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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이사장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61] 그가 은퇴를 앞두고 서둘렀던 일

등록 2022.06.06 13:25수정 2022.06.0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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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 ⓒ 박소희

 
그는 대단히 폭넓은 식견의 소유자이다.

깊이 있는 역사인식으로 소속의 경계와 울타리를 넘어선다. 초교파적이다. 목사ㆍ스님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이는 민주회복국민회의 시절부터 소급되고, 10ㆍ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기념사업회 등도 함께한다. 

만해 한용운 선사에 남다른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불교유신을 통한 불교개혁과 그 실천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의 개척자로서 시문화의 선구성을 높이 평가한다. 

만해는 참으로 선구자, 선각자셨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모형으로 해 설립된 실천불교승가회의 사실상 주보는 만해 한용운 스님인 셈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참으로 살벌하고 무서웠던 박정희 유신독재시절과 그리고 그 하수인 격인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독재 때에 자유, 인권, 민주화 그리고 민족통일 등 인간의 기본권과 국민으로서의 주체성을 지니며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주석 1)

그의 존경과 비판정신은 자신이 서 있는 터전을 성찰하는 데서 여느 엘리트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내로남불'은 정치권의 용어이기 전에 대부분의 집단ㆍ조직에서도 별로 차이가 없다. 종교계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들의 치부는 덮어두고 상대의 허물에는 과민하다. 함세웅은 기회있을 때마다 자기성찰을 잊지 않는다. 

그 당시 우리 가톨릭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사목 하에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안중근 의사와 같은 기적적 인물 외에 그 누구도 감히 조국 독립, 가톨릭의 대중화,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 등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삶을 살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만해 스님은 스스로 민족과 함께 하는 결단을 내리시면서 일제의 퇴치와 조국 해방을 위해서 전심전력하시고 또한 불교 권으로부터는 마치 이단처럼 취급 받으면서도 산 속의 불교가 도시 속의 불교, 법당의 불교가 대중 속의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셨으니 참으로 우리네의 예언자를 연상시킵니다. (주석 2)

2005년 8월 만해기념사업회는 제9회 만해대상실천부문상을 함세웅에게 시상하였다. 적잖은 상금 전액을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북에 봉헌했다. 이후 청암 송건호 언론상을 비롯 인권단체ㆍ기관 등에서 수상자로 선정하였으나 모두 사절하였다. 헌신을 사명으로 하는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은퇴를 앞두고 서둘렀던 일의 하나이고, 은퇴 뒤에도 열심히 관여했던 일이 있었다. 2006년부터 논의되다가 2013년 6월에 김상근 목사, 이창복 6.15공준위 위원장, 이석태 변호사, 인재근 의원 등과 함께 설립한 김근태 기념치유센터이다. 그는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유신ㆍ5공 시대에 고문을 당한 많은 민주인사들이 출감 이후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분들을 치유하고자 2009년 인권의학연구소를 설립한 데 이어 연장선상의 후속 사업이다. 굳이 명칭에 '김근태'의 이름을 넣은 것은 그가 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신의 고문피해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김근태 의장 추모미사를 열게 되었어요. 성당 측은 처음엔 거절했다가 시민들의 뜨거운 추모열기를 보고는 명동성당 미사를 다시 수락했어요. 제가 주관하면서 강론을 두 번 했어요. 김근태는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고통 받았던 사람들, 고문 받은 사람의 대명사였고, 죽음이라는 것은 화해라는 의미가 있으니, 그를 추모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화해, 마음 상한 사람들과의 화해, 원수들과의 화해, 가족들과 화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성서적으로 해석하고는 전야 행사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석 3)

함세웅은 2013년 7월 3일 3.1민주구국선언사건의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 "그 당시에도 악법 자체를 거부했고, 유신체제에 항거해 싸웠는데 지금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도 함께하는 데, 사제들만 안 하면 어색하니 함께 하자는 의견에 따랐다." 다시 법정에 선 그는 재판부의 판사ㆍ검사들에게 준열한 내용을 부드럽게 '최후진술'을 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뒤늦게나마 정의가 구현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유신헌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싸웠던 당사자였는데, 유신헌법에 의해서 재판을 받는다든지, 유신헌법에 의해 발동한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든지 하는 건 사실 우리에겐 큰 의미는 없다. 이미 40년 전에 그렇게 주장했던 사람들이니까… 그래도 공동체 안에서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기쁘게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재심 = 무죄라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당연히 위헌인 긴급조치를 발동한 당사자 박정희, 그에 따라 조사했던 중앙정보부, 기소했던 검사, 재판했던 판사, 또 거기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했던 공직자들은 책임을 지고 속죄해야 한다. 그것이 위헌의 참된 뜻이지, 절차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별 뜻 있겠느냐. 이미 사법부에서 많은 분들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내리고 사과했는데…우리는 나름 알려진 사람들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분들, 무명의 많은 희생자들, 고문당하신 분들, 그 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법부가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구상권이라는 제도가 있다는데, 공무원이 직무상 잘못이 있으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지만, 관여한 공무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 또한 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 박근혜 씨가 책임져야 한다. 우선 법무부가 나서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 (주석 4)


주석
1> <만해 한용운과 사제단>, <심장에 남는 사람들>, 224쪽.
2> 앞과 같음.
3> <함세웅 신부의 시대증언>, 648쪽.
4> 앞의 책, 63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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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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