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에 전철에서 만난 장애인 시위를 떠올린다

[주장]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 들어줄 때도 되었다

등록 2022.04.20 09:56수정 2022.04.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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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4호선 혜화역까지 이동하는 25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장연은 지난해 말부터 이달까지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 등을 요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24차례 벌여왔다. ⓒ 유성호

 
지난 3월 어느 날, 충무로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기다리는 3호선에서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열차 운행이 상당 시간 지연된다는 방송을 몇 분 사이에 3번 씩이나 한다. 굳이 불법시위라고 콕 집어 말한다.

몸도 불편한 그들이 오죽하면 그러겠나 싶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좀 들어주면 안 되나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비장애인들에게만 미안함이 묻어난 안내 방송에 '저렇게 밖에 말 못 하나?' 하는 섭섭함이 일어난다.

내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들의 절실함은 내 약속 시간 늦는 안타까움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 불편과 간절함에 조금은 공감하기에 기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을지로 쪽에서 오는 전철의 대기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들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줄 서서 기다리거나 바쁜 사람은 버스를 타기 위해서인 듯 나가기도 했지만.

충무로역에서는 장애인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정리 집회를 하려는 듯 전철 승강장 공간에서 플래카드를 부착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둘레를 역무원인지 용인인지 알 수 없는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둘러싸서 다른 승객들과 차단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바쁜 손길을 보며 울컥했다. sns에 올리기 위해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차마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낼 수 없었다. 그들의 처절한 행동에 관찰자의 입장으로 렌즈를 갖다 대는 행동조차 미안해서였다.

다음날 언론을 통해 한 젊은 정치인이 현장에서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은 이 정도의 장애인 시위를 가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갈라치기하는 언동을 보았다. 불법이란다. 전장연이 인수위와의 면담 후 일단 전철 시위를 멈추고 대신 삭발 투쟁을 한다고 했더니, 곧 집권당의 대표로 변할 젊은 정치인은 전장연이 패배했다고 고춧가루를 또 뿌린다. 미국 유학까지 한 사람이 미국 흑인과 장애인들의 차별 철폐 노력도 모르나 싶다.
   
로자 파크스의 불법 행위가 미국을 변화시켰다


1955년 앨리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탔던 그 버스를 내가 백인이 되어 타보는 상상을 해본다. 모든 공공장소의 흑백 분리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한 흑인 여성이 법을 어기고 있는 그 버스에 하필 내가 타고 있었으니 참 운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꼴 보기 싫어서 내리고 싶지만 다음 버스를 타면 지각이니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빨리 기사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데 그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백인 승객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려면 내리라고 겁을 주지만 당돌한 그 여성은 겁먹은 채 버티고 있다. 이미 출근 시간은 늦어 버렸다.

나는 선량한 사람이긴 하지만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좀 억울한 점이 있어도 법은 지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언젠가 법이 고쳐진 후에 그 자리에 앉으면 되지 않나' 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편을 끼칠 권리가 그 여성에게 있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번만 그냥 참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런 불법 행위를 방치하면 그 많은 흑인들이 다 법을 어길 것이 뻔하고, 그러면 우리 자리를 잃게 되니까.
결국 나는 그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르려는 성질 급한 사람들을 말리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을 폭력으로 쫓아내면 불법 행위는 보지 않고 폭력 행위만 부각되어 흑인들을 부추기는 세력들에게 빌미를 주니 그냥 경찰에 넘기자고 설득하면서 말이다. 결국 여성은 경찰에 잡혀가고 우리는 버스를 출발시켜 그 여성를 욕하며 가고 있겠지. 그 후 세월이 흐른 뒤에 인권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면서 부끄러워 하기는 하겠지만.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뒤쪽의 흑인석에 앉지 않고 백인 좌석에 앉아 백인에게 양보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법으로 분명히 불법이었다. 흑인들의 이런 불법은 백인들에게 많은 불편과 불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경찰이 불법 행위로 이유로 체포까지 하였다. 지금은 흑인이 버스의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아무도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데 말이다.

백인들이 정한 법을 어긴 분명한 불법 행위 때문에 탄압을 받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한 여성의 우발적이고 억지스러운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약한 여성 한 사람의 작은 불법 행동이 미국 사회를 깨웠다.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이 불법 시위와 불법 등교 거부, 버스 탑승 거부 등의 투쟁을 하게 하였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인종 간 버스 좌석 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승객을 차별한 것이 불법이었고 오히려 그녀의 행동이 합법이었던 것이다.

