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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걱정 없는 마음 백신 맞으러 오세요"

[인터뷰] 이천시립마장도서관 김은미 사서 팀장

등록 2022.05.01 11:22수정 2022.05.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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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사서이자 문헌정보학자 랑가나단은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에는 도서관이 생명력 있게 움직이고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천시립마장도서관에 다녀오면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이다.

2018년 5월 마장면택지개발지구 내에 개관한 작은도서관의 수상 경력도 남다르다. 전국 도서관 혁신 아이디어 및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문체부장관상(2020년),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 정성평가 부분 우수도서관 선정(문체부장관상, 2021년), 제1회 한국사서상 수상(김은미 마장도서관 사서팀장, 2021년 12월) 등. '대체 면 단위 도서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이천시립마장도서관을 찾았다.


김은미 사서 팀장을 만나 사서와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 팀장은 이천시 첫 공공도서관인 이천시립도서관이 개관을 준비 중이던 1997년 이천시 사서직공무원으로 도서관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2018년 이천시 최초 사서직 팀장으로 마장도서관에 부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 시대 도서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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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이천시립마장도서관 사서팀장. 그는 이천시 첫 공공도서관인 이천시립도서관에서 이천시 사서직공무원으로 도서관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이천시립마장도서관이 개관한 2018년 이 도서관에 사서직 첫 팀장으로 부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김희정

 
도서관을 개관하자마자 시민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도서관을 개관한 2018년부터 '당신에게 권하는 인문학', '안단테 인문학', '둥근마음 북토크' 라는 타이틀로 매월 1회 강연회를 열었다. 그때 이천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타 도시 시민들도 강연회에 많이 와 주셨다. 당시 고도원·강원국·고미숙·김민섭 등 유명한 강사님들을 모셨다. 면 단위 도서관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2019년에 시도한 '나도 작가 되기' 사업은 1인 1책 출판을 위한 시민작가 양성 과정으로 글쓰기 기초 특강부터 시작해 출판까지, 10개월간의 장기 프로젝트였다. 당시 11명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책을 내며 신인 작가가 됐다. 이는 시민들의 글쓰기와 출판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줬고 마장도서관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사업이었다.

참담한 경우도 있었다. 개관 초기 청소년 동아리를 모집했는데 인근 학교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하고 SNS 활용 등 도서관 마케터로서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단 한 명도 모집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청소년들의 독서와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를 알았다. 청소년이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듯 편하게 머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계기도 됐다.

'우리동네 사람책'은 2020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라는 취지로 매월 이천시민 1명을 선정해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2020년 1월, 야심차게 첫 발을 내디뎠는데 1회 강의를 마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면서 거의 9개월을 쉬었다. 이후 2021년 10월부터 '온택트 사람책'으로 방향을 바꿔 줌을 통한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매회 강연자 1명과 15명 내외의 참여자로 운영하는데 집중도도 높고 소통도 자유로워서 감동과 재미가 기대 이상이다."

- 코로나속에서도 독특하면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했다.
"2020년은 누구나 당황스럽고 막막한 해였다. 도서관인들도 비대면 시대 도서관 서비스 운영 방향과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던 해였다. 그 고민 끝에 코로나블루로 힘들어하는 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 도서관에서 만날 수 없으니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독서활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끝에서 온라인 독서활동 커뮤니티인 '마음충전소'가 필요하다는 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 방안의 도서관'을 운명처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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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독서모임 ‘고讀한 방’ 참여자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한 밤에 책을 읽으며 찾아낸 인생 문장을 소개하는 기획전시. 이천시립마장도서관에서. ⓒ 김희정

 
'내 방안의 도서관' 을 구성하고 운영하면서 좀 더 신경 쓴 부분은?
"'내 방안의 도서관'은 2020년 2월, 온라인 카페에서 시즌1을 시작으로 2020년 11월 시즌4까지 총 15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글쓰기 분야·손글씨 필사·함께 읽기·독서토론, 번외편으로 온라인 북토크·온라인 북큐레이션·원미닛 잉글리시·도서관 옆 북크닉 등. 독서활동 프로그램은 30일, 50일, 100일 코스로 세분화했다.

이때 총 6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카페 신규 게시글 수는 6500건이 넘었다. 이 프로그램은, 연령에 제한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접속해 참여할 수 있는 24시간 열린 공간, 1회성이 아닌 장기행사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저도 한 사람으로 회원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카페에 들어가 참여자의 글에 댓글을 달고 하트를 누르면서 소통했다.

매일 참여자들과 똑같이 필사하고, 글을 쓰고, 함께 읽고, 토론했다. 그러면서 매일 새벽 5시~ 6시에 그날의 필사 자료 또는 글쓰기 주제를 카페에 업데이트했다. 참여자들이 새벽부터 카페에 들어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시기, 불면증에 시달리시거나 새벽형인 분들이 엄청 많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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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갖춰야 할 역량 중에서 부지런한 다독가를 강조하는 김은미 팀장은 북큐레이션에도 관심이 많다. 김 팀장이 직접 읽은 후 추천하고 싶은 책 전시회. 이천시립마장도서관에서. ⓒ 김희정

 
- 이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고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시민들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닌, 사소하지만 따뜻한 손길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그램이 참여자들의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독여주고 위로를 해주지 않았나 싶다. 많은 참여자께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평을 해주셨고,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시민들과 친밀하게 소통한 것에 대한 격려와 응원도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으로 논문을 써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전국 도서관 혁신 아이디어 및 우수 현장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시민들과 동료 직원들이 각자의 재능을 살리면서 함께 해주어 가능했다. 감사드린다."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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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 사서는 주말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 이용자가 주말에 많기 때문이다. ⓒ 김희정

 
- 그동안 마장도서관을 이용한 연령대가 궁금하다.
"인문학 강연회는 30~60대의 참여가 높은 편이고 작가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 북토크, 특히 남궁인·김동식·김민섭·은유·박준·임경선·오은 작가의 북토크 때는 20대의 참여율과 만족도가 높았다. '내 방안의 도서관'은 중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참여자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매일 한 편의 시를 손글씨로 필사 한 후 사진을 찍어 올리는 '감성 한 잔 시 필사'는 참여자의 전체적인 참여율이 매우 높았는데, 10대 20대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시(詩)는 짧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데다 진한 감동을 주는 묘미가 있어 긴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부담감을 덜어준 것이 요인인 것 같다."

