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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무슬림 같아 보여요?" 더는 묻지 않도록

[김수진의 '별 일 있는' 캐나다] 무슬림 가족 테러 사건 1년... '애도' 넘어 변화 촉구하는 시민들

등록 2022.06.09 14:22수정 2022.06.0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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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별일'들, 한국에 의미있는 캐나다 소식을 전합니다.[편집자말]
얼굴을 본 적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저녁 산책길에 나설 때면 가끔씩 안부가 궁금해지는 아이가 있다. 올해로 10살이 된 그 아이는 지난해 6월 엄마와 아빠, 누나 그리고 할머니를 한날한시에 잃었다. 상쾌한 저녁 공기와 더불어 시작됐을 가족과의 산책길에서 아이는 홀로 살아남았다. 집을 나설 땐 함께였으나 돌아갔을 땐 혼자였다.

단순사고가 아니었다. 혐오범죄였다. 트럭 한 대가 돌연 연석을 넘어 일가족에게로 돌진했다. 가족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들이 목표물이 된 것은 그저 '무슬림'이기 때문이었다.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는 이를 '테러'라 규탄했고 실제로 가해자는 살인과 테러 혐의로 기소됐다.

일가족이 숨진 지 1년이 된 6월 6일을 전후로, 그들을 기리고 '이슬람 혐오증'(이슬라모포비아 Islamophobia;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공포와 증오감을 느끼는 것)이라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조직됐다.

혐오와 싸우기로 결심한 친구들

도중에 끊겨버린 그들의 산책을 끝맺는다는 의미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 가두행진을 벌였다. 학교마다 조기가 게양됐고, 어린 학생들은 학교 담장에 초록색과 보라색 리본을 달아 추모의 뜻을 표하며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추도식에서는 숨진 일가족 중 가장 어렸던 15살 딸의 친구들이 두 달 여 동안 작업한 벽화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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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가족이 테러를 당한 곳에 세워진 벽화. 숨진 딸의 친구들이 두 달 여에 걸쳐 만들었다. ⓒ 김수진

   
벽화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록색과 15살 딸이 가장 좋아했던 보라색으로 만들어졌다. 벽화를 작업한 친구들은 CBC뉴스를 통해 벽화에 그려진 그림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벽화 가득 그려진) 벌집 모양 육각형은 퍼즐 조각을 나타내는데, 다양성을 상징하는 서로 다른 피부색의 손들이 그 퍼즐을 맞추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사건 이후 딸의 친구들은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서 나아가 변화를 위해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슬람 혐오증에 대항하는 청소년 연합'(YCCI; Youth Coalition Combating Islamophobia)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창립 멤버 중 하나인 사피야가 CBC키즈뉴스를 통해 밝힌 생각은 앞으로 이슬람 혐오증에 대항하기 위해 제도를 강화해야 할 정치인들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추모예배와 가두행진 이후 사피야는 말했다. 교육에 있어서, 온라인 혐오와 일상의 대화에 있어서, 구체적인 변화와 같은 후속조치를 보기 원한다고. 그리고 사피야는 말이 치명적인 행동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슬람 혐오증에 대한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할 때,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그러한 생각은 말이 되고 행동이 됩니다."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학교에서 혐오를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혐오표현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런 유형의 문제들은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살인은 그냥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져온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친구를 잃은 어린 소녀의 외침이 지극히 당연한 말이어서일 것이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워지는 것은. 그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부끄러움이다.   

사건 이후 캐나다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 역시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온타리오 시민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이른바 '우리의 런던 가족법'이라는 법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어린이들이 이슬람 혐오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변경할 것, 단체 등록을 금함으로써 백인우월주의 그룹들을 와해시킬 것, 혐오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때 이를 조사할 주정부 책임 단체를 구성할 것, 공직에 더 많은 소수인종을 고용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상정된 이 법안은 아직 통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캐나다는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다문화, 이민국가다. 한국에 살았다면 아이의 친구 중에 요르단이나 르완다에서 온 아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러니 아이 친구들을 초대할 때면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든가 가족 아닌 남자가 있으면 집에서도 히잡을 벗지 않는 등 종교와 문화를 배려해야 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학교에서도 '다양성'에 대해 그리고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에 대해 중요하게 가르치고 배운다. 그럼에도 이슬람 혐오증으로 인한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다. 언어폭력을 가하거나 히잡을 벗기는 일, 진급에서 제외시키는 일 등 개인을 향한 크고 작은 혐오 행위 외에, 트럭 공격으로 인한 일가족 참사와 같은 이런 일도 처음이 아니었다. 2017년 1월 퀘백시의 이슬람 사원에서는 총기난사로 인해 6명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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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가족이 테러를 당한 곳 근처 교회의 푯말. ⓒ 김수진

  
1년 전 우리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건 현장을 찾았을 때, 그곳에는 그들의 이유없는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꽃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다시 찾은 그곳에는 친구를 잃은 아이들이 화합을 기원하며 만든 벽화가 세워져 있었다. 그들이 테러를 당한 횡단보도는 초록색과 보라색으로 칠해졌고, 근처 교회에는 "우리의 런던 가족,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라는 푯말이 보였다.

사실이다. 그들과 함께 안타까워 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그 반대편에 선 이들보다 비할 수 없이 많다. 이슬람 혐오범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향한 혐오범죄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고 더군다나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은 지금이 바로 행동해야 할 때임을 말해준다.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며 히잡을 쓰는 일이 목숨을 거는 일이 되지 않도록, 어린 무슬림 아이가 걱정어린 눈으로 "엄마, 내가 너무 무슬림 같아 보여요?"라고 묻는 일이 없도록.
#캐나다 #이슬람 혐오증 #무슬림 가족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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