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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죽고, 장파열로 죽고...'장례 전담' 스님이 전한 이주노동자의 죽음

[인터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임종 지키는 린사로 스님

등록 2022.07.23 09:59수정 2022.07.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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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장례 맡아 하는 린사로 스님 ⓒ 이희훈

  
"한겨울과 한여름 가장 바쁜 사람"으로 소개받는 스님이 있다. 캄보디아 대사관보다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 캄보디아 불교센터의 린사로 스님(42)이다. 경기도 군포시에서 캄보디아 불교센터를 관리하는 스님은 낯선 땅 대한민국에서 숨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화장부터 장례까지 치르는 일을 한다.

지난 6월 18일, 한겨울 난방이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고 누온 속헹씨의 추모제. 스님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속헹씨의 영정 앞에 서서 추도 기도문을 올렸다. 속헹씨가 숨진 경기도 포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앞에서다.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스님이 "고통 받는 자, 더 이상 고통 받지 말길" 등의 말로 염불을 외면, 함께 선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자다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장이나 농장에서 자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지요. 병원 가는 방법도 모르고, 평일에 가기도 힘들고."

7월 18일, 서울 중구 동국대 학술관에서 다시 만난 스님은 자신이 목격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 대부분이 '의문'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건강검진을 통해 노동력을 인증 받은 젊은이들이 "자다 죽는 경우"를 더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죽음이지만, 진상조사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망 서류가 나오면 화장하고, 화장하면 끝, 의문도 끝." 본국에 있는 가족들도 따질 방법을 알지 못해 "자식들 유골만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스님은 지난해 세상을 등진 캄보디아 청년 고 찬드라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1989년 10월 1일생인 찬드라씨는 지난해 12월 8일, 한국의 한 병원에서 7개월간 홀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32세의 나이였다. 대장에 생긴 염증을 오랜 시간 방치하다 근무 중 대장이 터져,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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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 병원에서 7개월간 투병하다 지난해 12월 사망한 고 찬드라씨의 영정. ⓒ 사진 제공

 
생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찬드라씨는 의사에게 '스님을 보고 싶다'고 간청했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쉽지 않은 시기, 스님만 일주일에 두세 번 찬드라씨를 만나왔기 때문에 '마지막 면회'를 요청한 것이다. 스님은 그렇게 또 한 명의 캄보디아 청년의 임종을 지켰다. 캄보디아에 있는 홀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 스님은 "계속 아프다고 했는데... (공장 사장은)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고 했다. 결국 산재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고 전했다.

찬드라씨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한국 사회에선 드문 일이 아니다. 이주인권 연구자 우춘희씨는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쓴 체험 르포 <깻잎투쟁기>에서 "이주민들을 위한 의료정보나 서비스 제공에 관한 시스템은 대단히 미비한 실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책에선 '2020년 진행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을 위한 설문조사'를 인용하며, 이주노동자들이 '병원 이용을 위한 용어 통역과 병원 이용 방법 등 정보 공유를 바랐다'고 전하고 있다.

고용허가를 받고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속한 나라가 캄보디아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캄보디아에서 고용허가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7773명으로, 이는 근로허가(E-9) 비자를 받은 16개국 중 가장 많은 숫자다. 코로나19 시국인 2020년(2172명), 2021년(3477명) 입국 인원이 줄긴 했지만, 역시 가장 많은 인원이 국내로 들어왔다.  


2006년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린사로 스님은 동국대에서 불교학 학사, 국어국문학 석사를 마친 뒤 현재 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주말마다 군포 법당에서 만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지켜보며, 낯선 땅에서 이주민들이 어떻게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해가는지 연구하는 중이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죽음] '자다 죽는 젊은 사람'이라는 의문, 부모는 유골함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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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장례 맡아 하는 린사로 스님 ⓒ 이희훈

 
  - 지난 6월 18일 누온 속헹씨 추모제 때 스님을 처음 뵀습니다. 한 이주민 지원 활동가가 스님을 소개하며 "여름과 겨울 가장 바쁘게 전국을 다니시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혹서기와 혹한기, 계절마다 이주노동자들의 아픔과 죽음을 곁에서 보시고, 또 화장 등 장례 절차를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바쁜 편입니다. 죽은 사람뿐 아니라 아픈 사람까지 만나니까요. 지금까지 한 700번 정도? 이주노동자들을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계속 세다가 지금은 헤아리지 않습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이주민들이) 대사관보다 제게 가장 먼저 알려옵니다."

