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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에게 공권력 맡긴 '한동훈 현상', 독재자들의 일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2인자의 공권력 장악, 6월 항쟁 이후 35년 만에 재현...역사적 퇴행

등록 2022.05.26 11:59수정 2022.05.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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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제일 왼쪽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보인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전인 지난 2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동훈 당시 검사에 대해 의외의 평가를 내놓았다.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그를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 평가를 했던 윤 대통령이 지금 그를 소통령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 공직자 인사 검증 권한을 법무부 장관이 된 그에게 위임하는 한편, 보좌진인 인사정보관리단을 그의 직할로 두기로 했다.

지난 24일 법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령에 관한 입법예고를 내놓았다. 그 전날 법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법무부공고 제2022-159호는 개정령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법무부장관이 인사혁신처장에게서 위탁받는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인사정보의 수집·관리 사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장관 밑에 인사정보관리단장을 신설하고, 이에 필요한 인력 20명(검사 또는 고위공무원단 1명, 검사 3명, 3급 또는 4급 1명, 4급 또는 5급 4명, 5급 4명, 7급 3명, 8급 1명, 9급 1명, 경정 2명)을 증원하는 내용으로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가 개정됨에 따라 신설되는 인사정보관리단장의 하부조직을 구체화하고 증원되는 인력의 직급별 정원을 정하려는 것임."

기존의 대통령민정수석비서실이 수행했던 인사정보의 수집·관리를 인사정보관리단이 맡게 됐다. 그런데 인사정보관리단을 한동훈 장관 밑에 두기로 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던 민정수석실을 한동훈 장관 보좌용으로 바꾼 것이다. 소통령이니 왕장관이니 하는 말이 나올 법하다.

윤석열 사단은 이미 검찰을 장악했다. 위 시행령에서도 3~4명의 검사를 인사정보관리단에 배치하도록 했다. 또 공석 중인 검찰총장을 대리하는 대검찰청 차장을 비롯해 서울중앙지검장 및 차장 4명과 법무부 검찰국장도 윤석열 라인으로 채웠다.

이 라인은 행정부에도 뻗쳐 있다. 법무부 장관 외에 법무부 차관과 법제처장도 검찰 출신이다. 대통령실에는 훨씬 많다. 총무비서관·법률비서관·인사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인사기획관·부속실장도 검찰 출신들이다. 정권 핵심부에 검찰 출신이 이 정도로 포진했다는 것은 이 정권의 주체세력이 검찰임을 의미한다. 검찰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게 됐다.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윤석열 라인이 곳곳에 뻗쳐 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그 중심에 있으므로, 검찰에 대한 한동훈 장관의 입김은 자연히 강해질 수밖에 없다. 역대 법무부 장관들보다 훨씬 '친밀'하게 검찰과 접촉할 수 있게 됐다. 민정수석을 밑에 둔 법무부 장관이 검찰과도 긴밀한 관련을 갖게 됐으니, 이 정도면 일반적인 2인자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소통령이나 2인자로 불렸던 정권 실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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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한동훈 장관의 위상은 한국 현대사 차원에서도 꽤 이례적이다. 소통령이나 2인자로 불렸던 과거 정권 실세들과 비교하면 그의 위상이 쉽게 드러난다. 역대 정권 2인자들의 권세를 수치적으로 계량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2인자가 행사한 정책결정권과 인사권, 또는 그가 보유한 비공식적인 사조직과 정치자금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주의할 것도 있다. 사극이나 시대극에서 조성되는 이미지를 근거로 2인자의 위상을 가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특성상 실제보다 과장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데 자주 등장하는 이기붕·김종필·김형욱·이후락·차지철 등의 권세는 실제 이상으로 묘사되기 쉽다.

