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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의 유행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책이 나왔습니다] 안치용·이윤진 지음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마인드큐브)

등록 2022.06.02 16:37수정 2022.06.0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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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마인드큐브) ⓒ 마인드큐브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년)은 미국 현대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매우 중요한 미국 작가이다.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삶을 마감한, 매우 불행한 개인사로 유명하다. 오닐의 많은 작품 가운데 스스로 "피와 눈물로 점철된 오랜 슬픔의 연극"이라고 평한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사후인 1956년에 초연(初演)·출간됐다. 작가의 개인사가 고스란히 녹아든 자서전적 작품이어서 오닐이 생존시 공표하지 못 하게 했다.

오닐의 작품을 포함하여 서구 문학엔 기독교의 맥락이 빈번하고 깊숙이 깔려 있어 번역문으로 그들의 문학을 접하는 우리 같은 이방인은 그 맥락을 종종 놓친다. 제목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가 그러한데, 구약성서 열왕기상 19장 4절의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개역개정)와 연관된다. 여기서 자기 자신은 구약성서의 대표적 인물 엘리야를 말하며 영어 성서는 "he himself went a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로 돼 있다.

'광야로의 하루의 여로(a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가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로 살짝 변용됐다. 구약성서의 전후 내용을 요약하면 권력자(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내 이세벨)로부터 "넌 24시간 안에 죽은 목숨이야"란 통첩을 받고 서둘러 도망치는 모습이 '광야로의 하루의 여로'이다. 하루(a day's journey) 안에 생사가 갈리는 긴박한 상황이다. 연극의 '긴 하루(Long Day's Journey)'는 긴(Long)이란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희곡 안의 시간은 아침부터 자정 무렵까지로, 성서와 달리 하루(a day's journey)를 다 채우지 않았기에 덜 긴박하다.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의 출간을 알리는 글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 썼듯, 나에게 인류의 21세기는, 생사가 갈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긴 여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머니즘 등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격랑을 겪으며 인류가 21세기를 끝냈을 때 우리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을 것인가. 그때까지 살아있지는 않겠지만 대표적으로 <성장의 한계>(갈라파고스)에서 분석대상 기간의 종점으로 2100년을 잡았듯, 21세기의 끝은 나를 포함한 현존 인류에게 사유의 공통 지평 같은 것이기에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내용도 그렇지만 '밤'이란 단어 때문에 비극적인 혹은 절망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밤으로의 긴 여로'의 시간대는 아침부터 자정까지로, 엘리야의 기준으로는 새벽의 분투를 남겨두었다고 할 수 있다. 확고하게 절망적이지만 아직 희망의 문이 닫히지 않아 일말의 여지가 남은.

21세기의 인류에게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식에 대해 어떤 이들은 너무 비관적인 전망을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무책임한 언동이라고, 또 어떤 이들은 그레타 툰베리처럼 "어떻게 감히(how dare you)"(툰베리) 여지를 두어 사태를 오도하냐고 질책할 법하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배려의 정치경제학'

<밤으로의 긴 여로>에는 '안개인간'이란 표현이 나온다. 용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21세기를 더듬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합한 말 같다.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할 아무런 근거 없이 너무 유약해 보이는 ESG를 가지고 사태를 헤쳐나가야 하니 말이다.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은 최근 각광받는 ESG에 관해 최대한 정확하고 충실하게 정리한 책이다. ESG를 제목에 넣은 비슷한 책이 잇달아 출간되었지만 내 판단에 불성실한 책이 많아 보였다.

이것이 지금 이 책을 내는 이유이지만, 기실 다른 점을 이야기하기보다 왜 ESG이냐를 변명하는 게 우선이지 싶다. 작금의 엄중한 상황에 비해 ESG라는 방법론은 너무 유약해 보이고, 실제로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데에 동의한다. ESG자본주의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한다는 발상은, 그러한 엄중한 상황인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가 만들어놓은 지금 체제는, 그 정도의 변화조차 감내하기 힘들기에 또는 간신히 받아들일 수 있기에, 현실적으로 'ESG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지속가능사회'가 아마 그나마 수용되어 실현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더 강력하고 확실한 방법론이 없지는 않겠으나 구호를 외치는 것과 현실을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블랙스완' 같은 것이 등장하면 그때는 더 근본적이고 더 과격한 해법이 검토되겠지만, 그 해법이 실행되어 뭔가를 성취하며 '안개'를 뚫고 나가는 비용은, 인류에게, 생명에게, 지구에게 미칠 고통의 총량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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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개인적으로 <밤으로의 긴 여로>가 열린 결말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본다.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의 끝에 자리한 제임스 러브록의 인용문 또한 열린 결말을 논한다.

