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말한 그 '법치국가',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주장] 아직도 검찰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윤석열 대통령

등록 2022.06.09 10:01수정 2022.06.0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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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 대통령실 제공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  

8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이 '검찰 편향 인선'을 지적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답변이다. "과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 선진국에서도,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번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정부 소속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면서 덧붙인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윤 대통령의 답변은 과연 윤 대통령이 법치국가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들게 한다.

시대에 따라 변화된 법치국가라는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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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라는 개념은 18세기 말, 독일의 학자 요한 빌헬름 페테르센이 <국가학 문헌>에서 사용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그 개념이 변화하였다. 사진은 페테르센의 <국가학 문헌>. ⓒ Forgotten Books

 
법치국가의 사상적 배경은 국가를 '법질서 아래 결합된 인간의 집단'으로 규정한 칸트에서 비롯한다. 이런 사상적 배경에서 1798년, 독일의 학자 요한 빌헬름 페테르센이 자신의 저서 <국가학 문헌>에서 '법치국가(Rechtsstaat)'라는 고유한 복합어를 사용한 이래 19세기 독일에서 '형식적 법치국가'의 개념이 등장한다.

형식적 법치국가는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가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 작동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형식적 법치국가에서는 법의 내용이나 그 내용의 정당성은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법이라는 형식만 빌려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데 악용할 소지가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나치 독일이었다.

이에 '실질적 법치국가'라는 새로운 법치국가 개념이 대두한다. 실질적 법치국가는 법치국가의 기본인 법의 내용과 정당성을 확보했는지와 실질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지를 중시한다. 형식적으로 의회가 제정한 법이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한다면 국가를 작동하는 통치원리로써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질적 법치국가는 법의 정당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바로 민주주의다. 실질적 법치국가는 민주주의라는 일정한 정치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 사회에는 최고법인 헌법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실질적 법치국가에서는 민주주의적 헌법에 따라서만, 즉 입헌민주주의에 따라 통치원리로써 법을 사용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의 목적과 내용 또한 기본권 보장의 헌법 이념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실질적 적법절차를 요구하는 법치주의를 의미(헌법재판소 판례 96헌바36)"한다며 한국이 실질적 법치국가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법치국가라는 개념은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거치며 발전해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느닷없이 검찰 출신의 법조인이 정관계에 포진한 것이야말로 법치국가라고 얘기했다. 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중시한 현대의 실질적 법치국가 정의에도 맞지 않고 특정 집단이 아닌 법의 통치를 강조한 근대의 형식적 법치국가 정의와도 상충한다.

과거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는 윤석열의 검찰 중심 시선

사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법치주의와 관련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 바 있다. 작년 3월, 윤 대통령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힘 있는 사람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똑같이 처벌받고,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군부독재를 문민정부로 바꿔낸 것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그 이후의 민주화 운동은 결국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문민정부 이후 검찰의 반부패 활동이 우리 사회 특권을 없애고,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위 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법치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칭하면서 검찰이 공평한 수사를 통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며 문민정부 이후 새로운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대통령선거 유세현장에서도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재직 중에 자기 측근을 다 교도소에 보냈다. 네 편, 내 편 없이 처리해온 게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전통"이라며 '성역 없는 수사'가 법치국가의 전통이라 얘기한 바 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검찰 출신의 인사 구성이 곧 법치국가'라는 이번 발언을 종합해보면 윤 대통령이 법치국가라는 개념을 검찰의 시선에서 수사 위주로만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검찰총장 시절에는 그것이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기득권을 향해 날카로운 수사의 칼날을 겨누는 사람이 아니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든 노동자의 불법행위든 간에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계속 천명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치국가 개념의 역사를 통해 살펴봤듯이 단순히 법에 따른다고 법치국가가 아니다. 실질적 법치국가로서 법의 민주적인 정당성부터 따져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또 대통령이라면 법과 원칙을 내세우기 이전에 정치적인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쪽을 우선해야 마땅하다. 갈등이 일어났다고 해서 기업이든 노동자든 '공평하게' 법에 따라 대응을 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더 이상 법에 따라 수사만 하면 전부인 검사가 아니다. 부디 그 점을 한시라도 빨리 깨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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