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고 설립과 시범 농장 일에 힘을 보태다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청계천 수표교 근처에 새 집을 짓다

등록 2022.04.11 10:50수정 2022.04.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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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푸트 공사는 내가 자기의 부관이나 통역관처럼 지내주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공사관을 벗어나 지내려고 하자 푸트 공사는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며 직접 소통해야겠다는 나의 결심은 강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공사관을 탈출하고자 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예기치 않았지만, 푸트 공사 부인때문이었지요. 그게 무슨 사연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를 보면 알 거예요.

서광범 등의 주선으로 나의 집을 지을 부지가 마련된 곳은 청계천 수표교 근처의 입동 가촌골이라는 곳이었습니다. 1884년 7월 22일 나는 신축 공사를 감독하던 중에 이런 편지를 쓰고 있었지요.

"서울 입동 가촌골(Kachon Kol, Ip-tong). 부모님께, 이 편지의 주소가 생소하실 겁니다. 조선인들이 저를 위해 서울에 새로 마련해 준 주소랍니다. 저는 아직 이곳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서 보내면서 공사 인부들을 감독하고 있지요. 우편물 송부하는 날이 다가왔기에 만사 제쳐 놓고 조선인들 가운데에서 공사장에 앉아 서둘러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랍니다.(중략)

공사관에서 푸트 부인은 저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답니다. 부인은 남부 출신으로 키가 크고 멋지게 생겼습니다. 기다란 윗 입술이 위에는 수직의 금이 많이 그어져 있지요. 그녀는 상냥하지만 입이 거칩니다. 여성들이 잘 쓰지 않는 그런 말을 합니다.게다가 야회복이나 반 코트 등을 입을 때에는 노출이 너무 심하여 민망스러울 정도이지요.

그녀는 스웰 드레스swell dress(부푼 치마)를 입을 때에는 여러개의 다이아먼드를 달고,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합니다. 그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충분히 짐작하실 겁니다....... 문제는 그녀가 제 방을 점검한다는 점입니다. 친절도 하지요. 그러나 저는 그녀가 저의 트렁크나 옷장까지 검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한 차례로 그치기는 했지만요.


그녀는 늘 저의 공무활동에 시시콜콜 참견을 한답니다. 그리고 제가 자기의 부관인 것처럼 말한답니다. 저는 참을 수 없어 그녀에게 외교 업무에서 부인의 위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그녀가 신랄하게 쏘아붙였습니다. 그 결과 제가 공사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요.

저는 애시당초부터 다른 이유로 공사관을 떠나 살려고 했지만 푸트 공사가 그토록 친절하고, 떠나지 말라고 거의 간청하디시피 한 까닭에 머물러 있던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이제 공사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치마 바람의 지배를 받아보지 않아서 지금 그걸 견디기 어렵다는 점을 공사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습니다. 공사도 저를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아마도 궁금하실 거예요. 원래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서울에 한 달 정도 머물고 나서는 지체 없이 내륙 탐사를 떠날 요량이었지요. 그러나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중략)

조선 정부가 자주 여러가지 일을 부탁하는 통에 여지껏 내륙 여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답니다. 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했는데 그들은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보관 관리하는지를 모릅니다. 국왕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함에 따라 저는 했무기 저장에 적합할 건물의 설계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일이 끝난 지금 저는 조선 사절단이 미국에서 가져왔던 농작물 종자를 재배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답니다. 그 일은 제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시작되었답니다. 이 나라에선 아무도 양배추, 토마토, 감자, 비트, 옥수수, 사탕수수를 모릅니다. 우리에겐 일반적인 것들인데 말입니다. 저는 또한 낙농업을 제안하여 추진 중입니다. 아울러 수력 발전을 위한 물레방아도 추진중이구요. 이러한 일들을 모두 일개 水兵이 해야 하다니요. 그런데 아마 우리 해군부에서는 마뜩치 않아 할 겁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은 서양인의 생활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는 정말 갓난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가장 사소한 세부 사항까지 설명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 일을 제가 모두 혼자서 다 해야한답니다. 제가 조선인들과 직접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국인이니까요. 앞으로도 해 보고 싶은 사업이 너 댓 가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다 하게 되면 제 몸은 부서져버릴 거예요. 제가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아무 일도 될 수 없는 데에다 사업 장소가 각기 서로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이리 저리 옮겨 다녀야 하니까요. 지난 스무 날 동안 매일 저는 밤까지 그렇게 일을 하였답니다……"


지난해 1883년 9월 19일 조선 사절단 일행은 보스턴 방문시에 근대식 시범 농장인 월코트 시범농장 Walcott Model Farm 등지를 방문한 사실이 있었지요. 그들은 그 때 미국의 농업 기술 및 경영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절단은 미국으로부터 타작기, 탈곡기, 쇠스랑, 서양식 저울 등 농기구를 구입해 선편으로 조선에 보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절단 중에 민영익의 경호를 맡았던 무관자격의 최경석이 유별나게 농업과 농기구에 강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 신문들은 최경석을 농업전문가로 소개하기도 하였지요. 내가 서울에 와 보니 바로 그 최경석이 서울 근교에서 시범 농장을 시작했더군요. 이와 관련, 고종은 시범농장으로 서울 부근의 큰 땅을 배정해 주었구요.

8월로 접어들자 청계천 나의 집이 거의 완공되었습니다. 나는 8월 8일 입주하였는데 그 이틀전인 8월 6일 조선 친구의 안내로 교외의 절을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찰 건물은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식사도 사찰식을 하였지요. 아주 멋진 곳이었어요. 특히 밤이 되자 달빛이 교교해서 환상적이었습니다.

그곳 스님들에게 내가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하니까 나를 공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나는 평소 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스님들과 불교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조선 불교를 탐구해 보고 싶은 생각을 들었습니다. 불교가 어떤 면에서 과학적인 세계를 발전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지요.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조지 포크 #푸트 공사 #시범 농장 #수표교 #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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