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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잠든 아이... 이 '착한'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아이들은 나의 스승] 교실에 널브러진 에너지 음료 캔, 아이들의 잠잘 시간 빼앗는 사회

등록 2022.04.26 06:07수정 2022.04.2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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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을 청소하다 곳곳에 널브러진 에너지 음료 빈 캔을 보며, 키다리 책상에 선 채 잠든 아이가 떠올랐다. ⓒ 서부원


우리 학교의 교실 뒤쪽에는 특이한 물건이 두 개씩 놓여 있다. 의자가 따로 없는 키다리 책상이 그것이다. 교사가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을 올려두고 강의할 때 사용하는 간이 교탁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그저 아이들이 쓰는 교실 책상의 키를 두 배 남짓 높인 것이다.

아이들은 흔히 스탠드 책상이라고 부른다. 키다리 책상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성싶지만, 스탠드 책상이라는 표현을 더 익숙해 하는 이유가 있다. 모양보다 용도에 맞춘 명명인 까닭이다. 아이들이 서서 공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아이디어 상품이다. 

정규수업이든 야간자율학습(야자) 시간이든 호시탐탐 그곳을 노리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덩그러니 비어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놓아둘 장소가 좁아서 망정이지 더 구매해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시험 기간 도서관 자리 선점하듯 스탠드 책상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왜 불편하게 서서 공부하려 할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교사로부터 지적을 당해 벌로서 서서 공부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발적으로 스탠드 책상에 기대 잠과의 전쟁을 벌인다. 

스탠드 책상을 놓친 경우, 책과 펜을 양손에 들고 서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 요즘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 점심시간 뒤인 5교시라면, 교실 뒤편 줄지어 서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로 북새통이 된다. 앉아 있든 서 있든, 퀭한 눈의 아이들을 보노라면 존다고 나무라기도 뭣하다. 

저녁을 먹고 시작된 야자 1교시도 고비다. 7시간의 정규수업에다 2시간의 방과후수업을 끝낸 뒤 맞는 자습 시간이니 하루의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올 시간이다. 요즘 아이들은 '올빼미형 인간'이라 해가 지면 되레 눈이 초롱초롱해진다고들 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낮이든 밤이든 아이들의 눈 주위에는 늘 다크서클이 내려 앉아 있다. 학원과 독서실을 순례시키며 밤잠을 못 자도록 옥죄어 놓은 기성세대가 '올빼미형 인간' 운운하는 건 참으로 뻔뻔한 행태다. 

야자 감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가엾은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각양각색의 자세로 깊이 잠든 아이들의 모습은 차마 다가가 깨우기도 미안할 지경이다. 목을 뒤로 젖힌 채 입을 벌린 아이, 턱을 괸 채 석고상처럼 잠든 아이, 침을 잔뜩 흘려놓아 볼과 책이 붙어버린 아이까지.

당장 호되게 나무라며 일으켜 세우지만, 마음 같아선 그들에게 담요라도 덮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렇듯 불편한 자세로 잠에 빠졌을까 싶어서다. 그러다 '끝판왕'을 만났다.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지만, 그를 도저히 나무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일상은 피곤하다

한 아이가 스탠드 책상에 선 채 잠들어 있었다. 왼팔로 책상을 기대고 다른 한 손엔 펜이 들려 있었다. 뒤에서 본다면 열심히 공부하는 걸로 오해했을 법하다. 처음엔 골똘히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는 줄 알고 지나칠 뻔했다. 다가가 책상을 두드렸지만, 미동도 없었다. 

흔들어 깨웠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껌뻑이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걸로 보아 잠든 지 꽤 된 듯했다. 졸음을 쫓기 위해 가져다 놓은 스탠드 책상도 더는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셈이다. 적어도 그의 공부를 돕기 위해선 스탠드 책상을 능가하는 아이디어 상품이 나와야 한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도 서서 자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숙제하다 의자에 앉아 그대로 잠들어 아침을 맞았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친김에 물어보니, 자정 이전에 자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개 1~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물론, 제때 등교하려면 늦어도 7시 이전엔 일어나야 한다.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지만, 서서도 잠이 들 만큼 요즘 아이들의 일상은 피곤하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개 8시경 등교해서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생활하는 게 인문계고의 오랜 일과다. 하루 24시간 중에 거의 2/3를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방과후수업과 야자의 참여 여부가 자율적 선택 사항이어서 정규수업만 받고 하교하는 경우가 늘곤 있지만, 여전히 야자까지 신청한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차이를 야자의 유무로 가른다. 밤 10시에 하교하면서 비로소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한다. 

방과후수업과 야자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단지 학교냐 학원이냐, 야자냐 독서실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방과후수업 대신 학원 수업을 듣겠다는 것이고, 교실에서 자습하기보다 사설 독서실이나 최근 성업 중인 스터디 카페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공부는 각자의 습관과 방식이 있을 테니 그 선택에 몽니 부릴 일은 아니다.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밤 10시에 공부가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야자가 끝난 뒤 하굣길 교문에 늘어선 학원 버스가 이를 방증한다. 

스탠드 책상에 선 채 잠든 아이도 밤 10시에 집이 아닌 학원과 독서실로 향할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그의 문제집에는 학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규수업 때 배운 걸 복습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야자 시간에 학원 숙제하느라 허덕이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과연 교육적인가

"공부가 부족해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잠이 많아 걱정이에요." 

세수하고 온 뒤 비로소 잠이 깬 그의 일성이다. 졸지 말라고 나무라듯 채근했지만, 솔직히 그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루에 고작 다섯 시간 정도밖에 못 자는 아이의 입에서 잠이 많아 걱정이라고 하소연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차마 말 꺼내진 못했지만, 정작 그에게 부족한 건 공부가 아니라 잠이다. 

밤 10시.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엔 후끈한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채 하교했는데, 책상 위엔 아이들이 놓고 간 책들이 여전히 수북하다. 저 많은 걸 언제 다 공부하나 싶다. 아니,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저게 다 필요하긴 할까 싶다. 

빈 교실에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 여기저기 에너지 음료 빈 캔이 널브러져 있다. 분명 잠을 쫓기 위해 부러 챙겨온 것일 테다. 아이들이 에너지 음료까지 들이켜가며 밤낮으로 책과 씨름해야 하는 거라면, 누구 말마따나 그건 공부가 아니라 '학습 노동'이다. 

에너지 음료의 주요 소비층이 10대 아이들이라는 통계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 이유라면 학습 부담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중간고사를 코앞에 둔 시기여서인지 빈 캔의 숫자가 훨씬 늘어난 느낌이다. 자칫 몸을 상하게 한다는 '공자님 말씀'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에너지 음료나 스탠드 책상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마셔서 잠을 쫓나, 서서 잠을 쫓나 마찬가지 아닌가. 미국 수면 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적정 수면 시간이 8~10시간이라고 한다. 그 절반 정도밖에 못 자는 아이들이 태반인 현실에서 스탠드 책상을 제공하는 게 과연 교육적인가 싶다.

하루의 2/3를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고등학생에겐 졸리면 자도록 하는 게 맞다. 아이들의 잠잘 시간을 빼앗는 사회만큼 야만적인 곳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아이들은 공부가 부족하고 잠이 많아서라며 되레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 오늘도 교실마다 스탠드 책상을 더 마련해 달라며 아우성치고 있다. 이 '착한'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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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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