- 스님께 먼저 알리는 이유는요?

"(캄보디아 사람들은) 스님은 죽음과 연결돼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누군가 사망하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죽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물어옵니다. 화장은 어떻게 하고, 고향에 (유골은) 어떻게 보내고, 경찰이 전달한 사망 결과를 파악하고, 대사관에 필요한 서류를 전달한 뒤 장례를 정하고, 가족과도 연결하고... 가족이 올 수 없다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장례 절차) 승인을 받고... 속헹씨의 경우 부모님이 장례에 오지 못하셨죠. 그럴 경우 친구나 친척을 통해 사망 승인을 받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현장] 포천 채소농장 비닐하우스 앞, 고 속헹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린사로 스님 캄보디아 불교센터의 린사로 스님이 6월 18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고 속헹씨의 추모제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추도 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 조혜지



- 고인들의 마지막은 어땠나요.

"음... 자다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병들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장이나 농장 등에 있는 방에서 자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병원 가는 방법도) 모르고. 직접 갈 수도 없고. (사용자에게) 부탁해도 다 바쁘니까... 병원에 가도 주로 주말에 가는데, 진료를 볼 의사 선생님이 (평일만큼) 다양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 이주노동자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어떤가요.

"대부분 20대에 한국에 들어옵니다. 한국에서 30대들이 되지요."

- 입국 전 건강검진을 받아 노동력을 입증한 후 들어오는 사람들인데, 자다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의문이지요. (그들의 죽음은) 의문이 되고 있어요. (노동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해결하기가 힘듭니다. 해결하지 못한 의문들이 많아요."
 
- 의문이 드는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를 하는 경우는 없나요.


"거의 없습니다. 경찰에선 대부분 '심장마비', '다른 의심 없다'로 서류가 나오지요. 서류 내면 화장하는 거예요. 화장하면 끝."

- 건강하던 자식이 주검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은 황당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죽고 나서도 (따질) 방법을 몰라서 자식들 유골만 기다리는 거예요. 다른 건 기대할 수 없고. 요즘은 경기도 안산에 계시는 (활동가) 분들 통해 (사인을) 조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았습니다. 죽고 나서, 화장하고, 유골을 집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제 일도 끝, 의문도 끝."

- 1년에 얼마나 장례를 치르시나요.

"해마다 다릅니다. 올해는 다행히 많지 않아요. 원래는 겨울에만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봄에도 죽어요. 많이 돌아가시면 저도 바빠집니다. 그러니 죽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지요."

- 장례를 위해 어느 지역까지 가보셨습니까.

"멀리까지도 갑니다. 가끔 힘들기도 해요. 저 아래 광주도 가고, 경북 어느 지역도 가고, 강원도도 가고."

[병] 참다 참다 결국 터진 대장... 32살 찬드라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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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장례 맡아 하는 린사로 스님 ⓒ 이희훈

 

- 가장 기억에 남는 이주노동자 분이 계신다면.

"몇 달 전까지 병원에 있던 친구가 기억에 남아요. 7개월간 가족도 없이 혼자 병원에서 투병했습니다. 일주일 두세 번 그 친구에게 갔는데 그냥 빨리 죽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여섯 번 수술을 해도 낫질 않았어요. 대장에 염증이 생겼는데, 수술을 해도 안 된다는 겁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몸 뿐 아니라 마음도."
 
- 지병이었습니까.


"근무 중 대장이 터진 겁니다. 일하다가 쓰러졌어요."

- 방치된 거네요.

