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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으로, 고등학교에서 '야자 리그' 열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고등학교 시절 체력은 평생의 건강 좌우

등록 2022.06.05 20:04수정 2022.06.0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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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3학년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치러진 지난 4월 13일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수치를 보니 새삼 놀랍다. 고등학생 아이들의 건강 상태와 체력 정도를 들여다보노라면 충격 그 자체다. 개별 측정한 '학생 건강 체력 평가(PAPS, 팝스)'를 체육 교사로부터 건네받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직접 입력하면서 반 아이들의 '현실'을 봤다.

참고로, 팝스란 학생의 건강 상태를 평가해 알맞은 신체 활동을 처방하고 학생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근력과 순발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체지방 등을 측정하는데, 나이와 성별에 따라 등급 기준이 다르다. 2009년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2011년 고등학교까지 시행이 의무화되었다.

교실엔 고도 비만부터 저체중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공존한다. 키가 190cm를 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160cm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몸무게의 차이는 더 크다. 채 50kg이 안 되는 흡사 젓가락 같은 아이부터 그 두 배인 100kg에 육박하는 아이가 짝꿍으로 앉아있다.

문제는 '체격'이 아니라 '체력'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팔굽혀 펴기를 10회 넘게 할 줄 아는 아이가 드물다. 윗몸 일으키기는 옆에서 지켜보면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다시 몸을 앞으로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끙끙대며 신음을 내기 일쑤다.

팝스의 의무 측정 종목은 아니지만, 턱걸이의 경우는 아예 할 줄 아는 아이가 없다. 처음 철봉을 잡기 위해 뛰어오르는 반동이 아니라면 단 한 개도 해내지 못한다. 턱걸이를 2개 이상 하는 아이가 반 25명 중 단 세 명뿐이다. 차마 근력 측정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그래서인지 교내 체육대회의 종목도 무척 단출해졌다. 인기 종목인 축구와 농구 등을 제외하고, 오래달리기나 줄넘기 등 기초 체력이 필요한 종목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운동장 여섯 바퀴가 넘는 1500m 거리를 홀로 달릴 수 있느냐며 반문할 정도다.

대체 종목으로 마련한, 이른바 '하버드 스텝' 종목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들 전체가 동시에 하나의 계단을 200회 오르내리는 것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수한 아이가 많은 반이 이기는 게임이다. 도중 포기자가 속출해 100회로 줄였지만, 아이들은 그마저 버거워했다.

지금 남은 거라곤, 축구와 농구, 족구, 피구 정도다. 달리기 종목은 100m 계주뿐이다. 족구나 피구가 도입된 건, 체력이나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여럿이 함께할 수 있어서다. 족구는 어떻게든 네트를 넘기기만 하면 이기는 수준이고, 피구는 공을 서로 주고받는 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부모뻘인 내 체력이 아이들보다 나을 성싶다. 한번은 그들 앞에서 줄넘기 2단 뛰기와 팔굽혀 펴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흉내조차 내지 못하겠다면서 놀라워했다. 명색이 이팔청춘인 아이들은 자신의 체력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체력 저하의 원인은

그렇다고 영양 부족을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이 점심과 저녁 먹는 학교 급식을 떠올려보면 열량은 차고도 넘칠 정도다. 육류 반찬이 1년 365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공되는 마당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체력 저하의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옳다는 이야기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운동 부족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운동은커녕 종일 몸을 움직일 기회조차 마땅찮다.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을 오가고, 점심시간 급식소에 가고, 방과 후 학원과 독서실에 가는 게 평균적인 아이들의 일과이며, 곧, 하루 운동량의 전부다.

그나마 주당 1~2시간의 체육 수업 시간이 없다면, 하루 1만 보는커녕 1천 보도 걷기 힘든 게 요즘 아이들의 일상이다. 풍부한 영양과 넘쳐나는 열량은 오로지 공부하는 뇌를 통해 소비된다. 이러다 머리는 점점 커지고 팔다리는 점점 왜소해지는 '외계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교육과정이 엄연한데 체육 수업 시간을 마구 늘릴 수도 없다. 설령 수업이 늘어난다 해도 가르칠 교사도 없다. 교과 수업이 아닌, 학교의 일상 속에서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뛰어놀거나 하다못해 교정을 산책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는 게 급선무다. 여유가 생긴다 해도, 그 시간 경쟁자들은 책상에 앉아있다고 생각한다면 운동은 사치가 되고 만다. 하긴 체육대회 때조차 운동장의 구석 자리에 앉아 학원 숙제를 하거나 단어장을 들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다.