-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 시도하는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아이디어는 책, 여행지, 동네책방 탐방, 일상생활 속, 인스타그램에서도 얻는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동네 둘레길을 뛰는데, 뛰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많다. 그 외에도 많은데, 어느 상황이든 열린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공공도서관 사서는 어떤 일을 하나?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서가 도서관에서 하는 일과 그 존재 의미를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사서는 도서와 작가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 하는 도서전문가,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정확히 찾아 전달하는 지식정보전문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문화기획자, 책을 통해 사람을 치유하는 책 의사, 하루에 수백 명의 이용자를 상대하며 민원을 감당하는 감정노동자이다."

- 팀장님의 '도서관 마케터, 도서관을 팝니다'라는 글을 읽었다. 인상적이었다.
"그 글의 연장선으로 25년간의 사서 경험을 바탕으로 사서가 갖춰야 할 역량을 6가지로 축약해봤다. 이것은 저만의 도서관 마케팅 전략이고 소신이기도 하다. 사서는 첫 번째 책을 좋아하고 부지런한 다독가여야 한다. 사서의 독서량에 따라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양질의 책 제공 여부, 훌륭한 강연자의 섭외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프로그램 제목(네이밍) 짓기에 신경 써야 한다. 프로그램의 가치를 충분히 담으면서 독특한 제목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디지털전문가'이다. 이제 사서도 영상편집, 화상회의앱·유튜브·영상장비 사용법 등 디지털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한다. 네 번째는 홍보문 제작과 다양한 SNS를 활용해 프로그램 홍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사서가 직접 홍보문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행사 때마다 업체에 홍보문 제작을 맡기면 예산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사를 읽어 탁월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어도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다섯 번째, 같은 프로그램의 반복은 지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려고 애쓴다. 이런 시도는 쌓여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여섯 번째 프로그램을 운영한 후 반드시 결과물을 활용한 기획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도서관에서 해온 프로그램을 알림과 동시에 잠재적 이용자와 프로그램 참여자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사서와 이용자 간의 끈끈한 연대와 신뢰 형성도 중요하다. 예술적 감성을 갖춘 북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 외에 많은데 이 모든 역량은 시민들의 지적 성장과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책이 건네는 다정하면서도 묵직한 위로

-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후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면.
"어렸을 적 우리집 서가를 가득 채운 하드커버의 세계문학전집은 전시용이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도서관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그런 제가 성인이 되어 책을 좋아하게 됐다. 지금은 밥을 먹어야 삶을 유지하듯 책을 읽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가방 속에는 늘 책이 있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 '잠들기 전 독서'는 삶의 루틴이다."   

- 책은 왜 읽어야 하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 지금은 '책'이라는 마음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 적기이다. 생활 방역만큼 마음 방역의 중요성이 강조된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도서관은 시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최소화 해주는 마음 응급실 역할을 했다. 또한 좋은 책 친구와 다양한 분야의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돌보고 치유해야 하는 시기, 모두가 책 마음 백신을 맞기를 바란다. 책은 여러 회, 반복적으로 맞아도 부작용이 없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 인문학적 책이 건네는 다정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를 경험하다 보면 삶의 자세와 방향에 좋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 공공도서관 사서로서 애로사항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주말에 격주로 출근하는 게 힘들었다. 공공도서관의 특성상 주말에 이용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한 달에 6~7번씩 밤 늦게까지 당직도 했다. 야간 연장 개방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근무 환경이 많이 좋아져서 크게 힘든 건 없다.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는, 사전 연락없이 행사 당일 불참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난감하다. 신청을 한 후에는 귀한 사람과 약속을 지키듯 참여하셨으면 좋겠다."

- 앞으로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사서로서 꿈이 있다면.
"'with 코로나'라는 새로운 시대에 공공도서관은 시민의 지적 성장을 높이는 일과 더불어 책을 통해 시민의 마음을 돌보는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서로서는 공공도서관 사서들, 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천시 사서들의 열정과 노력을 응원하고 싶다. 

후배 사서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잘 갈고 닦아서 후배 사서들이 조금은 편한 길을 가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도서관 문턱을 낮추는 일에도 집중해야 한다. 도서관이, 유아부터 실버세대까지 편하게 드나들면서 삶을 알차게 채우는 공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김은미 팀장이 도서관 업무를 시작한 1997년, 도서관에서는 방학 중 독서관련 프로그램과 시민문화교실이 주를 이뤘고 사서가 직접 독서지도를 했다고 한다. 25년이 흐른 2022년, 도서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장애인식 바로보기 프로젝트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조해진 작가 북토크', '부모님과 함께하는 보석비누 만들기', '마장 그린 플레이(유·초등)', '해피 리딩(초등)', '포토에세이 나의 시선으로부터' 등. 그 중심에 사서와 책이 있다.
#이천시립마장도서관 #마음응급실 #마음 방역 #도서관 마케터 #우리동네 사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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