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오월 광주항쟁 치유에서부터 시작된다

5월은 더 이상 비극적인 상처 아닌 약... 희롱은 상처 치유에 부질없어

등록 2022.05.25 14:27수정 2022.05.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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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가는 세월을 깐깐 오월, 미끄덩 유월, 어정 칠월, 둥둥 팔월이라 불렀다. 농경문화의 절기에 대한 표현이다. 보리타작과 모심기에 쉴 틈이 없다고 깐깐 오월, 벼 심은 논길에 자꾸 미끄러진다고. 모기와 더위에 씨름하다가 잠 못 이루면서 지나간다고, 곡식 익는 계절을 일컫는 말이다.

그 시작은 오월이다.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 등이 있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또 청소년의 달이라서 지갑을 열고 지출이 많은 달로 꼽힌다. 48개 기념일이 5월과 겹쳐 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시작된 레이버 데이(Labor Day)라고 일컫는 메이데이(노동절)를 필두로, 1998년 인도 뭄바이에서 처음 행해진 세계 웃음의 날과 연인들이 사랑의 표현으로 장미를 주고받는 로즈데이, 바다에 해초와 바닷말을 심는 바다식목일이 있다.


영국의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를 기리는 팬들이 수건을 휴대해 그의 책들과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타월데이 등 잘 모르는 각종 기념일도 세계적으로 열린다. 종교적으로도 칠칠절(七七節)로 불리는 오순절을 비롯해 사월 초파일에 이어 하안거라는 전통적 수행 기간도 시작된다.

바삐 지나가는 5월에 대해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시인 테라야마 슈지는 시 '나에게 5월을'에서 "빛나는 그 계절에 누가 그 돛을 노래했는가. 찰나의 나에게 흘러가는 시간이여"라고 했다. 그리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있다.

<5월 문학총서>에 실린 시인 우대식의 시 '오월'에서 5.18 광주항쟁을 아래와 같이 은유했다.

"오월의 세상은 나의 약이다. 탄약 가루처럼 날리는 송홧가루도, 오월의 어느 날 밤. 추적대는 빗소리도 내겐 중한 약이다. 그 비가 산성이라면 나는 알칼리성의 덩어리가 되어 저 비는 내겐 약물이다. 오월의 저 산은 내겐 약산이다. 저 강은 내겐 약강(藥江)이다. 저 아침도, 저 밤들도 잠 깨어 두드리는 허무의 문짝도, 저 날들에 모두 약이다. 라일락 꽃나무가 꺾여 내 등판을 찍어 내리는 5월은 나의 약이다. 5월은 내 푸른 죽음이다."

5월은 더 이상 비극적인 상처가 아니라 약이고, 희망임을 노래한 것이다.


1980년 5월,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이 각자 자신의 사연으로 지난 2021년 10월 노래를 만들어 사람들 앞에서 직접 들려주었다. 올해 5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오월 어머니의 노래가 불렸다.

열다섯 분의 오월 어머니가 사십여 년을 품어 온 당신의 오월을 노래했다. 서울과 부산, 광주에서 순회공연으로 맺힌 한을 노래로 풀었다. 오월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바로미터는 잘못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다.

아직도 과거의 낡은 이데올로기에 갇힌 인사들이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2차, 3차로 가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7세기 신라의 원효대사는 <보살계본지범요기>에서 "다른 법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부른다. 희론(戲論, 언어적 유희)이 있는 자는 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오월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부질없는 말들이다. 이런 논리의 희롱에 붓다도 침묵을 지켰다.

앞으로 상태와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척도·잣대 의미로 쓰이는 용어로 볼 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는 오월 광주항쟁을 치유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올봄 마지막 달, 오월의 희망은 우리에겐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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