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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중간고사 후 이어지는 '자퇴행렬'... 딱 한 가지만 필요한 세상

[아이들은 나의 스승] 자퇴조차 돈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 공교육이 위험하다

등록 2022.05.16 05:51수정 2022.05.1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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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는 학생의 모습. ⓒ 연합뉴스

 
오늘도 전국의 고등학교마다 자퇴생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 같으면 몸이 아프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서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곤 했지만, 요즘 그런 사례는 단언컨대 없다. 자퇴 후엔 검정고시를 치르는 게 예정된 수순이다. 예전에는 검정고시가 만학도들을 위한 제도였지만, 이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현재 검정고시 전체 응시자의 열에 일곱은 10대 아이들이다. 기꺼이 검정고시 합격증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대신하려는 거다.

언뜻 의아해 보이지만, 자퇴의 이유는 십중팔구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대입을 효율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맞춤형 선택이라는 뜻이다. 비율을 기준으로 수시와 정시가 얼추 반반인 현실에서 그리 무모한 도박은 아니다. 현재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은 40% 이상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시 모집의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교육 정책이 구체화하진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이 후보 때 내놓은 공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수시에 불리한 자사고와 특목고가 존치될 거라는 언론 보도마저 잇따르고 있다. 

덩달아 자퇴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명문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고1 때 이미 자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교내 시험에서 한두 번 미끄러지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알다시피, 수시 전형에서는 교과별 내신 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1학년 첫 시험 등급에 목매단 이유

얼마 전 마무리된 중간고사 때 고1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등급을 캐물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시험일 뿐인데도 그토록 등급에 목매단 이유도 그래서다.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한 수시 전형을 통한 명문대 진학은 사실상 고1 때 결정된다고 아이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까진 그렇다 해도, 만약 기말고사마저 '폭망'하면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하게 돼요. 내신 성적을 커버할 만한 확실한 '빽'이 없다면, 수시는 포기하고 정시에 '올인'하는 게 현명하죠.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라면 모두가 동의할 거라고 봐요."

고등학교 입학 후 누구든 처음엔 수시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수시의 모집 비율이 더 높고, 명문대일수록 수시를 더 선호한다는 것쯤은 아이들도 이미 들어 알고 있다. 요즘엔 초등학생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대학 입시 컨설팅이 성업 중이라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하지만 그들에겐 채 한 학기도 끝나지 않아 '현타'의 시간이 찾아온다. 한 아이는 참담한 내신 성적과 함께 청운의 꿈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입에선 '이렇게 된 이상 정시로 간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의 머릿속에도 자퇴라는 두 글자가 어른거리고 있다고 했다.

일찌감치 자퇴를 선택한 아이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아직 명문대 진학을 위한 '희망'이 남아 있고, 나름의 '복안'이 있기 때문이다. 정시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의 동아줄이라면, 오로지 대입을 위해 특화된 사교육 시스템은 그들이 기댈 언덕이다. 

전 세계에 이런 게 또 있을까 싶지만, 우리나라엔 자퇴생을 위한 사교육 시장조차 활성화되어 있다. 기존의 대입 단과반과 종합반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숙형 학원과 독학 학원까지 생겨나 자퇴생을 유혹하고 있다. 광고 문구만 보면, 언뜻 학교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라는 투다. 

희망도 복안도 돈으로 수렴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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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이 전국 86개 시험지구 1,300여 시험장에서 일제히 열린 2021년 11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제15시험지구 제20시험장)에서 수험생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대입 준비를 위한 훈련소로 전락한 현실에서 그들의 홍보 전략은 시나브로 먹혀드는 모양새다. 실제로 자퇴한 제자 중의 다수는 수도권의 기숙형 학원을 거쳐 갔다. 어느 유명 기숙형 학원은 들어가기가 웬만한 서울 소재 대학 입학보다도 어렵다고 한다.

문제는 희망도 복안도 '돈'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가난하면 희망이 보이지 않고 복안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다. 설령 교내 시험을 죽 쑤었다 한들 애초 자퇴를 꿈꿀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닌 게 아니라, 명문대 진학을 위해 자퇴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경우다. 

이른바 '돈 있고 빽 있는' 집안의 아이에게 정시는 '패자부활전'으로 여겨진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도전이 가능할 만큼, 대학 입시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불공정한 경쟁이다. 특히 정시 대비를 위해서라면 공교육은 사교육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몇 해 전 지방에 있는 한 자사고의 대학 진학 실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해 360명의 졸업생 중 275명이 의대에 진학했다는 깜짝 놀랄만한 뉴스였다. 평소에도 의대 진학률이 전국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이른바 '자사고 중의 자사고'로 알려진 학교다.

뉴스는 해당 학교의 과장된 홍보에 따른 오보로 판명됐지만,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재수생을 포함해 의대와 치대, 한의대를 178명을 보냈다는 '한참 모자란' 수치에도 '의대 사관학교'라는 별칭은 그대로 남았다.

해당 학교의 압도적인 진학 실적의 요인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바로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와 삼수, 이른바 '장수'도 불사하는 학교의 '전통'에 있었다. 의대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결코 수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시에 강한 학교'라는 이미지도 그렇게 생겨났다. 

도박판에서 최종 승자는 종잣돈이 많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잃는다고 해도 그때마다 두 배로 베팅할 수 있는 사람이 끝내 판돈을 거머쥐는 건 당연지사다. 정시도 별반 다를 것 없다. 퇴로가 없는 대입 경쟁에서 걱정 없이 '장수'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말로 '갑'이다.

대통령이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이나 시험 뒷수발을 해줄 수 있는 집안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고시 낭인'으로 전락하지 않은 이유도 부유한 가정환경 덕이라고 한다면 과연 지나친 말일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세상

이런 반론이 나올 순 있겠다. 기본적인 머리가 없으면 돈으로도 수능 점수를 살 수 없다는. 곧, 공부를 뒷받침해줄 형편이면 유리하긴 해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뜻일 테지만, 요즘엔 그 말마저 틀린 성싶다. 어느덧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바야흐로 자퇴조차 돈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다. 내신을 망쳤다면 정시에 '올인'하면 되고, 한 번으로 어렵다면 될 때까지 도전하면 된다. 이조차 힘들고 귀찮다면 '돈 있고 빽 있는' 아이일수록 얼마든지 '차선책'이 있다.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외국 대학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유학파를 국내파보다 우대하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현실에서 그것은 어쩌면 차선이 아니라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자퇴를 고민하는 한 아이에게 '기회비용'을 떠올려보라고 조언해주었다.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평생을 간다고, 또 학창 시절의 추억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대인 관계 역량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말에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이렇게 대꾸했다.

"선생님도 참. 짝꿍 대신 경쟁자만 남은 학교에서 평생 갈 친구라니요. 나중에 학창 시절 추억이란 걸 떠올리게 된다면, 오로지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는 것과 얍삽하게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는 활동만 골라서 했다는 찜찜한 기억뿐일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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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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