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겐 향기가 난다

아빠의 땀과 기름 냄새를 떠올리며

등록 2022.04.22 09:28수정 2022.04.2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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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손수건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 적어보세요.' 꼬꼬마 시절 유치원에서 내준 숙제였다. '아빠가 땀을 닦은 손수건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아빠의 향기가 납니다'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아빠의 손수건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적었다.

아빠는 식용유를 납품하는 일을 하셨다. 퇴근 후 돌아온 아빠의 옷은 땀투성이, 기름 범벅이었는데 샤워를 하고도 아빠의 몸에선 기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나는 아빠 곁에 누워 생각했다. '비누향이 미처 기름 향을 이기지 못한 걸까?' 기름 냄새는 아빠의 체취가 되어갔다.

아빠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나를 종종 데리러 오셨다. 그때마다 눈에 띄지 않는 길가에 주차하며 기다리고 계셨다. 어느 날은 그 이유를 물었다.

"왜 계속 여기에 주차하는 거예요?"
"기름때 가득한 트럭이라 우리 아들 부끄러울까 봐."

지저분해진 작업복과 한껏 땀을 흘린 모습으로 말했다. 그땐 아빠의 말을 온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아빠는 늘 후줄근한 작업복과 함께였다. 하지만 뜨거운 땀방울 하나하나로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실함은 다섯 식구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면 열심히 살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아빠는 15년간 꾸려온 사업을 정리하셨다. 그래도 기름 냄새는 여전하다. 이번엔 치킨이다. 여전히 기름 냄새 가득한 곳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는 남자.

종종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일부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좋은 일을 자랑하기도 한다. 아빠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며 행복감을 느끼고, 나의 좋은 일에 기뻐한다. 이따금씩 철없는 생각하는 나를 따끔히 혼내기도 한다.

"욕심부리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

나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 아빠처럼 누군가를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의 의미를 알려줄 수 있는 '아빠'이고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고소해 지는듯한 아빠의 기름 냄새.

기름 냄새 가득한 아빠의 인생은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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