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민주당의 미래, 과연 '97세대'에 맡길 수 있을까

[주장] 출사표 연달아 나왔지만, 가슴은 뛰지 않는 이유...불평등 문제 대안 제시해야

등록 2022.07.11 14:38수정 2022.07.11 16:19
25
원고료로 응원
a

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의원(왼쪽부터). ⓒ 공동취재사진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소위 '97세대'(1990년대 학번, 1970년생) 대표주자들의 민주당 당대표 출마가 이슈다. '세대교체'로 상징되는 이들은 민주당을 떠난 청년세대를 다시 불러올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97세대, 현실 파악이 제대로 안 된다

97세대 주자들은 민주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이유로 '검수완박(친명계·처럼회 간접 비판)' '이재명 의원의 명분없는 계양구 출마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공천' 그리고 '팬덤정치' 등을 꼽는다. 이 진단은 지난 4일 민주당의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내놓은 지방선거 평가리포트의 내용과 같다.

그런데 민주연구원과 97세대 주자들이 참패 원인으로 짚은 여론조사엔 문제가 있다. 민주연구원 리포트는 '정권심판론이 여전히 유효했고 자체 여론조사 결과로도 기존 민주당원들이 투표하지 않은 이유도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컸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지선 패배원인을 물으며 '정권심판 항목'을 뺀 한길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a

지난 6월 15일 한길리서치가 발표한 여론조사 속 문항. 민주당 선거 패배의 이유를 물으면서 '정권심판론'은 문항에 들어가지 않았다(쿠키뉴스 의뢰, 6월 11일~13일 조사). ⓒ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사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참패 주요 원인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미 회자된 바 있다. <신동아>에 실린 조귀동 기자와의 대담도 그 중 하나다. 이 매체 6월호에 실린 기사 '노무현 키드 20%, 윤석열로 잠시 이탈하다'에 따르면, 대선 당시 방송3사 출구조사로 분석한 결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실책으로 집을 구매하고 결혼을 준비해야 할 30대가 20%나 이탈했다고 봤다.

조 기자는 민주당 내에서 가장 크게 제기된 '인물책임론(이재명·송영길)'보다는 대선 연장전의 성격이 되게 만든 민주당 전체의 책임을 더 큰 원인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원인 진단은 민주연구원 리포트와 97세대 주자들 사이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개 '민주당의 못해서'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포장됐다. 

민주당이 처한 위기는 매우 심각하지만
 
a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97세대가 언급한 '검수완박 강행'이 일정 부분 지방선거 패배 원인이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이 처한 위기는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보통 일베들의 시대>의 저자 김학준은 "국가적 기획물로서의 '평범한 가정'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퇴조하며 전 사회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과 이에 따른 공포, 수치심과 같은 파괴적이면서도 공동체에 적대적인 감정이 확산된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가 힘들어지는 청년들의 '헬조선'에선 냉소와 혐오가 늘어나고, 진보라는 배부른 이상이 발 붙일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에 대해 97세대가 내놓은 일성은, 최소 출마선언문으로만 판단해볼 때 너무 근시안적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민주당' '불확실성·불공정·불평등 방치 반성' 등의 구호에서 청년세대, 나아가 국민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근원적 대안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지방선거 뒤인 6월 20일, <경향신문>은 지식콘텐츠 스타트업인 언더스코어와 협업해 '두 얼굴의 공정'이라는 연재 기사를 냈다. 이 기획은 IMF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 체제가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했지만 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쉽게 모아지지 않는 이유를 조명한다.

"청년층 내에서도 성별·직업·거주지 등에 따라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경험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여 년의 궤적을 따라 확인해보니 불안정성은 양극화·계층화 돼 나타나는 특징도 발견됐다." - 연재 '두 얼굴의 공정' 중

이는 양극화가 심화돼 더이상 '특정세대 주도의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7년 대선 때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30대(1980년대생)가 이번 대선에서 이탈한 것 또한 이 결론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97세대에게 요구되는 건 생물학적 세대 구분에 근거한 설익은 세대교체가 아니라 축적된 경험으로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할 비전, 국민의 기대감을 민주당으로 다시 불러올만한 방법 제시여야 하지 않을까. 

