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물에 머리 감고, 모내기... "다 재미있었어요"

예산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단오제 행사 진행

등록 2022.06.13 14:59수정 2022.06.1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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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모줄을 잡고 아이들은 모내기에 열심이다. ⓒ <무한정보> 박봉서


충남 예산지역 대안학교 '사과꽃발도르프학교(예산읍 석양리)'가 지난 3일 하루종일 들썩였다.

올해 3월 문을 연 뒤 처음으로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단오제. 마당 한쪽에 만들어 둔 논에 물을 대느라 아침부터 지하수 모터 소리가 시끄럽다. 손바닥만한 논이라도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가뭄에 사정은 다른 논들과 다를 바 없다. 

단오는 해의 기운이 가장 강한 음력 5월 5일을 이르는 말로,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설날, 추석과 더불어 세 번째로 큰 명절로 여겼지만, 그 의미가 바랜 지 오래다. 오늘날 농업이 맞이한 운명과 다르지 않다.

발도르프교육은 리듬이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의 리듬이 아이에게 내면화되는 교육을 지향한다. 그 리듬은 해와 달, 별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의 흐름과 같다. 그래서 단오제와 같은 절기행사를 통해 그 의미를 몸소 경험해보도록 하고 있다.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단오제의 첫 순서는 모내기. 마당을 삽으로 뒤집고 두드려 간신히 논꼴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모내기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두 평 남짓한 논에 한 줄로 서 하늘을 향해 엉덩이를 치켜든 아이들을 마주하고 보니 예쁘다 못해 고맙기까지 하다. 아예 논바닥에 주저앉아 까르르 웃음을 쏟아낸다. 며칠 동안 물을 채운 논에 벌써부터 물거미 몇 마리가 미끄러지고 삐뚤빼뚤 심어진 모가 씩씩하다. 

먹거리를 기르는 일, 먹기 위해 몸과 마음을 쓰는 것을 스스로 귀하게 여긴 옛사람들의 마음으로 볍씨를 고르고 뜨거운 물에 소독해 모판에 싹을 틔워 논에 심는 것까지 빼놓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준비해온 터였다. 뙤약볕에도 아직 꼿꼿한 감자, 당근, 땅콩, 상추, 딸기와 함께 사과꽃학교의 벼농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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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물에 머리감기. 2학년 은별이가 교사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 <무한정보> 박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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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제 때 쓸 창포물을 우려내고 있다. ⓒ <무한정보> 박봉서


다음은 창포물에 머리감기. 우물가엔 미리 준비해둔 창포물이 세숫대야에 가득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이내 바뀌어 "머리가 부들부들해요"라며 좋아한다. 그렇게 여섯 아이의 머리감기가 끝나고 두 분 선생님 차례. 2학년 은별이가 얼른 다가와 선생님 머리를 감겨준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두 개의 교실 안에서는 만들기 체험이 이어졌다. 수리취떡 만들기. 수리취는 산야에서 많이 자라는 엉거시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이라는데, 생김새도 이름도 낯설어 누가 물어볼까 무섭다. 대신 쑥절편을 수레바퀴모양의 떡살에 찍어내는 수리치떡을 만들기로 했다. 요즘 딸기는 겨울이 제철이라는데, 텃밭에 심어 놓은 딸기는 이제야 겨우 열매를 보여준다. 그러니 제철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3·4학년 교실에선 부채만들기, 장명루(실팔찌) 만들기가 한창이다. 색색의 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설명하는 4학년 재민이가 자못 의기양양하다. 오색실을 양손 손가락에 나누어 걸고 "검지가 널뛰기를 합니다. 위 아래 위 아래" 하며 이리저리 엮어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느라 부산하다. 그 옆에선 붓 잡은 한석봉마냥 부채 위에 이런저런 꽃을 그려 넣는 1·2학년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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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채소가 가득한 들밥광주리. ⓒ <무한정보> 박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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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제를 앞두고 부모님들이 직접 만든 그네에 아이들이 매달려 있다. ⓒ <무한정보> 박봉서

 
교실 안팎으로 분주하던 입과 손이 더 없이 바빠진 건 들밥 때문. 봄나물과 쌈채소가 가득 담긴 광주리에 그늘 한켠에서 부쳐내온 배추전이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옹기종기 모여 갓 따온 상추쌈에 우렁쌈장을 올려 한 입 가득 밀어 넣는다. 농가월령가에도 '점심밥 잘 차려 때 맞추어 배불리라'고 했다.

