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채소가 넘쳐나던 곳... 조선의 '미국 농장'을 아십니까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농업에서 조선의 미래를 보다

등록 2022.04.20 17:17수정 2022.04.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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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로 많은 일들에 마음을 졸인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당면한 삶 속에서는 그걸 피할 수 없지요. 이 기이한 한 사람들 가운데서 저는 무척 외롭답니다."

-1884.8.12일 자 편지에서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4년 8월 한양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겪었고 많은 일을 했지요.


8월 8일 드디어 공사관을 떠난 나는 청계천 입동 가촌골의 새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니 날아갈 듯하였지요. 나는 어머니에게 새 살림에 대해 이렇게 편지를 썼지요.
 
"이곳은 불편한 점도 많지만 공사관 보다는 훨씬 좋답니다. 난생 처음으로 집안 일을 해 봅니다. 하인을 고용한달지, 식기와 식품을 구입한달지, 그런 일들을 해야 합니다. 가계부도 적기 시작했어요. 가사 일이 이렇게 많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저의 거처에는 일본인 요리사 한 명, 한국인 사환 그리고 부엌지기가 한 명 있답니다. 침실을 밝은 톤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이 보면 감탄할 겁니다.

집의 다른 부분은 마감 작업 중인데 머지않아 온전한 주거지가 될 겁니다. 아마도 이곳 서울에서 제일가는 주택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집은 조선 정부의 호의로 제게 제공된 것이랍니다. 유지 보수 등에 따른 거의 모든 비용을 조선 정부에서 부담한답니다."

- 1884.8.12일 자 편지에서

"가사일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어머니가 보시면 웃으실 겁니다. 하지만 칭찬하실 것도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거처가 청결하지요. 어휴, 청결을 유지하려고 시간을 꽤나 소모한답니다. 칸막이를 하고 보니 방이 다섯 개가 되었군요. 그 중 하나가 사무실인데 크기가 다른 방의 두 배이지요. 다음 편지에는 이 곳을 스케치한 그림이나 사진을 보내드릴 게요. 그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집 안팎의 시설이 뛰어납니다. 저는 미국인으로서 한 점 손색없이 주변을 깨끗이 하려합니다. 조선인들에게 미국인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구요. "


- 1884.8. 31일 자 편지에서
 
생필품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현지의 소고기, 닭, 계란, 채소는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쌌습니다. 하루 소비 비용이 모두해서 고작 20센트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설탕, 버터, 커피, 밀가루 등의 수입품은 비싸더군요. 그런 품목은 주로 제물포에 입항하는 증기선에서 구입했고 더러는 제물포의 일본인 상점에서 구하기도 했지요.

이사를 간 지 사흘 후인 8월 11일, 나는 고종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은전을 받았습니다. 임금이 변수를 내게 보내 궁궐을 속속들이 시찰하도록 한 것입니다. 나는 감동 섞인 호기심을 안고 금단의 궁궐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견문기를 불러내 봅니다.
 
"어제는 왕이 변수를 저에게 보내 궁궐 경내를 둘러보게 해 주었답니다. 구석구석 모두를 보여주더군요. 아마도 저는 다른 어떤 외국 방문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보았을 겁니다. 굉장한 곳이었어요. 면적이 약 60에이커에 달하고 사방이 담장벽으로 둘러져 있답니다. 궐내에는 근 200채의 별채가 있더군요. 그 곳에 2천 명의 하인들, 관리들, 종복들과 병사들이 살고 있답니다.

그들은 사나흘 만에 임무 교대를 한답니다. 총 4천 명의 종사자들이 왕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 듯합니다. 궁궐 건물들과 경내에는 8,000개의 문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이 얼마나 미로 같을지 짐작되실 겁니다. 저는 소나무 숲속의 아름다운 쉼터로 안내되었습니다. 두 개의 맑은 연못이 있더군요. 연못은 밝은 개울로 이어져 있더군요. 여기에서 다과가 나왔습니다.

작은 개울물을 보고 있노라니 거기에 수차水車(water-wheel)를 만들어 종을 울리게 하면 좋겠구나 하는 소년 같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저는 그걸 변수에게 이야기했답니다. 변수는 내 말을 우리를 안내하는 왕의 신하에게 전하더군요. 그들에겐 그런 이야기가 금시초문인지라 절 더러 직접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간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왕년에 해 보았던 대로 나무를 깎아서  멋진 수차 하나를 완성하였지요.  그게 개울에서 돌아가며 종을 울리면 틀림없이 왕과 궁녀들이 재미있어 할 겁니다. "

- 1884.8.12일 자 편지에서
 
내가 보기에 조선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농축산업의 발전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새삼스럽지만, 내가 조선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열정을 쏟은 분야는 바로 농업 및 축산업 분야였지요. 물론 그런 일은 해군 무관의 임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조선인들을 위해 제가 씨앗을 많이 가져 왔습니다. 그게 이제 파종되어 자라고 있답니다. '미국 농장American farm'이라고 불리는 곳에 미국 채소들이 넘친답니다. 어떤 작물은 미국에서 보다 더 잘 자랍니다만 실패한 것도 더러 있습니다.

저는 또한 낙농 시설을 제안하여 건설이 진행 중이랍니다. 제가 영농인(최경석)를 위해 낙농 설비들을 설계해 주었는데 그 설비들을 지금 설치하고 있는 중이지요. .....

또한 저는 조선인들을 위해 가축과 말을 들여올 겁니다. 그러면 조선의 목축에 발전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이 곳엔 덩치가 큰 수소와 암소가 삽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여태 우유를 모른답니다. 암소를 젖소로 활용하지 않지요. "

- 1884. 8.12일 자 편지에서
 
조선의 과일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 다양성과 맛에 있어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일반 참외와 개구리 참외를 포함한 갖가지 참외 종류, 자두, 살구, 천도 복숭아 등이 계절 따라 나오고 있더군요.
 
"​이곳에선 과수 재배에 인공을 가하지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과일이 잘 됩니다. 작고 좀 신 편이기는 하지만요. 자두, 살구 같은 것은 우리 것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고 종류는 더욱 다양하답니다. 과일 종류가 무척 많아 놀랐지요. .....의심할 나위 없이 조선의 부富는 농업에 있습니다. 제조업과 광물 분야에서는 아직 부富가 보이지 않는군요. 금 매장량은 풍부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 조선인들이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농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저의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다.

저는 몹시 기꺼운 마음으로 미국산 농기구를 도입하는 등 농업 발전을 위해 나름 역할을 하였답니다. 아직은 조선인들이 농업 개량에 정성을 쏟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중요성을 확연히 깨달을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제가 한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게 되겠지요."

- 1884.8.31일 자 편지에서
#조지 포크 #미국 농장 #수차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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