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한국·미국 학부모 다 분노한 일... 권성동 말에 기가 막혔다

[주장] 한동훈·정호영 자녀 스펙 쌓기 논란... '부모찬스' 없이 공정하게 평가받고 싶다

등록 2022.05.16 10:22수정 2022.05.16 10:56
157
원고료로 응원
a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대한민국에 빈부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을 받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10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스펙 쌓기를 옹호하며 했던 발언의 일부다. 솔직히 조금 기가 막혔다. 이렇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새 정부의 장관 물망에 오른 후보들을 두고 연일 터져 나오는 자녀 대입 관련 의혹들은 대개 비슷하다. 아빠 찬스 혹은 엄마 찬스가 그것인데, 대표적으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와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 자녀들의 경우가 부각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경북대 의대에 학사편입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 자녀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대입을 준비하는 부모들이 분노했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스펙을 쌓은 한동훈 후보 자녀의 경우에는 미국의 한국 학부모들이 분노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일 <중앙일보>에 이런 글이 실렸다.
 
"아빠·엄마 찬스로 국내 연구진의 논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약탈적 저널에 투고하는 일 모두 이제는 국내 대학보다 해외 대학을 노린 비윤리적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해외 대입용 금수저 스펙 만들기는 마치 딴 세상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씨USA 등 재미 한인 커뮤니티는 한 후보자 딸의 이슈로 들썩이는 듯하다. 한국 고교생들이 가짜 스펙으로 미국 대학을 속이는 바람에 정직하게 입시를 준비한 아이들도 동급으로 묶일까 봐서다." - 5. 10. 중앙일보 <약탈적 저널/ 이경희>

한국의 대입과 미국의 대입을 준비하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두 케이스 모두 누구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엄마 아빠 찬스를 썼다는 것이 똑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목격하고 난 뒤 찾아온 허탈감

솔직히 지난해 나라를 두 동강 냈던 '조국 사태' 때에는 그 자녀들만 그렇게 부모 찬스로 대학에 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두 후보자들의 의혹이 터져 나오고 나니, 대한민국 입시에는 그동안 내가 몰랐던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 같은 서민과는 다른 세계의 입시를 치르는 '어나더레벨(Another level)'의 입시랄까.

막연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 사실로 보도된 후에 찾아온 것은 허탈감과 무력감이었다. 뭐 대필이 아닌 첨삭이었다지만 사실 논문이 대필이었는지 첨삭이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를 무력감에 빠트렸던 것은 후보자 딸의 스펙을 바라보면서 느껴진 허탈감, 보통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고스펙을 갖추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참 서글프다. 진정한 '평등'과 '공정'은 실현되기 어려운 가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불공정과 불평등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바로 평등과 공정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의 폭발적인 불평등 증가는 사회적 상승을 가속화시킨 게 아니라, 정반대로 상류층이 그 지위를 대물림해 줄 힘만 키워주고 말았다."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p.50

물론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대로 부의 양극화는 대한민국의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그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이 고학력의 세습인 만큼,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서민들에게 가하는 폭력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대한민국이 공정한 기회의 나라였으면
 
a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점심식사로 정회되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생산은 하지 않고 착취하려는 인간에게 분노한 동물들의 이야기다. 동물권을 지키겠다고 만든 그들만의 세상에서 우두머리를 자처한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이 '농장'의 규칙인 일곱 개의 계명을 만든다.

그런데 동물들의 권리를 찾겠다고 만든 동물농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곱 개의 계명들이 조금씩 수정되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동물농장>의 지배계급들은 과거의 농장주 존스(인간)보다 더욱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데 마지막엔 그 일곱 개의 계명이 모두 사라지고 단 하나의 계명만 남는다(이 계명 또한 처음의 것에서 수정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엊그제 아이가 체험학습으로 OO랜드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신나게 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 아이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섬주섬 다시 가방을 싸는 것이 아닌가. 학원에 가야 한단다. 하루 쉬라고 말했지만 보충이 더 힘들다며 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내내 짠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부모의 욕심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가마솥에 넣고 펄펄 끓이면 교육열만 남는다는 대한민국이라지만 그 가마솥엔 아이들의 의지도 함께 끓고 있다. 체험학습의 흥분이 가라앉지도 않았을 텐데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원에 가는 아이들에게 부디 대한민국이 공정한 기회의 나라였으면 좋겠다.

마지막 남은 동물농장의 계명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아무쪼록 나의 착각이기를 바라본다.
댓글15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실수로 탄생한 음식, 이 끝내주는 맛
  2. 2 비 오는 날, 아내의 부추전이 반갑지 않습니다
  3. 3 임은정 검사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 이름'의 귀환
  4. 4 일본 충격에 빠뜨린 구인광고... 한국인들이 짐 싸는 이유
  5. 5 시어머니에게 오이지를 부탁한 남편, 왜 그랬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