남아공 만델라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역사상 모든 차별에 대한 철폐는 불법으로 시작하였다. 역사는 만델라가 불법을 저질러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그를 감금한 것이 불법이라 판정하였다. 경우에 따라 불법과 합법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

1955년보다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은 인권에 대한 인식이 그때보다 훨씬 더 성숙해 있어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누구라도 백인이 되어 저 버스를 탔다면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인종 차별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들의 행동으로 인한 내 불편만 짜증스러워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지 않은가.

1955년도의 인권 감수성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수는 없다.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장애인들의 절실함을 내가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의 불편은 겪을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들의 권리는 늘 침해받고 있다

불법이란 말이 나온 김에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관련한 이야기 하나 더 해본다.
인종 차별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진전이 되어 흑인 대통령까지 나오게 된 미국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시설이나 법률도 꽤 잘되어 있다 들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1년에 버스에 리프트를 설치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었으니 참 좋은 나라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이나 법률이 아직 미국의 80년대 수준도 못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때 미국에서는 법이 있어도 운전자가 지키지 않고 시설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으니 고장 나거나 바쁜 시간에는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장애인들이 승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것보다 한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서로(?) 좋은 것이라 누구나 생각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한 사람의 장애인이 또 미국을 바꾸었다. 데니즈 메크에이드라는 여성 장애인이 그랬다. 1981년, 휠체어를 이용하는 데니즈 메크에이드는 맨해튼행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리프트 열쇠가 없다는 이유로 버스기사가 승차를 거부하였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리프트를 사용하지 못할 사정이 되었고 출발 시간은 되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장애인 한 사람이 불편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더라도 그 사람의 처지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내 갈길도 바쁘니 적당히 방관하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었겠지.

데니즈 메크에에드는 달랐다. 그는 당연히 버스표가 있으니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7시간 넘게 버스를 못 가게 점거하였다. 그를 말리고 설득하는 사람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장애인이면 집에 가만히 있지 뭐하러 돌아다니느라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냐고 말이다. 한국의 장애인들이 특히  많이 듣는 이야기처럼......

그녀는 그랬다. "장애인의 권리는 매일 침해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와 같이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한 번뿐인 일이다. 여러분은 불편하더라도 한 번쯤 참아 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7시간이 넘게 버스를 점거한 뒤에야 버스터미널 관계자가 사과하고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교통약자가 편리하고 안전한 미국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간 맞춰 가야 하는 버스를 막고 있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 버스표를 가지고 버스를 탈 권리가 있는 승객에게 승차를 거부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런데 해결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렇게 하면 된다.

버스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전철을 지연시키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도 승객으로서 전철을 탈 권리가 있지 않는가. 그들이 한꺼번에 타느라 늦어지더라도 그 승객들이 안전하게 탄 후에 떠나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때 우리의 권리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전철 조금 늦어지는 불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 동생 이야기를 하나 보탠다. 뇌병변(뇌성마비) 장애인인 여동생은 부모님 돌아가신 후부터 20년 넘게 요양원에 있다가 장애인 자립센터와 연결되면서 자각이 일어나 요양원을 나오게 되었다. 오빠 입장에서 처음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힘으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 자립은 어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활보조인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시간 제한도 있어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몇 년을 두고 생각을 굳힌 동생이 하도 우겨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이 되었고 나중에 요양원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나 염려되기도 했다. 지금은 내 만류 때문에 자립생활이 늦어진 게  미안할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그 동생이 주위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을 잘하고, 혼자 힘으로 장애인 임대주택에도 들어가고, 몇 년에 걸쳐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합격하였다. 작년에 회갑을 넘긴 동생이 금년에는 나사렛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대학 졸업 후의 꿈도 가지고 있다.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과도 함께 소통하며 지내는 지금이 동생에게는 지난 세월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이다. 개인 가정사이긴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장애인들의 삶은 비장애인들보다 더 치열하다. 내 동생의 경우를 보더라도 위험한 세상(?)에 나와 도움을 받아가며 이동을 할 수 있었기에 이런 성취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이 세상에 얼마나 큰 변화를 줄지 모르지만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세상은 그 방향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말로만 선진국 타령 말고 이런 것부터 선진국 흉내라도 내었으면 좋겠다. 멀쩡한 대통령 관저, 집무실 옮기는데 쓰는 돈보다 더 급하지 않을까?

20년 넘게 외롭게 외쳐온 함성을 이제 들어줄 때도 되었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집이나 요양원에만 있지 않고 더 큰 세상으로 나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오늘 장애인의 날을 맞아 비장애인들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그들의 행동을 지지하면서 함께 불편을 참는 인내 정도는 그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게시한 글입니다.
#장애인이동권 #장애인차별철폐 #장애인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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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한국 근대문화유산과 교육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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