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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노동자상 조롱하는 일장기, 손 놓은 지자체

부산시·동구청, 노동자상 주변 구조물 장기화 방치... 50여일 넘겨

등록 2022.07.08 16:31수정 2022.07.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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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 강제징용노동자상 뒤로 50여일째 '화해거리'라고 이름 붙인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 김보성


지난 7일 쉼 없이 부는 바람이 덕지덕지 달린 인형들을 쉴 틈 없이 때렸다. 색이 바랜 포켓 몬스터 인형은 이미 흉물스럽게 변했다. 사람 키보다 높은 철제 구조물 아래에는 물병과 생수통이 한가득 자리했다. 구멍이 난 일장기 옆에는 '화해거리'라는 글자가 나붙었다.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이어 부산에서도 일본 정부가 환영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쟁 가해국인 일본은 사죄배상을 거부하는데 이곳의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은 억지로 '화해'를 강요받는 분위기였다. 구조물은 조롱의 의도가 다분했다.

불편한 상황을 등지고 선 노동자상은 촛불, 곡괭이를 든 채 일본의 재외공관인 부산 일본총영사관을 보란 듯 노려봤다.

한때 이스라엘기까지 등장, 비판 현수막은 철거

부산 노동자상 주변에 설치한 한 보수단체의 구조물이 '반역사적', '모욕' 논란에도 지난 5월 이후 50여 일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던 일장기는 다시 내걸렸고, 지난달에는 극우 집회에서나 보던 이스라엘기까지 등장했다.

사태는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부산 동구청은 "노동자상 옆 흉물은 친일·매국세력의 것이고, 우리는 일제·친일파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라는 내용의 안내 현수막을 무단으로 철거해 반발을 샀다. 이 현수막은 사회대개혁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위가 최근 집회 신고 이후 설치한 것이다.

구청은 '불법 광고'라고 설명했다. 동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불법이라는 민원이 들어와 확인을 거쳐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치단체는 일장기와 논란의 구조물을 놔두고 현수막만 제거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전위봉 건립특위 상황실장은 "옥외광고물법에도 집회 선전물은 불법이 아니다. 구청이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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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 강제징용노동자상 뒤로 50여일째 '화해거리'라고 이름 붙인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이를 비판하는 현수막은 부산 동구청에 의해 강제로 철거돼 현재 볼 수 없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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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금으로 세워진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 강제징용노동자상 바닥돌에 새겨진 글자. 뒤로 이를 조롱하는 듯한 의미의 일장기가 설치되어 있다. ⓒ 김보성


부산시와 동구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구조물 철거에 난색을 보인 동구청은 "부산시에 두 번의 공문을 보냈고, 검토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라고 해명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한쪽을 없애면 다른 쪽이 반발한다. 국민 정서만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부산시청은 관련 질의에 "구청이 일차적으로 대응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시 관계자는 "근거 조례 등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지자체의 태도에 노동자상 보호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소녀상을지키는부산시민행동 김미진 집행위원장은 "일제강점기 시기 벌어졌던 일이고, 역사적으로 소녀상과 노동자상의 의미는 똑같다"라고 말했다. '위안부사기청산연대'의 미테구 소녀상 철거 소동도 언급한 그는 우리의 상징물부터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례를 곁들었다. 그는 "소녀상 조례처럼 그 높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라며 "언제까지 저런 역사 부정과 모욕을 용인할 거냐"라고 꼬집었다. 과거 일본 정부의 철거 압박과 일부 단체의 훼손 시도에 몸살을 앓았던 부산 소녀상은 2019년, 2020년 잇단 조례 제정을 통해 시가 관리하는 공공조형물, 점용허가 대상이 됐다.

[관련기사] 부산 소녀상 가로막는 '법적 걸림돌' 이제 없다 http://omn.kr/1o3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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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를 통해 보호받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 ⓒ 김보성

#일본영사관 #독일미테구 #소녀상 #강제징용노동자상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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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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