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간의 오묘한 연정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탄하지 않는 이유

등록 2022.04.18 10:11수정 2022.04.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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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마틴 키마니 (Martin Kimani) 대사 연설 중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큐탄하고 있다. ⓒ 유튜브 생중계 화면 캡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거의 두 달 째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습 공격한 초기에는 전세계가 충격을 받고 많은 국가들이 인도주의적인 시선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지원을 약속하며 양국의 피해가 최소화 되기를 기대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지속되자 세계 각국은 전쟁으로 인한 자국의 정치, 경제적인 손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의 무역 공급망 차질로 전세계의 유가가 치솟고 있고 밀 공급의 중단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난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에서는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 중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를 규탄하는 데 있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논쟁에 불을 지폈다. 지난 7일 유엔총회에선 러시아를 인권 이사회에서 퇴출하는 투표를 진행했는데, 193국가 중 141국가가 지지한 반면 5개국은 반대하고 12개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여기서 54개 아프리카 국가들 중 16개국은 기권하였고 9개국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 즉 절반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 전쟁에 대해 중립을 표명한 것이다. 물론 비상임 이사국인 케냐의 마틴 키마니(Martin Kimani) 대사는 현 상황을 아프리카 국가들의 아픔에 빗대어 러시아를 강력히 큐탄하기도 하였다. 
 
"케냐, 그리고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는 제국의 종말로 탄생했고, 그 국경은 우리가 그린 게 아니었습니다. 국경은 저 멀리식민 종주국의 대도시인 런던, 파리, 리스본에서 그려졌고 그들이 쪼개 놓은 고대 국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죠. (중략) 만약 독립할 때 민족과 인종, 종교가 같음을 기준으로 국가를 세우기로 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도 전쟁을 벌이며 피 흘리고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경이 만족스럽기 유엔의 헌장을 따르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가 가진 더 큰 위대함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케냐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문제에 강력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합니다. 또한 우리는 최근 몇 십 년간유엔 안전보장위원회 회원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음을 규탄합니다. " (마틴 키마니(Martin Kimani), 아프리카니스트 번역 부분 인용)
 
 
그의 평화주의적 발언은 가슴 아픈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와 오버랩되며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러시아에 대해 중립적인 표명을 하거나 심지어는 반대표를 던진 (에리트리아)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은 미국, 유럽의 패권 주의의 상징인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나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다. 최근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라마포사는 지난 몇 년간 NATO가 서방 중심 체제를 벗어나 동방 세계의 평화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발언하며 NATO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사실 더 중요한 요인은 2018년 이후 정치, 경제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가속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과 2020년 사이에 러시아의 총 무기 중 18%는 아프리카로 수출되었다. 작년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양대 국가,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는 모두 러시아와 천문학적인 금액의 무기 협약을 맺었다. 

2019년 10월, 러시아-아프리카 서밋이 소치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아프리카 30여 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했다. 이 때 140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이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지배 관계에서 탈피해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나섰고, 그 방안으로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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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소치에서 열린 첫 러시아-아프리카 회담 푸틴의 양쪽에는 이집트 대통령과 남아공 대통령이 서있다 ⓒ Kremlin Press Office

 
예로 서아프리카 말리에서는 2020년에 군부 세력이 프랑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장기 집권하고 있던 대통령을 몰아냈다.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이미 러시아와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올해 1월부터는 300여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말리의 수도인 바마코(Bamako)에 주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프리카 연합 및 국제 사회는 쿠데타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지만 놀랍게도 대다수의 말리 시민들은 군부 세력을 환영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한 후에도 지속된  프랑스의 정치, 경제적 지배의 굴레에 대한 염증이자 러시아와의 관계를 통해 자주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시로 보여진다. 

물론 아프리카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들 입장에서 어차피 막강한 서방 강대국들과 중국 등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면, 러시아를 새로운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단 점에서 그들의 선택이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또다른 위협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서민들의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022년 기준 우크라이나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은 만 육천 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의과 대학 학생들이다. 유럽, 미국 등에 비해 우크라이나 학비가 저렴하면서도 교육 수준이 높고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관문이라는 점 등이 아프리카 학생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아프리카 유학생들로 인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반기는 편이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젊은 학생들의 꿈도 폭격 받은 건물들처럼 무너졌다. 일부는 본국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폴란드 등 인근 유럽 국가로 피난을 가고자 육로 국경을 통해 기차를 타려 했지만, 우크라이나 당국, 군인들로부터 치명적인 차별, 구타 등을 당했다. 아무리 학생이라고 설명을 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한 나이지리아 학생 증언에 의하면 기차에 올라탈 수 있는 순서가 우크라이나인, 인도인, 그 다음이 아프리카인으로 마치 인종 계급이 매겨진 것 같았다고 했다. 기차에 오르지 못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차역 플랫폼 바닥에서 며칠 동안 쪽잠을 자며 기다려 겨우 피난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폭행, 차별에 대해 BBC, CNN 등이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알렸음에도 우크라이나는 이에 대한 성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아프리카가 소외되고 차별 받는, 서방 세계만이 관심을 갖는 정치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왜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느냐고 묻지 말고, 유럽인들의 제국주의로 인해 아직도 내전, 기근, 파괴에 시달리는 국가들에 대한 책임에 대해 먼저 대답하라고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린스키가 아프리카 연합(AU)에 연설할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국제 사회에 대한 호소가 과연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그의 인도주의적 호소가 아프리카인들도 포함되는 의미가 될지 궁금하다.
#아프리카 #우크라이나 #러시아 #아프리카정치 #류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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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10 여국을 경험하고, 나이지리아에서 7년 거주 후 국내외에서 공적, 민간영역에서 ICT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 중 아프리카의 정치, 경제에 대해 강의, 블로그, 컬럼 등을 통해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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