"그렇죠. (대장에) 염증이 조금 있을 때부터 몇 년, 몇 달을 있다가 심해져서 터진 겁니다. 병원도 늦은 것 같다고 하고. 경기도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계속 아프다고 했는데... (공장 사장은)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결국 산업재해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 그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난해 12월에 사망했습니다. (죽기 전에) '스님 얼굴 보고 죽겠다'고 해서, 가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습니다. 의사도 스님, 빨리 오시라고...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갈 수 없으니. 부모님은 캄보디아에 어머니만 계시는데, 연로하셔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 병원을 이용하는 절차가 이주노동자들에게 복잡하고 어렵습니까.

"본인이 어떻게 하는 줄 몰라서, 주로 제가 같이 갑니다. 전국에 있는 병원은 거의 다 가본 것 같아요. 서울대병원같은 큰 병원은 정말 절차가 복잡합니다. 일반 병원은 치료받고 상담하는 게 끝이지만, 큰 병원일수록 예약하고 기다리는 절차가 있잖아요. 그래서 지방 병원에서 치료 할 수 없는 사람만, 제일 힘든 사람만 서울대병원에 보냅니다. 심장 수술 같은."

- 속헹씨 추모제 때, 명복을 비는 기도문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낭독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떤 말들인가요?

"특별한 거 없습니다. 한국말로 세 가지인데요. 힘든 사람들은 힘듦이 사라지게 하고, 아픈 사람에게는 아픔을 없애고, 고통 받는 사람은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말이에요."
 
[사람] "그 사람의 노동력만 보지마시고, 그의 인생도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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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장례 맡아 하는 린사로 스님 ⓒ 이희훈

 

- 법당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주말마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한국어를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들도 자주 털어 놓습니다. 말했듯 (언어 문제로) 아파도 병원을 가기가 힘든 경우도 많고. 문제가 있어도 이주민센터를 찾아가 말할 수가 없을 때도 있었지요. 지금은 그래도 각 지역마다 통역·번역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그나마 나아진 편이에요."

- 속헹씨 사건처럼,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도 만나실 것 같습니다.

"직접 듣기도 하고, 가서 보는 경우도 있는데요. 농업 뿐 아니라 공장에서도 문제가 진짜 많죠. 일할 수 없는 상태인데 계속 일하라는 문제가 많아요. (작업장 변경을 요청해도) 다른 데 갈 수 없게 하고. 직장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 사용자가 전권을 가지고 있는 구조인데요.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우리는 설득할 수밖에 없지요. 이주민 지원센터에서도 공장 사장이나 농장 주인을 설득하고 또 설득합니다. '계속 이 상태로 일하면 죽을 것 같다'고 하면 해고하는 일도 있었어요. 법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용자들이) 권력을 다 가지고 있어서... 설득하면 (되레) 큰소리치는 분들도 있고."

- 불교학 학사, 국어국문학 석사 그리고 지금은 사회학 박사과정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이주민 공동체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모임을 형성하는 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 간의 관계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고, (좁게는) 지역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잖아요. 그 관계에 관한 연구를 합니다."

- 코로나19 이후에는 한국에 들어오는 문이 좁아졌다가, 최근에는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 입국 확대를 선언하면서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됐습니다.

"사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지요. 코로나19 때도요. 매일 매일 끊이질 않았어요. 비행기 편도 많았고요."

-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은 계속 농업과 제조업 등에 투입되고 있지만, 그들의 인권을 보호할 제도는 아직 미비한 게 사실입니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속헹씨의 죽음 이후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건이 없었다면... 문제가 계속 발생해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캄보디아 정부도 외교 문제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요. 그러다 속헹씨의 죽음 이후 한국 정부도 (문제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속헹씨 49재에서는 이런 말을 하셨어요. "이주노동자들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그의 인생이나 인권도 생각해 달라고 했지요. 사용자뿐 아니라 정부에 있는 분들도요. 공장과 농장은 그 사람의 (노동을 위한) 힘만을 생각하지, 다른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이곳에 모두 바칩니다. 그들의 인생에도 관심을 두시면 좋겠습니다."
#속헹 #이주노동자 #인권 #병원 #린사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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