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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전후의 활동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0] 노태우가 집권하면서 다시 강경노선으로 되돌아 가

등록 2022.07.30 14:21수정 2022.07.3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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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으로 쉽게 설명하는 김지하씨 몸짓으로 쉽게 설명하는 김지하씨 ⓒ 조우성

 
그가 생명사상과 서정시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한국사회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1989년 6월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이 몰락하고 직선제개헌에 따라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이 해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창립되고 그는 이사로 선임되었다. 문화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이 문인단체는 유신체제하에서 1974년 결성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확대ㆍ개편한 것이다. 

겨울에는 원주기독병원에서 잠시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의 저작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등이 해금되어 서점에서 판매되었다. 

1988년 11월 해남을 떠나 광주에 머물다가 서울 목동으로 옮겼다. 수운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을 동광출판사에서 간행하고, 연말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지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88년 4월 생명운동단체 '한살림모임'에 참여했다.
〈한살림선언〉을 공동작성한 그는 장일순ㆍ박재일ㆍ최혜성 등과 "산업문명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 환경파괴를 저지하고 생명순환의 세계를 만든다."는 목표 아래 도농직거래, 도농교류, 유기농업, 식량자급운동, 국제연대교류 등의 활동에 참여했다. 

모두 자신의 생명사상과 직결되는, 실천운동이었다.
'한살림'의 '한'은 큰, 하나, 전체, 모든 생명을 뜻하며, '살림'은 살려낸다, 산다는 뜻이다. 이 두 말을 합친 '한살림'은 모든 생명이 한 집 살림하듯 더불어 살자는 의미다. 

1990년 그는 50세가 되었다. 원주에서 해남, 신병치료차 다시 원주, 아이들의 진학관계로 한때 광주, 서울의 목동에 거처를 마련하는 등 마음과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떠도는 삶이었다. 지천명이라는 50세에 지은 시 <쉰>에 저간의 애환이 보인다.


     쉰

 나이 탓인가
 눈 침침하다
 눈은 넋그물
 넋 컴컴하다
 새벽마저 저물 녘
 어둑한 방안 늘 시장하고
 기다리는 가위소리 더디고
 바퀴가 곁에 와
 잠잠하다
 밖에
 서리 내리나
 실 끊는 이 끝 시리다
 단추 없는 작년 저고리
 아직 남은 온기 밟고
 밖에
 눈 밝은 아내
 돌아온다
 가위 소린가. (주석 1)

6월항쟁과 함께 민주화 방향으로 가는 듯하던 정국은 군부쿠데타와 광주학살의 2인자 노태우가 집권하면서 다시 강경노선으로 되돌아갔다. 민정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의 3당야합으로 거대 여당 민자당을 창당하고, 광주보상법ㆍ국군조직법ㆍ방송관계법 등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처리했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시위도중에 경찰에 맞아 사망하면서 전국으로 항의시위가 확산되었다. 시국은 다시 독재와 민주, 수구와 진보의 진영으로 갈라지고 첨예한 대립상을 보였다. 

이 시기 김지하는 '한살림'에서 문화운동을 함께하고자 했으나 조합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나는 또다시 그늘진 소라 껍데기 속에 웅크려 앉아 환상과 마주했다. '쉰'의 침침함과 넋의 컴컴함이 계속되었다. 빛이라고는 단 한 줄기도 없었다." (주석 2)라고 토로했다.

새로운 형태의 독재와 반독재 저항의 구도에서 그는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 무렵 서울대병원 정신신경과의 명인 이부영 선생에게 카를 융 스타일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선생은 원주 기독병원과는 달리 나의 병명을 '종교적 환상'으로 진단했다." (주석 3)

이 즈음 그는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를 출간하면서 1991년 1월 10일에 쓴 <별 뜨듯 꽃 피듯>이라는 서문의 말미에 의미 부여가 쉽지 않는 내용을 덧붙힌다.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 날은 그 언제인가?
시린 이마에 문득 새벽별 뜨는 그 시각, 이슬 맞은 꽃 봉우리 살풋 벌어지는 바로 그 시각을 기다리며 되잖은 푸념 몇 마디 머릿글로 대신한다. (주석 4)


주석
1> <회고록(3)>, 211~212쪽.
2> 앞의 책, 214쪽. 
3> 앞의 책, 215쪽.
4> 김지하,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 7쪽, 동광출판사, 1991.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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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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