차선으로 택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방법 중 하나는 2인자들이 차지한 위치를 근거로 그들의 위상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국가 공권력을 관리했는가 여부가 이런 비교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최고권력자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것에 더해 공권력 기구까지 관리했는가를 살펴보면, 역대 2인자들 간의 비교가 어느 정도 수월해진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공권력 기구는 군대·경찰·정보기관이지만, 한국에서는 검찰도 포함시켜야 한다. 한국 검찰은 본래 영역인 기소 및 공판 유지보다는 경찰의 소임인 수사 및 강제수사(체포·구속·압수수색)에서 훨씬 두각을 보였다. 경찰 수사권을 견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신 떠맡아왔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에는 군대·경찰·정보기관뿐 아니라 검찰까지 포함시켜 역대 2인자들의 공권력 장악 실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려 광종 때인 958년 과거제가 시행된 이래로 고려·조선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시대에도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은, 최고 권력자들이 공권력 담당자의 위상을 가급적 낮추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고대 사회의 무인과 연결되는 공권력 담당자의 직급을 실제 위상보다 낮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백 명을 지휘하는 장교는 비상시에 총리급이나 장관급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을 전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교들의 이 같은 실질적 권력은 그들의 직급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는 공권력이 정권을 수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거꾸로 정권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최고권력자들은 2인자에게 공권력 관리자의 소임을 맡길 때 특별히 신중을 기해야 했다. 2인자에게는 가급적 맡기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도 2인자에게 그런 소임을 맡기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꽤 여러 번 있었다.

한동훈 현상은 역사적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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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위해 대기해 있다. ⓒ 연합뉴스


한국 현대사에서 2인자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이승만 정권 때의 이기붕, 박정희 때의 김종필·김형욱·이후락·차지철, 전두환 때의 노태우·장세동, 노태우 때의 박철언, 김영삼 때의 김현철, 김대중 때의 권노갑, 노무현 때의 문재인, 이명박 때의 이상득 등등이다.

이 중에서 2인자 시절에 공권력을 담당한 인물들은 박 정권 때의 김종필·김형욱·이후락과 전 정권 때의 노태우·장세동이다. 김종필·김형욱·이후락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고, 노태우는 국군보안사령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고, 장세동은 국가안전기획부장(안기부장)을 지냈다.

노태우가 역임한 내무부 장관은 경찰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지만 경찰 조직인 치안본부를 관리하는 자리였다. 직접적인 공권력 관리자로 볼 수는 없지만, 경찰 공권력과 밀접했다는 점에서 공권력 관리자에 준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2인자가 공권력을 관리하는 현상이 한국 현대사에서는 박정희·전두환 때 나타났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권 2인자인 박철언은 특수부 검사 출신이긴 했지만, 그가 노 정권하에서 역임한 직책은 정무제1장관·체육청소년부장관·국회의원이었다. 그래서 2인자가 공권력을 관리하는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전의 군부정권 때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2인자에게 공권력을 맡기는 것은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지만, 국민들과 민주화 세력의 일상적 도전으로부터 정권을 사수해야 했던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그런 위험을 스스로 감수했다. 공권력 관리자가 된 뒤에 2인자로 부상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그런 현상을 묵인해야 할 정도로 정권이 불안정한 시절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2인자와 공권력 관리자의 일체화가 정치적 불안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이 아니므로 공권력 관리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이므로 공권력 관리자에 준한다고는 할 수 있다. 거기다가 윤석열 사단이 곳곳에 포진한 상태에서 정권과 검찰이 고도의 일체성을 이루게 됐으므로, 한동훈 장관과 검찰의 관계는 한층 긴밀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2인자 한동훈이 공권력까지 관리하는 특별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례적인 상황이므로 '한동훈 현상'으로 명명해도 과하지 않다. 6월항쟁 이후 나타나지 않던 2인자의 공권력 장악이 3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뒤늦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나타나듯이, 2인자에게 공권력이나 그에 준하는 자리를 맡기는 것은 뭔가 불안에 쫓기는 독재자들이 했던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한동훈 현상은 역사적 퇴행이다. 그런 퇴행을 윤석열 대통령이 답습해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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