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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 성교육,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

아이에 대한 배려 없이... 대충 때우려다 실패한 일에서 배운 것

등록 2022.06.15 14:01수정 2022.06.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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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엄마,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 거야?"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에게는 이 말이 신호처럼 느껴졌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이 되던 무렵이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성교육의 신호탄이 폭죽처럼 쏘아 올려졌다.


생각은 있었지만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다. 아이는 그 후 다시 물어보는 일이 없었지만 마음이 바빠진 것은 나였다. 곧 5학년이 되는 큰 아이는 또래보다 성장이 빠르다 보니 하루라도 미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급할 일도 아니었는데, 첫아이를 키울 땐 왜 그랬는지, 뭐든 그렇게 조급했다.

다짜고짜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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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vato elements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마음을 먹으니 대책 없는 나의 실행력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서 들었는지 아들의 성교육은 아빠, 딸의 성교육은 엄마가 해주는 것이 좋다는 말에 꽂혔다는 것이다. 엄마가 해주는 게 좋다 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나는 주말, 잠에서 깨기 위해 뒹굴거리는 아이의 곁에 앉았다. 나름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는, 다짜고짜 성교육을 시작했다. 그런데 후에 생각해 보니 비장하게 시작한 것은 내 입장이었을 뿐,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을까 싶다.

그러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나는 나름 진지하고 느끼하지 않게, 그리고 최대한 건조한 말투와 사무적인 억양으로, 생물학적인 설명에 초점을 맞추어 마치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딱, 설명을 마쳤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앞으로 겪게 될 2차 성징과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후다닥.

그런데 '끝.냈.다!'라는 뿌듯함에 취한 것도 잠시. 그야말로 잠도 덜 깬 눈으로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딸아이의 눈빛에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내 동공이었다.


'이 눈빛은 뭐지? 이해를... 못했단 이야기인가? 아니, 대체 왜 어디서 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지? 어... 떡... 하지...?'

하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말 나온 김에 이 골치 아픈 것을 얼른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뻔뻔해지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민망함이 슬금슬금 밀려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쩔 수 있나. 눈 딱 감고 심호흡을 한번 한 후에, 아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태도로 전광석화처럼 설명을 마쳤다. 그리고 물었다.

"알겠어? 이제?"
"... 아니... "


헐. 또다시 돌아오는 아무 생각 없는 눈빛. 아. 망했다. 아니 왜? 분명 성교육 만화책도 미리 좀 보여줬는데! 다시 차분하게 설명을 해줘야 하나? 그러나 이미 나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민망함도 극에 달했다.

"아니, 왜... 이해를 못 해?"

더 이상은 덤덤한 표정을 유지할 수가 없어 끝끝내 나는 화를 내버렸고, 우리의 성교육은 그렇게 아무런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이 나버렸다.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처참했고, 나는 후에 좀 더 괜찮다는 성교육용 만화책을 딸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이 문제의 행사를 갈음했다. 아이에게 혼란스러움만 더한 것은 아닌지, 대체 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인지 끝끝내 알 수 없는 채로 말이다.

성교육의 핵심은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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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성교육은... ⓒ envato elements

 
그런데, 요즘 또 그때가 왔다. 이번에는 둘째 딸아이다. 그런데 첫째 때 무참한 실패를 맛봐서인지,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2차 성징이야 언니를 많이 봐 왔으니 따로 설명할 것 없겠는데 임신과 출산. 이게 문제다.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는 이제 제법 다 컸다고 생각되는 첫째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제 동생에게도 성교육을 해줘야 될 것 같은데.. 어쩌지?"
"엄마, 그냥 만화책 보여줘. 우리 집에 책 있잖아. 엄마가 막 뭐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엄마, 그건 좀 아닌 거 같아."
"... 아,.. 그래?"


엄마가 직접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 긋는 딸의 말에,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뭐가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지. 나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그때 넌 뭐가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거야?"
"아... 엄마, 나 그때,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방법은 알고 있었어. 책에 다 나오거든."
"근데 왜 계속 이해가 안 간다고 했어?"
"음... 나는 왜 아기를 가져야 하는 건지 몰랐던 거지. 남자와 여자가 왜 아기를 갖는 건지.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거야."


아. 그랬구나. 순간적으로 아이의 멀뚱했던 모든 표정이 이해가 갔다. 맞아. 그거였다. 나는 아기를 가지는 '과정'에 집중한 성교육만을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 행위 그러니까 섹스를 어떻게 하게 되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4학년, 아직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에 눈 뜨지도 않았을 나이의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공감 없이 섹스와 임신을 이야기한 셈이다. 에휴, 이건 뭐 이유식 건너뛰고 너무도 급하게 밥을 먹인 꼴이랄까.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먼저 이야기해 줬어야 했는데 로맨스는 쏙 빼고 과정만 설명했으니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한 건 당연했겠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만 가지고 씨름한 거였다.

그러니까 어쩌면 성교육의 핵심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행위에만 집중하지 않는 것. 이게 정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접근의 성교육이 나와 다른 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가르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또한 사랑이라는 전제조건을 가진 아름답고 건강한 성을 강조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호기심이 아닌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 둘째 딸의 성교육은 그냥 좋은 책 한 권으로 끝내려고 한다. 그리고 내 역할은... 음... 그냥 슬쩍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면 어떨까 싶다. 이성에 대한 마음, 배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에 대해. 이것이 엄마인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성교육이 아닐까.

사춘기 성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님들이 부디 나와 같은 실패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성교육 #사춘기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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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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