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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경찰국 신설? 199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나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경찰권력 견제의 본질

등록 2022.06.14 18:20수정 2022.06.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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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모습. 2020.12.10 ⓒ 연합뉴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가칭) 설치 추진이 논란이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지난 5월말 경찰 치안정감 승진자를 면담한 것과 연장선상에 있는 이슈다. 이 면담은 사실상 '경찰청장 후보 면접'으로 해석됐다. 이 와중에 행안부장관의 지시로 꾸려진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비공식 직제인 치안정책관실을 공식 조직으로 격상하는 안을 건의하기로 결론냈다. 사실상 1991년 폐지된 '경찰국'의 부활인 셈이다. 

이를 두고 경찰 내부와 정치권에서 찬반이 교차한다. 14일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노조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 경남경찰직협에서 반대 성명이 나왔다. 14일 경남경찰직협은 경찰 내부망인 폴넷에 "검찰은 독자적인 인사와 예산권을 갖고 기능을 상승시키며 요직에 두루 배치하는 반면 경찰청은 행정안전부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해 현 정권에 충성하게 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가 불순하다"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국민은 윤석열 정부가 검찰공화국에 이어 경찰 장악을 본격화하고 있는 게 아닌지 심각하게 우려한다"면서 "지금의 경찰을 남영동 대동분실로 상징되는 과거 권위주의 경찰로 되돌리는 퇴행적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막강해진 검찰을 견제하고자 검찰개혁을 했듯이, 경찰 역시 너무 강해지면 안 되므로 경찰에 대한 견제도 당연히 필요하다. 동시에 경찰 견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행안부 경찰국' 설치가 과연 경찰 견제의 본질에 부합하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찰 내외부에서 터져나온 '경찰 독립론'

1991년 8월 1일, 내무부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독립했다. 그런데 이때에도 경찰청을 내무부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해 7월 5일자 <조선일보>엔 "내무부 내에 치안국 또는 경찰국을 신설화하려" 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소개한다. 

당시 민주자유당 정권은 경찰 권력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경찰 조직이 경찰청으로 독립하게 되면 과도한 권력을 갖게 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내무부 경찰국' 아이디어는 경찰청 독립을 추진하게 된 애초의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제적인 발상이었다.


경찰청 설치 논의를 촉발시킨 직접적 계기는 서울대 제적생 권인숙이 경기도 부천경찰서에서 문귀동 경장으로부터 모욕과 폭행을 당한 사건(1986.6.6. 부천서 성고문 사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1987.1.14.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억누를 목적으로 국가권력이 경찰 조직을 악용한 사례들이 '경찰 독립론'에 불을 붙였다.

경찰 독립론은 일반 국민들뿐 아니라 경찰 내부에서도 들끓었다. 1989년 5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 '내무부 예속서 벗어나야 한다'에 보도된 것처럼, 6월항쟁 7개월 뒤인 1988년 1월에는 충주경찰서 전경들과 이병무 경위가 경찰과 정치권력의 분리를 주장하고, 경찰대 졸업생·재학생 441명이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이듬해 4월에는 부산시경찰국 간부들이 경찰의 중립을 촉구하는 일도 발생했다.

당시 경찰이 강조한 것은 자신들을 '국민 탄압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1988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경찰 중립화 자성의 소리'는 "경찰이 '정권 유지의 도구', '정치권력의 시녀' 역에서 과감히 탈피해 참된 민생치안에 전념하는 민주경찰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찰 조직 자체 내에서 분출되고 있다"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이 같은 자아비판은 민주화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정치·사회 분야 각계의 활발한 민주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국 치안에 동원돼 이용당하면서도 정권의 바람막이로 국민적 질타를 당해온 경찰 조직은 계속 정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개혁 의지를 내세운 노태우 새 정권의 큰 과제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정권의 국민 탄압에 경찰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취지에 따라 경찰 독립이 추진됐다. 그러므로 경찰에 대한 견제 역시 이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민자당 정권의 조치는 이 같은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마땅한 방향은 '민주적 통제', 그러나 민자당은

노태우 정권은 내무부 내에 경찰국이나 치안국을 만들어 경찰을 계속 통제하고자 했다. 또 경찰을 통제할 목적으로 지휘감독규칙까지 만들려고 했다. 위의 <조선일보> 기사는 '내무부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감독규칙' 제정이 시도됐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반발을 초래했다. "내무부 측은 사태가 확대되자 '검토를 위해 만들어본 시안에 불과하다'며 한걸음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고 기사는 전한다.

