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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김무성·유승민 길 걷나... 보수 여당 대표 수난사

[이슈] 대통령과 갈등하며 '찍어내기' 당했던 과거 대표들과 구도 유사

등록 2022.07.06 22:33수정 2022.07.0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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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1차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태양은 둘이 아니다. 하나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6월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처한 상황을 꿰뚫는 말이었다. 현직 당대표 징계 안건이 당 윤리위원회에 정식 회부되는 사상 초유의 일, 그 이면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최상위로 하는 수직적 당정관계(옛 당청관계) 구축을 노리는 여권 내 파워게임이 자리하고 있다. (관련기사 : 이준석 운명의 날 D-1, 권력투쟁으로 확전된 '성상납 의혹').

실제로 이 문제는 더 이상 이 대표의 징계 안건 사유, 성상납 의혹 및 증거인멸 교사의 진위 여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윤핵관(윤 대통령의 핵심 관계자)'로 불리는 인사들이 최전선에 나서서 이 대표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고, 윤리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집권여당 내부의 역학관계는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언론에선 이 상황을 '여당 대표 수난사'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았던 다른 여당 대표와 이 대표의 경우는 다르다. 집권여당 대표의 리더십이 '대통령실(과거 청와대)'과의 갈등으로 흔들린 사례는 훨씬 한정적이다. 

'단 하나의 태양'을 위해 벌어진 여권 내 파워게임의 희생자,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박근혜 정부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다.

[김무성] 친박 좌장에서 비박계 대표로... 옥새 들고 날랐지만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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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후보등록 끝날 때 까지 최고위 없다" 2016년 3월 24일.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 대표는 '상향식 공천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에 죄송하다'며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를 포함한 '공천 보류 5개 지역을 무공천 한다'고 밝혔다. ⓒ 이희훈

  
'옥새 들고 나르샤'로 불리며 지금도 회자되는 '공천 파동'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그 밑에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와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이의 오랜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무성 전 대표가 처음부터 '비박계'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때 '친박계 좌장'으로까지 불리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는 2010년 당시 '세종시 수정안' 때문이었다. 세종시로의 정부 부처 이전 규모를 두고 정부와 국회 사이 갈등이 계속됐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중재안'을 내놓으며 수습에 힘썼지만, '원안'을 고수한 박근혜씨는 "가차 없는 이야기"라고 단언했다. 오히려 "친박계에는 좌장이 없다"라며 김무성 의원과의 결별을 명확히 했다. 김 의원도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라며 맞섰다(관련 기사: 친박 좌장 김무성, 박근혜에 "관성에 젖어 거부하지 말라").

친박계의 보복은 확실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배제됐다. 무소속으로 다시 생환해 당에 복귀한 그가 우여곡절 끝에 당권을 움켜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박계의 '주도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대표의 가장 큰 권한은 공천권이지만, 김무성 대표는 정작 2016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공천관리위원장조차 본인 뜻대로 앉힐 수 없었다. 박근혜 청와대와 친박계의 입김이 너무 강했던 탓이다. 그가 주장한 '상향식 공천'도 관철되지 못했다(관련 기사: 김무성 "선거 지더라도 전략공천 불가, 공관위 해체"). 김 대표가 이후 실체를 인정했던 '살생부 명단'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청와대와 친박계의 위세에 눌려 공천을 관장하는 공천관리위원장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했다. '박심'을 등에 업은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 당대표 견제의 전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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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4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공천 보류 5개지역을 무공천 하겠다고 밝힌 당일 오후 국회에서 최고위원들이 모여 긴급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이희훈

