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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피격과 일본책략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가로막힌 개헌과 군사대국화

등록 2022.07.10 14:44수정 2022.07.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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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교도=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한 8일 오후 사고 현장인 일본 나라현 나라시 소재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 노상에서 시민들이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며 헌화를 하고 있다. 2022.7.8 ⓒ 연합뉴스

 
참의원 선거로 분주하던 일본에서 느닷없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소식이 들려왔다. 유세 중에 쓰러졌다는 속보가 나오더니, 전직 자위대원의 총에 쓰려져 심폐정지 상태라는 충격적 뉴스가 나오고, 뒤이어 결국 숨을 거뒀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을 향해 달려가던 극우 정치인이 향년 68세로 갑자기 생을 마쳤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베의 목표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단락됐어야 한다. 2017년 12월 19일 강의에서 그는 "올림픽 및 패럴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을), 일본이 크게 거듭나는 해가 되는 계기로 만들고 싶습니다"라며 "헌법에 관한 논의를 심화시켜 국가의 형태나 틀을 큰 폭으로 논해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일본 헌법 제9조 제1항은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제2항은 군대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조문들을 개정해 군사주권을 예전대로 돌려놓는 일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성사시키겠다는 게 그의 포부였다.

하지만 복병이 출현해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올림픽을 코앞에 둔 2019년 연말에 코로나19가 번져 올림픽이 연기되도록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팬데믹 속에 일본 민심이 동요하면서 2020년 9월 16일에는 그가 총리직에서 퇴진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2006년 9월 이후 1년간의 제1기 아베 내각에 이어 2012년 12월 이후의 제2기 아베 내각이 갑자기 끝나는 순간이었다. 건강 문제 때문에 그만둔다고 했지만, 그게 최대 사유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은 그 뒤에 그가 활발한 '상왕 행보'를 이어간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다 기회가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그가 실질적 상왕 역할을 하는 동안에 치러진 2021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개헌세력인 자민당·공명당·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이 개헌 발의선인 3분 2를 확보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개헌세력이 이 선거에서도 3분의 2를 넘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래서 전쟁 및 군대 보유를 금지하는 기존 틀을 건드리지 않고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방법으로 제9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참의원 선거 결과뿐 아니라 일본 헌법의 개정도 목격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전직 자위대원이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개헌과 군사대국화를 눈에 담지 못한 채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됐다.

극우세력의 구심점,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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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6일 당시 아베 일본 총리가 각료회의를 위해 도쿄에 있는 총리실에 도착하면서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거물 정치인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로, 유력 정치인인 아베 신타로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세이케이대학과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 뒤 철강회사 직원과 아버지(당시 외무대신) 비서관을 거쳐 39세 때인 1993년 7월 18일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그가 지도자로 부각된 것은 2002년 이후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2001~2006년)에서 내각관방 부장관을 지내면서 극우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힘입어 2006년에 제1기 내각을 꾸리고 2012년에 제2기 내각을 꾸릴 수 있게 됐다.

그가 중의원에 진출한 1993년은 동구권 붕괴와 독일 통일에 따른 탈냉전 여파로 세계질서가 요동을 칠 때였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제1차 북·미 핵위기(북핵위기)가 촉발된 것도 그해 3월 12일이다.

그해는 일본 정치사에서도 획기적이었다. 그해에 그의 소속 정당은 1955년 창당 이래 최대의 패배를 경험했다. 역대 최저 득표율인 36.6%로 511석 중 22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제1당 지위는 유지했지만,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정치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자민당 일당 집권이 붕괴되고 일본신당·신생당·일본사회당 총리가 집권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1996년에 자민당 출신인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취임하면서 다소 진정된 이 혼란은 2000년에 모리 요시로 내각이 집권하면서 수그러들게 됐다.

1993년에 시작된 현상이 2000년에 진정되는 동안에, 일본 정치권에서는 주도세력이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 보수세력이 약해지면서 극우세력이 자민당의 신주류로 올라섰다. 일본 경제의 후퇴와 맞물리는 우경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부각시키고 대북 혐오주의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극우세력의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그 후 아베 신조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일본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다. 그의 일본 중흥책을 형성하는 키워드들은 1880년에 청나라 외교관인 주일청국참찬관 황준헌이 조선 수신사 김홍집에게 선물한 <조선책략>의 핵심 내용을 연상케 한다.