배도 불렀겠다, 다시 마당으로 나가는 아이들. 부모님들이 함께 만든 그네 옆으로 줄지어 섰던 아이들이 하나둘 허공을 향해 소리치며 날아오른다. 사내아이들은 솟구쳐 올라 마당에 뛰어내리며 으스댄다. 그네가 사선을 그리는 동안 바로 옆에서 수직으로 뛰어오르는 널뛰기가 시끄럽다. 두어 번 덜커덩거리던 널빤지가 장단을 맞추자마자 고성이 터져 나온다. 장단은 가락이 되고, 가락은 춤이 되어 날아올랐다 떨어진다. 옆에서 구경하던 엄마들도 의기양양하게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다. 

다른 한쪽에서는 칡넝쿨을 엮어 만든 고리던지기. 그늘을 찾아 앉을 곳을 빌리는 어른들과 달리, 30도를 넘어선 한낮의 더위에도 아이들은 마당 한 가운데를 차지했다. 더러는 아예 모래마당에 드러누웠다. 

"대추나무 시집보내야 한대요~" 저마다 흩어져 뭔가를 찾는 아이들. 얼마 지나지 않아 돌멩이 하나씩 들고 대추나무 아래로 아이들이 모였다.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지고 조막만한 손에 들려온 돌멩이는 나뭇가지 사이에 끼워졌다. 한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을 나누어 가졌다. 이제 가을이 오면 다람쥐마냥 매달려 대추를 따 먹을게다. 

봄이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마당가에 흔한 민들레, 엉겅퀴처럼 아이들은 이 계절을 온 몸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언젠가 바람에 태워 씨앗을 날려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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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보다 더 신난 학부모의 널뛰기. ⓒ <무한정보> 박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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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2학년 시연이의 고리던지기. ⓒ <무한정보> 박봉서



아이들은 어땠을까? 이날의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

시연 : "논에 들어가서 모 심는 게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어요. 창포로 머리감는 것도 좋았어요. 이 두 개가 제일 좋았어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도 좋았어요."

세현 : "아빠가 아침에 깨우는데 졸려~~ 하다가 '오늘 단오제잖아' 하니까 '단오제~~~' 하면서 벌떡 일어났어요! 전날 옷도 다 챙겨놓아 쓱쓱 입고 나왔어요. 아침도 안 먹고 싶었어요."

은별 : "단오제 하는 걸 꿈도 꿨어요. 엄마가 아침에 깨우며 '오늘 단오제잖아~' 했는데, '단오제 했는데?' 하니 엄마가 '무슨 말이야~?'라고 했어요. 논에 들어갈 때 처음에는 지렁이가 있는 것처럼 간질간질했는데, 들어가 보니 푹신푹신 좋았어요."

은설 : "내맘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부채 만들기, 정확히 넣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고리던지기, 높이 가서 뛰는 게 재미있는 그네타기, 사람들에게 장명루 만들기 가르쳐준 것, 전 부쳐 먹은 것, 왔다갔다 심부름 한 것까지 다~ 재미있었어요. 아참! 창포물에 머리감기, 처음에는 싫었는데 시원해서 좋았어요."

재민 : "널뛰기랑 그네뛰기가 높이 뛰어올라 긴장돼서 재미있었어요. 널뛰기는 때에 맞춰 뛰고 높이 뛰니까 재미있어요."

시원 : "장명루 만들 때 중간에 힘들었는데, 끝까지 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창포물에 머리감을 때 차가웠어요. 모내기는 두 번째 해보기 때문에 쉬웠고요, 그네가 높이 올라갔을 때 스릴있고 멋졌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대안학교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단오제 #모내기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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