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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장군 10.26 재평가와 명예회복운동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60] 그는 박정희와 싸우다 감옥에서 그의 피살 소식을 들었다

등록 2022.06.05 17:12수정 2022.06.0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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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자료사진

 
그는 박정희와 싸우다 감옥에서 그의 피살 소식을 들었다.

1975년 4월 인혁당 희생자 추모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고, 5월에는 천주교정의구현청년전국연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중정에서 1주일 조사를 받는 등 정보부와는 악연이 얽혔다. 그때의 수장이 김재규 부장이었다.  

그 김재규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사건이 10.26이다. 1980년 초 명동성당의 사순절 특별강론에서 김재규 부장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명운동에 나섰다. 

제가 79년 12월에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이돈명 변호사 요청으로 김재규씨 구명활동을 하고 다녔어요. 그때 김대중 김영삼씨가 김재규씨 구명청원서에 서명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박정희 암살이 없었으면 민주주의가 더 빨리 이뤄졌을 거라 이런 말이나 하고 그때 이희호 여사만 서명을 했어요.

심지어 당시 김영삼씨는 '내가 신민당이, 민주주의를 이뤄 내겠습니다' 하는데 진짜로 해야 할 말은 '정치인들이 제대로 못해서 박정희 독재에 희생된 학생 시민 성직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닌가요?

김재규씨 재판기록에도 나오지만 박정희가 부마항쟁 나는 것을 보고 그랬다고 해요. 100만 이든 200만이든 죽이면 된다. 캄보디아 봐라. 그래서 김재규씨가 이래서는 안 된다 생각해서 박정희를 쏜 것이기 때문에 10.26은 유신을 끝장낸 민주혁명이거던요. 그때 김재규 장군을 구했으면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을 겁니다. (주석 5)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시민 학살을 자행하는 와중에 5월 2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김재규 장군을 처형했다. 함세웅은 2000년 10월 강신옥 변호사, 김상근 목사, 안동일 변호사, 청화 스님과 함께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군사재판의 중지와 구명운동, 광주ㆍ전남 송죽회의 추모사업을 이어 10.26재평가와 명예회복을 추진했다. 현재 대법원에 재심청구를 했으나 부지하세월격이다. 그동안 추진위원회의 주요 행사이다. 

 △ 2001. 5. 24 고 김재규장군 21주기 추모식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삼성개발공원묘지
 △ 2001. 10. 26 "10.26의거 22주년 기념행사"
    "국민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발간 기자회견
 △ 2002. 5. 24 고 김재규장군 22주기 추모식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삼성개발공원묘지
 △2002. 10.25 "10.26의거 23주년 기념행사"
   "10.26의 역사적의의" 학술 심포지옴 개최 - 기독교회관 2층
 △ 2003. 5. 24 고 김재규장군 23주기 추모식
   -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삼성개발공원 묘지
 △2003. 10.25 "10.26의거 24주년 기념행사"
   2004. 5. 11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변정수) 김재규장군에 대한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 활동 착수 후, 심의 유보. 

추진위원회는 해마다 기일인 5월 24일을 전후하여 추도식을 거행하고, 때로는 '10.26의거 기념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2010년부터는 김재규ㆍ박선호ㆍ박흥주ㆍ유성옥ㆍ김태원ㆍ이기주의 '10.26의인들 합동추모식'을 거행하였다. 장소는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었다. 함세웅은 빠지지 않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추모사를 통해 10.26의 의미와 재평가를 역설하였다.

명동성당의 사순절 강론에서 했던 발언의 초지는 변함이 없었다.

김재규 부장이 공동체 차원에서 유신의 핵인 독재자를 제거했고, 즉 사익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분이 다소 힘든 일이 있고 차지철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하더라도 박정희 다음의 최고위 권력자 권한을 누릴 수 있었다. 시민들의 항의쯤이야 그냥 외면하고 망각하고 침묵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직책과 목숨을 걸고 그 일을 감행했다. 이것은 대단한 일 아닌가. 

더 큰 의(義)를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진 것. 이것은 이웃사랑이다. 또한 윤리신학의 원칙에서 보면 더 큰 재앙과 악을 막기 위해서 작은 악은 허락된다. 민주주의 파괴라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박정희 살해라는 작은 악을 저지르는 것은 공동선을 위해서는 가능하지 않은가. (주석 6)


주석
5> 서화숙, 앞의 글.
6> <함세웅 신부의 시대증언>, 24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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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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