서양열강이 몰려오는 위기 상황에서 조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러시아를 조선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규정한다. 그런 뒤, 러시아를 막으려면 '친중·결일·연미' 노선을 지향해야 한다고 권한다.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결합하고 미국과 연대하는 방법으로 러시아의 남진을 막을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의 한자 어감대로라면 친(親)보다는 결(結)이 더 단단한 관계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청나라 외교관인 황준헌이 '결중'이 아닌 '친중'을 사용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결'은 '친'보다 낮은 단계였다. 황준헌은 조선이 부자유친의 '친'을 중국과의 관계에 적용하고, 그보다 낮은 '결'을 대일관계에 적용하기를 희망했다.

아베로 인해 일본이 잃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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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규탄시민행동 참여단체들이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12시간 앞둔 2019년 11월 22일 낮 12시 미국 대사관 건너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소미아 완전 종료를 위한 12시간 긴급행동을 시작했다. ⓒ 김시연

 
아베 신조가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노선 중 하나는 친미·결한·반북으로 정리될 수 있다. 2015년 4월 27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손잡고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고 다음날 미일공동비전성명을 발표할 때 인상적으로 표출된 것처럼, 총리 시절의 아베 신조는 미일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쪽으로 일본의 활로를 넓히고자 했다(친미).

한편, 지소미아로 불리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서 나타나듯이, 한국과의 군사적 제휴를 강화해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넓히고자 했다(결한). 또 고이즈미 내각 시절인 2002년에 거의 성사되는 듯했던 북일수교를 훼방하고 납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데서 나타나듯이, 일본인들의 대북 공포심과 증오심을 부추기는 극우적 방식으로 군사대국화의 명분을 축적하고자 했다(반북).

일본판 조선책략을 연상시키므로 '일본책략'으로도 명명할 수 있는 아베 신조의 친미·결한·반북 노선은 그의 나라에 긍정적 영향뿐 아니라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게 끼쳤다. 적어도 결한·반북 부분은 그렇다.

그는 한국과의 '결'을 통해 한미일 삼각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했지만, 그가 추구한 '결한'은 예전처럼 한국을 종속적·예속적 상태에 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한국 국민들은 식민지배 문제를 청산한 상태에서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를 희망했지만, 그는 극우 역사관인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일본은 잘못한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압력을 못 이겨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하긴 했지만, 피해자들의 의사도 수렴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 사과·배상도 결여했다. 이는 그가 대등한 '결한'을 지향할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줬다.

그가 한국인들의 염원을 외면한 일은,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번지도록 만들어 도리어 일본의 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017년 연설에서 그는 일본을 '큰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그가 한국에 보여준 행동은 일본을 '작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지금의 일본은 한국과의 역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뜻을 이루기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 기시다 내각도 한일관계를 복원하고 싶어 하고 윤석열 정부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두 정부가 한결 같이 한국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베 신조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베 신조가 북한과의 수교나 평화적 교류 대신에 냉전시대의 대북 혐오주의를 부추긴 것 역시 일본 외교에 부작용을 초래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에 '재팬 패싱'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사실에서도 나타나듯이, 아베의 반북 노선은 일본의 외교적 입지를 축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처럼 동북아에서 대결 분위기가 고조될 때는 그런 반북 노선이 일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중국과 대화를 해야 하는 국면으로 바뀌게 되면, 아베의 유산이 일본 외교에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긴장 국면이 유화 국면으로 전환되면 아베의 유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아베 신조로 인해 일본이 잃은 것은 한둘이 아니다. 미일동맹 강화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가 넓어진 측면은 있지만, 남북한과의 갈등 및 대결로 인해 일본의 도덕성이 추락하고 외교 반경이 축소된 측면도 적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이후의 일본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신조 파격 #일본 참의원 선거 #일본 개헌 #자위대 #일본인 납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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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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