이, 고둥, 군부, 갯민숭달팽이, 말미잘 등 나열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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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묵 감독 ⓒ 녹색연합


- 제주 조간대 생태와 그 가치를 기록하고 계신데, 지금 제주 바다는 연안 매립과 오염, 수온상승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조간대와 조수웅덩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문제는 개발 계획 인허가권을 가진 정부와 지자체가 조간대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바다는 육지 끝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게 아니거든요. 조간대라는 중간 지역이 있어서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 완충 역할도 하고, 어린 물고기들도 자랍니다. 다양한 생물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생태가 다양하다는 것이고 잘 지켜야 하는 곳이고요.

'습지'라고 하면 육상에 있는 습지만 떠올리는데, 제주바다의 모든 조간대가 람사르 습지(습지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근거,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정, 등록, 보호하는 곳) 조건에 들어맞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암반 조간대로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만 그 가치를 모르죠. 여전히 크고 작은 매립과 해안선 파괴가 일어납니다. 제주바다 조간대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지막 장소임을 인식하고,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물론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손을 놓으면 의미가 없고, 관리를 해야겠지요. 오름 휴식년제처럼 조간대 휴식년제가 도입되는 것도 좋고요. 해양쓰레기 수거 역시 특정 업체에서 독식하는 게 아니라, 운영 방식을 바꾸어 각 마을 협동조합이 관리하게 하는 것도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활동가입니다.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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