정권이 경찰을 이용해 국민을 탄압하지 못하게 하는 데에 경찰청 독립의 취지가 있었다. 그러므로 경찰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면 국민 혹은 국민 대표자에 의한 민주적 통제 방안을 강구하는 게 마땅했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영향력 행사를 높이면서 정권과 경찰의 간격을 떨어트리는 게 경찰 견제의 본질이다. 

하지만 민자당 정권이 내놓은 방안은 그 본질에 역행했다. 경찰과 국민의 관계는 내버려둔 채 경찰에 대한 정권의 통제에만 급급했던 것. '내무부 경찰국' 발상은 당시의 정권이 국민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그런 발상에는 민자당 정권뿐 아니라 권력기관들의 사리사욕도 상당부분 반영됐다. 경찰의 위상이 자신들을 추월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일부 기관들의 조바심도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경찰보다 위상이 높았던 검찰과 국가안전기획부 등에서 그 같은 경쟁심 혹은 조직이기주주의가 표출됐다. 1991년 7월 3일자 <동아일보> '경찰청 위상 싸고 정부 내 이견' 기사는 "정부 내에서도 검찰·안기부 등 이른바 공안부처들이 특히 완강하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전언을 보도했다. 이런 기관들이 경찰청을 통제하라는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경찰청엔 행정공무원을 기획관리관으로 파견해서 경찰을 조종·관리함으로써 경찰을 장악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고 전했다. 일종의 감시관을 경찰청에 파견해 경찰을 조종하고 장악하자는 구상까지 나온 것이다.

경찰청에 대한 민주적 통제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견제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권력과 경찰의 과도한 밀착이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역사를 감안한다면, 국가권력의 견제는 최소화고 민주적 통제가 최대화되는 것이 당연하고도 절실했다. 1991년 당시의 경찰청 통제책은 이 점을 무시한 채 민자당 정권과 검찰·안기부 등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에 불과했다.

행안부-경찰 구도와 법무부-검찰 구도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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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5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추경안 심사를 위한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법무부에도 검찰국이 있다.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10조는 법무부 검찰국이 검찰행정에 관한 종합계획이나 국제 형사사법 공조 등의 사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이처럼 법무부에 검찰국이 있으니 행안부에도 경찰국을 둘 수 있지 않나 하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법무부 검찰국과 달리 '행안부 경찰국'은 과거의 내무부 치안본부처럼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에서도 나타났듯이, 법무부와 검찰은 긴장관계에 놓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법무부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법무부가 검찰에 밀리기 쉽다는 점은 이미 경험적으로 드러났다. 검사들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단결하면서 장관이나 총리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현상은 익히 있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법무부에 검찰국을 둔다 해도, 그것이 법무부에 대한 검찰의 예속을 조장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대한 검찰의 반발에서도 드러났듯이, 법무부 검찰국은 물론이고 법무부장관 직으로도 제대로 다루기 힘든 곳이 바로 검찰이다.

반면, 행안부(내무부)와 경찰은 외부 개입이 없으면 행안부 쪽에 힘이 더 실리기 쉽다. 이 점 역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이런 구도 아래서 행안부 경찰국까지 두게 된다면 행안부와 경찰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되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파워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경찰에 대한 향후의 견제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견제는 국가권력의 통제 강화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의 강화' 속에서 모색하는 게 사안의 본질에 부합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31년 전의 민자당 정권처럼 행안부 경찰국을 추진하는 것은 경찰청 독립의 취지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정권과 경찰의 밀착을 조장해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 되기 쉽다. 한국 민주주의를 30여 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악수가 될 공산이 있다는 이야기다. 
#행안부 경찰국 #이상민 행안부장관 #경찰 독립 #내무부 치안본부 #검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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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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