97세대가 해야 할 일 - '리스크' 짊어지기
 
a

박용진 의원에 항의하는 유치원 원장들 2018년 10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용진 의원이 주최한 유치원 비리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반대하는 유치원 관계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박 의원을 향해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대선이든 지선이든 전당대회든 정치인의 매력을 뽐내기 위해선 '차별화'가 필수다. 그런데 이 차별화는 리스크를 짊어져야 정당성을 얻는다. 하지만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하는 97세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경선 때부터 경쟁에 뛰어든 박용진 의원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박용진 의원이 내세우는 차별점은 '중도확장성'이다. 그러나 중도확장성을 설파하는 현재보다 그가 더 주목을 받았던 때는 '유치원3법' '현대차리콜' '삼성저격수' 등으로 이름을 알리던 때였다. 한유총과의 쉽지 않은 한판, 재벌시스템을 향한 두려움 없는 도전이란 리스크를 감수할 때 국민은 그를 눈여겨 봤다. 

"진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관통하는 불평등, 빈곤, 사회경제적 불안, 복지 사각지대, 재정 건전성 같은 관료적 미신과의 전면전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이런 중요한 싸움은 정작 늘 뒷전으로 밀려나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중략) 보통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지 않는 정치인들이 86세대를 비판하는 게 그저 기성 권력을 상대로 한 무기력한 도발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박가분 작가가 <중앙일보>에 실은 글이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박용진 의원을 비판하지만, 다른 97세대 주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특히 "'협치'나 '의회민주주의'라는 말로 개혁의 교착상태를 미화하기 바쁜 것은 아닌지요"라는 지적 말이다. 

97세대가 해야 할 일 - 리스너 프로젝트

97세대 주자가 민주당 내 청년정치인들을 잘 챙긴다고 해서 이 시대의 청년을, 당 바깥의 유권자들을 대표할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대표하려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그랑드마르슈'라는 국민설문조사 캠페인을 벤치마킹한 '리스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렴했으나, 대선 패배 이후 이 결과물들은 조용히 사라졌다. 이것부터 제대로 분석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프랑스에서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마크롱의 전략을 민주당의 97세대가 배웠으면 한다. 500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아 10만 명의 전국 유권자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중 2만5000명에겐 심층 면담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 캠페인을 기업이 한다고 가정하면 일종의 표적집단면접조사(FGI, Focused Group Interview)에 해당하는데, 이는 소비자의 선호도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제대로 된 상품을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그랑드마르슈'는 결국 정확한 타겟팅과 정치캠페인 설계로 이어져 마크롱 승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97세대가 해야 할 일 - 가치동맹
 
a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2일(현지시각) 수도 파리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마크롱에게 배워야 할 점은 '중도를 기계적 균형으로 오판하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천영준 칼럼니스트는 <시사저널>에 실은 글에서 "프랑스의 고질적인 사회주의 정책병을 사회당 정부 장관이었던 마크롱이 뛰쳐나와 극복한다는 드라마가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면서 "공자가 말한 대로 어정쩡한 중립이 아닌 민심을 파고드는 전략, 도리(道)에 적중(中)하는 방식의 중도 노선이 키(key)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제3노선을 고민하는 정치인들은 마크롱의 형식이 아니라 정신을 연구하고, 진영정치에 또 다른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고민해야만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을 만하다. 중도정당이라는 형식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는 8월 28일 뽑히는 당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 행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때문에 전당대회 국면에서 '중도확장'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원싸움'이라는 기술에 집중해 진짜 민심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당대표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에게 바란다. 민주당이 처한 지금의 위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하고, 불평등·양극화·격차라는 시대 상황을 제대로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치동맹'을 만들길 말이다. 그래야 민주당이 잃어버린 기반인 '분열된 청년세대'가 개혁의 진정한 지지세력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댓글2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동대문에서 일하는 딸이 본 화물노동자 아빠의 파업
  2. 2 '추한 중년 스티브유'가 돼버린 남자의 이야기
  3. 3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
  4. 4 그녀가 달라졌다, '나이키 사장님' 집에서 무슨 일 있었나
  5. 5 노옥희 울산교육감 사망, "1시간 전까지 업무 충실했는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