 
결국 비박계 학살을 막기 위해 김무성 대표가 선택한 것이 공천 결과에 대한 승인 거부였다(관련 기사: "유승민 지역구 등 5곳 무공천" '옥새투쟁' 선언한 김무성). 이른바 '옥새 파동'의 전말이다. 이후는 잘 알려진 것과 같다. 김 대표는 부산 영도대교에서 그의 정치인생을 대표하는 사진을 남겼고, 이후 당무에 복귀하며 당시 비박계 주요 인사들의 지역구를 지켜냈다. 특히, 박근혜 청와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한 유승민 당시 의원이 무소속으로라도 생환할 수 있도록, 당의 무공천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홍을 겪은 새누리당은 2016년 총선에서 참패했고, 특히 당의 텃밭에는 친박계가, 험지에는 비박계가 대거 공천됐던 탓에 의회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 쓴 김무성 대표는 당대표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중량감 역시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그 뒤에 '박심'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유승민] 여야 모두로부터 응원 받던 원내대표, '배신자 프레임'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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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0일. 국회법 거부권 행사 이후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2015년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한 박근혜 청와대의 찍어내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역시 한때 '원조 친박' 중 한 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며 유 원내대표는 '할 말은 하는' 원내대표를 표방했다. 그의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로 꼽힌다(관련 기사: '야당의 언어'로 연설한 유승민). 이 자리에서 그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창조경제를 성장의 해법이라고 자부할 수 없다"라며, 청와대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당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여당 내 일부와 야당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선언이었지만, 박근혜 청와대와 친박계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를 쫓아내기 위한 작업이 물밑에서부터 진행됐다. 갈등이 점화된 건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청와대의 '시행령 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국회의 본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지만,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거부권'을 행사하며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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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6월 29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배신의 정치" 발언이 나왔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주어야 한다"라며 사실상 유승민 원내대표를 저격했다(관련 기사: 박 대통령, 유승민에 직격탄 "정치권은 정부 책임만 묻는다"). 친박계는 대통령의 의중을 확실히 읽고 수행했다.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퇴 압박이 거세졌고, 의원총회에서도 청와대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원내대표 사퇴 권고'를 결정했다. 대통령의 압박에 여당이 굴복한 것이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는 직에서 물러났다(관련 기사: 새누리당 '대통령의 뜻'대로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한다"
). 하지만 친박계는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생명마저 끊고자 했다. 그를 2016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한 것(관련 기사: 새누리, '비박 학살' 현실화 유승민 보류... 이재오·진영도 날려). 내부적으로는 공천 탈락을 결정해놓고, '보류'라며 마지막까지 발표하지 않았다. 원내대표직에서 노골적으로 찍어내자 오히려 정치적 역풍이 분 것을 의식한 청와대와 친박계의 전략이었다.

알다시피, 유승민 전 의원은 이 때문에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귀환했다(관련 기사: "당의 모습 민주주의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 하지만 이후 '배신자 프레임'은 줄기차게 그를 따라다녔다. 지난 대선 당내 경선과 지난 6.1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 때도 그 꼬리표를 지우지 못했다.  

이준석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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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연합뉴스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일련의 갈등에서 묘한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이, 친박계의 자리에 윤핵관이 있는 셈이다. 사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와 갈등을 빚은 바도 있다. 소위 '울산회동' 등을 통해 극적인 화해를 '연출'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지역 기반 대신 세대 기반 지지층을 쥐고 있고, 지상전보다 공중전에 능한 이준석 대표는 지금까지 몇 차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상납(성접대) 의혹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인해 그의 리더십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은 말을 아끼고 있다. 이 대표가 '윤심'과 '윤핵관'을 분리시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실제로 윤핵관 뒤에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이준석 대표 입장에서는 이를 인정하면 본인에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학 특임교수는 "윤핵관의 뒤에는 윤심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라며 "만약 윤 대통령이 '이준석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하나가 되어서 국정을 도와달라'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면, 지금 윤핵관들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공교롭게도 이준석 대표 역시 한때 박근혜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이후 김무성-유승민으로 대표되는 비박계과 정치적 행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윤심'을 등에 업은 김은혜 후보에게 저격 공천당한 것처럼, 이번에는 이준석 대표가 윤핵관들로부터 저격당할 위기에 놓였다. 

오는 7일 당 윤리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이준석 대표가 앞선 보수 여당 대표들의 수난사를 반복하게 될지 혹은 다른 길을 걷게 될지도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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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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