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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재개발로 인해 위기에 처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주거권 투쟁,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을 지키는 사람들

등록 2022.04.28 13:57수정 2022.04.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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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7일, 영등포구청 앞에서 진행한 꿀잠존치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 꿀잠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껴갈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든 바로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일. 비정규직이 그렇고 산업재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재개발로 인해 살고 싶은 마을에서 쫓겨나게 되는 일 등.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도 생각지 못했던 재개발 문제에 봉착했고,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대책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꿀잠은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형태로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부당한 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2015년 7월경 5년, 10년 투쟁한 당사자인 비정규 노동자,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함께 제안하고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공동제안자로 나서 주시면서 첫발을 뗐습니다.

종교계, 문화예술계, 법조계를 비롯한 전문가, 활동가, 노동자 등 연인원 1000명이 넘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만든 비정규 노동자의 쉼터이자 투쟁 지원 공간입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 4층, 옥탑방의 낡은 건물이었지만, 노동자·문화예술인·종교인·법률가 등 리모델링 공사 100일 동안 연인원 1000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직접 망치와 톱을 들고 새집처럼 꿀잠 쉼터를 다시 지어 2017년 8월 19일 문을 열었습니다.
      
서로에게 든든한 친구

힘겹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몸이 아프면 쉬고, 밥도 먹고, 빨래도 하고 투쟁 이야기도 나누고, 더불어 전시,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활동도 하는 복합적 공간입니다.

코로나 재난 상황으로 이용자가 줄긴 했지만, 지난 4년 동안 연인원 1만 5천 명의 노동자와 다양한 부문의 활동가들이 이 집에서 씻고, 잠자고, 밥 먹고, 빨래하고, 회의하고, 법률상담, 치과 및 한방진료, 강좌, 영상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했습니다.


멀리 경주에서, 구미에서 억울하게 해고되어 서울로 상경해 싸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입니다.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에게 매일 도시락을 올리기도 했고, 가족을 잃고 한겨울 상경 투쟁을 해야만 했던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님과 한국마사회 특수고용노동자 기수 문중원님의 유족도 꿀잠에 머물며 힘겨운 싸움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 문화예술인, 종교인들이 서로 연결되는 허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꿀잠에선 노동자·시민운동가·종교인·예술가·법률가·의사·학생·지역주민의 위계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친구입니다. 꿀잠은 이렇게 역사적이고 소중한 공간입니다.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그런데 소중한 공간이 재개발로 인해 위기에 처했습니다. 꿀잠이 현재 위치에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은 '돈' 때문입니다. 교통편이 좋은 서울 도심에 쉼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높은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교통편을 중심으로 알아보는 마지노선 지역이 영등포였고, 이곳 신길동이 서울 도심의 절반 정도 가격이어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신길동은 오래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었으나 재개발을 시도하다 무산되었고, 알아보는 곳마다 재개발 가능성이 없다고 이야기했고 실제 재개발추진위 활동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꿀잠 쉼터 문을 연 이듬해인 2018년 초에 갑자기 재개발추진위 활동이 시작되더니 2020년 3월 재개발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재개발 문제로 꿀잠 운영진은 여러 차례 논의를 통해 6월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하고 노동, 시민사회, 종교 등 최대한 많은 단위가 함께 대응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꿀잠은 존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개발조합에 수차례 밝혔지만, 수렴되지 않은 채 35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정비계획변경(안)을 마련하는 등 재개발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에 2021년 11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외적으로 꿀잠 입장을 밝히고, 대책위를 구성해 함께 대응해 나간다는것을 알렸습니다.

꿀잠을 존치해야 하는 이유

"낡은 삶의 공간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재개발은 부동산의 가치 증식에만 혈안이 된, 투기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왔습니다. 켜켜이 쌓인 지역의 역사, 공동체 안의 따스한 삶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공적 역할에 대한 무차별한 삭제를 자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는 예외 없이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원래 살았던 원주민들의 추방이었습니다.

주택 재개발이 구역 전체를 모두 허물고 뒤집어야만 하는 '싹쓸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구 도심가의 존치와 재생을 모색하는 도시재생사업은 이익을 위한 공동체 파괴를 막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일 것입니다. 재개발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존치할 것은 존치하고 새로운 주택들과 공존하도록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2021년 재개발주택정비조합 측이 제출한 정비계획변경(안)은 35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수차례 꿀잠의 존치를 제기했는데 공공재인 꿀잠을 보존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과 아파트에 입주하지 않고 마을에 남아 살고 싶은 주민들의 대책 역시 없습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심도 깊은 논의와 해결 방안을 마련한 정비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꿀잠의 입장입니다.

혹시라도 꿀잠이 존치되지 않고 쫓겨나게 된다면 높은 부동산값을 감당할 수 없어 꿀잠의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쉼터를 중단없이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꿀잠뿐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입자들,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은 원주민들도 이곳에서 밀려나면 높은 주택 가격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주택재개발은 공익성이 강조되는 공공사업입니다. 그런데 정비계획안에 대한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주로 제기되었던 내용은 '재개발을 통해 재산을 늘리자'였습니다. 공익성은 없고 재산 증식을 위해 마을에 살고 싶은 80%가 넘는 세입자와 원주민을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공공사업이 재산 증식만을 위해 진행된다면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업이므로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35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재개발조합의 정비계획변경(안)에 대하여 절차에 따라 영등포구청이 공람을 했고, 공람 기간에 비정규직, 문화예술, 시민사회, 종교 등 각계각층의 단체 52곳과 5332명의 개인 의견서를 2022년 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구청에 제출했습니다. 2021년 11월 4일 기자회견 후 시작한 영등포구청 앞 릴레이 1인시위에도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많은 분의 관심과 참여의 힘으로 최근 재개발조합에서 '꿀잠의 공공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현 위치의 존치는 어렵다며 대토부지를 제시'했고, 서울시, 영등포구청, 재개발조합, 꿀잠의 4자 간담회도 열렸습니다. 하지만 꿀잠 기능의 중단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건축비, 임시시설, 이전비 등 해결할 내용이 산적해 있어 지속적 대응과 관심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집,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삶의 공간

이번 재개발 문제를 겪으면서 주거로서의 집이 아니라 돈벌이 상품으로의 집인 주거정책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혹자는 재개발되면 '돈' 버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합니다. 집을 팔아 차액을 챙기는 것이면 돈을 버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거주하는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꿀잠의 경우 보상받고 다른 곳에 이사하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상을 받아봤자 다른 곳의 부동산 가격은 더 올라 있어서 불가능합니다. 일반인도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입주 시기 본인 부담금을 낼 수 없어서 분양권을 팔고 집값이 낮은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마저도 집을 소유한 분들의 얘기고, 세입자들은 100% 마을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노동자들이 노동 문제로는 투쟁을 하면서도 주거권 문제로 투쟁을 한 적은 아주 드물 것입니다. 의·식·주가 우리 삶의 주축이고 그 기본적 조건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임에도 말입니다.

꿀잠 재개발 대응을 계기로 집이 상품으로 돈벌이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삶의 공간으로서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요구하며 함께 싸워나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동자들이 일터와 삶터에서 쫓겨나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으며 더불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다.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재개발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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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노동시민사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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