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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 하면 뭔가 부정적? 중국에선 아니더군요

[한국과 중국, 같은 말 다른 뜻] 한국의 '모략' 그리고 중국의 '모략'

등록 2022.05.19 14:49수정 2022.05.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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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략' :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하는 일.

중국 '모략(謀略)' :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대책과 방안을 강구하는 예술.

  
중국인은 게임을 즐긴다. 거리마다 마작을 할 수 있는 마작방이 있다. 대학생도 시간이 날 때마다 강의실에서 카드놀이를 한다. 동네 어르신들은 길가에서 장기를 둔다.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고정형 탁자와 의자가 있는데, 이 탁자 위에도 장기판이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중국인이 판돈을 걸고 돈을 따려고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엔 중국인이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중국인은 게임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게임 중에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 자신만의 전략·전술을 수행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중국인이 즐기는 게임 중에 가장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이 카드놀이다. 중국에서는 카드놀이를 '푸커파이(扑克牌)'또는 '즈파이(纸牌)'라고 한다. 카드에 새겨진 그림이나 규칙이 서양의 포커와는 다르다.

'X맨' 찾는 중국 카드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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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우띠주 인터넷 게임 ⓒ 중국 바이두

 
중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카드놀이가 '또우띠주(斗地主)' 게임이다. 이 게임은 워낙 유명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도 출시됐다. '또우띠주(斗地主)'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싸우는 지주"라는 의미로, 농지를 많이 가진 지주와 농민이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게임 규칙이 한국 방송국의 과거 예능프로그램 '엑스맨(X맨)'과 비슷하다. 엑스맨은 A, B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할 때 A팀에 소속돼 있지만 상대방 팀인 B팀의 승리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중국 '또우띠주' 게임에서 네 사람이 카드놀이를 할 경우, 카드를 선택해 한 사람은 지주가 되고 세 사람은 농민이 된다. 그다음 지주가 특정한 카드 그림을 지정하면, 그 카드를 가진 사람이 지주 편이 돼 지주와 농민 그리고 농민 두 사람이 편을 나누어 게임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때 지주가 지정한 카드 그림을 가진 농민은, 본인만 자신의 정체를 알 뿐, 지주와 다른 농민 두 사람은 누가 엑스맨인지 알 수 없다. 농민이지만 지주와 같은 편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엑스맨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드놀이에서 지주는 상대방 세 사람 중 누가 자기편인지 알 수 없고, 나머지 농민 두 사람도 누가 지주 편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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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 또우띠주 카드게임 ⓒ 중국 바이두

 
카드놀이를 할 때, 내가 가진 패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가진 패를 예상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또우띠주' 카드놀이에서는 그밖에도 '누가 엑스맨인지'를 예측하면서 게임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농민 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선 자신이 엑스맨인 것처럼, 또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이 엑스맨이 아닌 것처럼 패를 운영해야 한다. 즉 상대방을 혼란에 빠트려 잘못 판단하게 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무궁무진한 전략·전술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이때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패를 운영해야 상대방을 모략에 빠뜨려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모략, 한국과 중국의 차이

한국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모략'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된다. 그래서 한국인은 모략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중국 사전에서 모략(謀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대책과 방안을 강구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중국인은 '모략'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길 뿐이다.

상대방에게 모략을 써서 이기기 위해선 대책과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그 대책과 방안은 당연히 상대방이 오판에 빠질 수 있는 요소를 갖춰야 효과가 있다. 상대방을 오판에 빠뜨리려면 상대방을 속여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오판하도록 속이는 대책과 방안을 만들 때 도덕과 법률과 양심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모략을 사용해 전략·전술로 상대방을 이기는 게임이 바로 '또우띠주' 카드놀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중국 사회에서 꽌시 관계가 아닌 '기타사람'간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잠재규칙이다. 

중국에서 모략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모략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함정에 빠트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많다.

2007년 중국 고전 해석 전문가 마수취안(馬樹全)이 중국 당나라 시대 내준신(來俊臣)이 지은 <나직경(羅織經)>을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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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시대 내준신이 쓴 '나직경' ⓒ 중국 바이두

   
한국에서 출판한 번역 책 제목은 '모략의 즐거움'이다. 한국 사전에서 '모략'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이니,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대로라면 이 책 제목은 '속임수를 써서 남을 해롭게 해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즐거움'이 된다.

물론 상대방을 속여 함정에 빠뜨려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모략을 사용하는 일이 즐거울 수는 있지만, 언뜻 책 이름으로는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국 사전에서 설명하는 모략이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하면, 책 제목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대책과 방안을 강구하는 예술로서의 즐거움'이 된다.

중국인은 한국인과 다르게 모략이란 남에게 속임수를 써서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려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 처세술, 즉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모략이 한국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략의 즐거움>은 당나라 시대 <나직경>이란 책을 현대 상황에 맞게 풀어서 설명한 책이다. 원전 <나직경>에서 '나직(羅織)'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상대방을 함정에 떨어지게 하여 죄를 덮어씌운다는 의미다. 그리고 경(經)은 사서삼경, 불경, 성경 같은 경전이라는 의미다.

중국에서는 상대방을 모략에 빠뜨려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경전과 같이 여긴다는 사실도 함께 알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책 이름을 <모략의 즐거움>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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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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