"우리가 가이아의 존재 안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아무런 규범도 법률도 필요치 않다.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제임스 러브룩 <가이아-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중에서

"품값이 들더라도 ESG에 관해 제대로 다뤄보자"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말로 원래 자본시장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사회책임투자(SRI)가 확대되면서 재무성과와 비재무성과를 두루 감안한 투자결정이 이루어졌는데, 비재무성과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게 ESG이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계층 간 불평등 확대,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 여러 문제가 문제가 중첩되면서 ESG는 자본시장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개선할 침로, 혹은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같이 일하는 ESG연구소 이윤진 연구위원과 "시중에 ESG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런저런 책이 있으나 제대로 정리된 게 없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조금 품값이 들더라도 ESG에 관해 제대로 다뤄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위원 외에 6명의 리서치 어시스턴트(RA)가 조사를 도왔다. 410개라는 주석 숫자가 말해주듯,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ESG 전문가로 이곳저곳 불려다니며 거의 빼놓지 않고 받는 질문은, "이게 언제까지 가는 바람이냐"는 것이다. 즉 ESG가 유행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나는 불가역적 변화라고 대답한다. ESG열풍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작이라는 게 우리의 진단이다. 투자영역에서 시작된 ESG가 일종의 미러링 방식으로 기업경영에 급속하게 반영된 뒤 시민생활과 사회 영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ESG투자(자본시장)→ ESG경영(경제·산업계)→ ESG사회(시장·공공·시민사회)의 흐름이 이미 시작되어 되돌릴 수 없는 형국에 접어들었다.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은 무엇보다 "ESG는 가장 강력한 시민혁명이자 세계혁명"이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ESG로 이어지는 인류문명 사유의 역사와 현재의 관점에서 구체적 내용과 함의를 다뤘다. ESG가 지나가고 말 유행이 아니라고 믿지만 그렇게 되려면 동시에 ESG를 과도하게 상업화하고 경박화하지 말아야 한다. ESG를 철학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가 의제 확산을 위해 몸 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인 'ESG코리아'에서 철학대표라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역할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지평의 비극' 문제는 중요하다. 솔루셔니즘을 포함하여 현 체제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에 적합하지 않음은 지평(地坪, horizon) 문제에서 포착된다. '지평의 비극'(the tragedy of the horizon)은 2015년 9월 당시 영란은행 총재였던 캐나다 출신 경제학자 마크 카니(Mark Carney)가 제안한 용어이다. 카니는 "환경경제학에서 대표적인 문제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었다면 기후변화에서는 '지평의 비극'이 된다(Climate change is the Tragedy of the Horizon)"라고 말했다.

'지평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기(cycle)와 지평(혹은 시야)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비즈니스와 정치가 내다보는 의사결정의 주기는 2~3년에 불과하고 재정안정과 관련되어 봤자 이보다 조금 더 긴 정도이다. 테크노크라트의 통제를 받는 각국의 중앙은행 등 정부 당국 또한 각종 규정에 속박돼 있어 (금융)정책 등을 펼치는 지평(horizon)이 좁다.

기후변화, 혹은 기후위기는 이 지평 너머에 위치하기 때문에 각국과 세계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만일 기후변화가 당국에 의해 재정 및 금융 안정의 요소로 파악되기 시작했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때가 된다는 게 카니의 설명이다.

카니의 지적대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의 지평은 수백 년에 걸쳐지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한국 등 근대국가의 정책은 불과 몇 년을 내다본다. 정책 일관성을 담보할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라고 할 대통령의 임기는 한국을 예로 들면 기껏 5년이다.

탈석탄과 탈원전 같은 국가적 이슈가 선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바뀌고 공약한 사항도 다가올 선거를 의식하게 되면 종종 변경되는 정치 체제에서 정부와 관료집단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애초에 무망해 보인다. 자본주의와 서구 민주주의를 국가 틀로 수용한 근대국가 체제의 본원적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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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Occupy Wall Street(OWS) 시위 모습 ⓒ 픽사베이

 
지속가능사회, 혹은 ESG사회는 기후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평화롭고 평등한, 그리고 자유롭고 번성하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할 때 많은 것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지평의 차이를 조정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는 정치 문제이며, 그렇다면 기후위기의 극복도 정치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ESG는 투자용어에서 비롯했지만, 더는 투자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면적인 정치와 급진적 운동의 용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목에 '배려의 정치경제학'이 들어간 이유는, ESG가 경영이나 제도 또는 요즘 잇달아 출간되는 책들에서 주장하듯 단지 실무가 아니라 비주류 경제학의 별칭이 정치경제학이듯, ESG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정치경제학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 내용에도 GDP의 문제, 탄소소득, 사회적가치 측정, 연기금의 책임투자 등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의제를 다뤘다.

'배려'는 내가 판단하기에 ESG의 핵심이다. ESG투자와 관련하여 주요하게 언급되는 보고서 <Who Cares Wins>의 주제이기도 하고. 가장 단순하고 익숙하지만, 결코 쉽게 실현되지 않는 가치에서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배려'가 그중 대표적인 말이다.

안치용 ESG연구소 소장 겸 ESG코리아 철학대표

ESG 배려의 정치경제학

안치용, 이윤진 (지은이),
마인드큐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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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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