무엇보다 '엉덩이의 무게와 점수가 정비례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고1 때부터 대입을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며 엄포를 놓는 교사들이 태반이다. 고1 때 성적이 수능 점수를 결정한다는 교사의 으름장에 태연해할 아이는 거의 없다.

등교 후 아침 독서 시간이 끝나면 일곱 시간의 정규 수업이 이어지고, 곧장 방과 후 수업이 진행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두 시간 남짓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한 뒤 귀가한다. 하루 중 무려 14시간여 동안 줄곧 딱딱한 의자에 앉아 지내는 셈이니, 차라리 '고문'이다.

"당장은 엉덩이의 무게와 점수가 정비례할진 몰라도, 종국에 인생의 행복과 정비례하는 건 자신의 건강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체력은 평생의 건강을 좌우한다."

수업 시간 아이들 앞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이야기다. 중간고사 점수에 애면글면하는 그들에게 정작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표는 팝스라고 설명한다. 공부는 얼마든지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어도 건강은 잠시도 유예해선 곤란하다고 중언부언한다.

학교가 병원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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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졸거나 딴청 피웠을 텐데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 서부원


'공자님 말씀'만으로 시큰둥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판'을 깔아주기로 했다. 야자 시간을 빌려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미니 체육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름하여 '야자 리그'다.

우선,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하도록 하고, 종목은 체육관에서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농구와 탁구, 배드민턴 등으로 제한했다. 운동장이 비어있어도 사용할 순 없다. 야간 조명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그 시간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승 상품도 따로 준비하는 등 체육대회로서 구색을 갖춰갈 작정이다. 농구공과 네트를 제외한 라켓과 셔틀콕 등은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심판은 참여한 아이들이 돌아가며 맡기로 했다. 입소문이 나서 희망자가 시나브로 늘어나면 횟수를 조금씩 늘리게 될 것이다.

'야자 리그'가 정착될 때까지 당분간 몇몇 동료 교사들이 힘을 보태기로 했다. 공부든 운동이든 아이들이 머무는 곳에 임장해야 하는 건 교사로서 당연한 책무다. 내심 퇴근 뒤 따로 시간을 내 헬스클럽 등에 다니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드디어 지난달 31일 저녁, '야자 리그'가 개막했다. 첫 번째 종목은 농구다. 밤늦은 시간 응원단 하나 없는 썰렁한 체육관이었지만, 경기에 참여한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평소 같으면 꾸벅꾸벅 졸거나 딴청 피우며 허송했을 아이들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고백하자면, 느닷없이 시작된 '야자 리그'는 몇몇 아이들의 건의가 발단이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야자 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요구였다. 학교에 남아 공부는 해야겠는데,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예년 같으면 양자택일하라며 무질러버렸을지도 모른다.

일단 첫발은 나름 성공적으로 내디뎠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진짜 운동이 필요한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불러내 함께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 정작 운동이 필요한 아이들은 움직이기 싫어하고, 평소 운동을 즐기는 다부진 아이들이 앞다퉈 참가 신청을 하는 역설 말이다.

"만약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지면 책임 소재를 두고 덤터기를 쓸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몇몇 동료 교사들은 점수 걱정부터 쏟아낸다. 대입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쥐고 흔드는 관성에 오랫동안 길들어진 탓이다. 솔직히 나 역시 부담스럽긴 하다. 다만, 아이들의 중간고사 성적표보다 고혈압과 당뇨, 지방간 등의 병명이 적힌 상담 자료가 더 심각하게 다가와서다. 학교가 병원이 아니지만, 적어도 올바른 생활 습관을 형성하도록 교육해야 할 책무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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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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