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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1]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등록 2022.07.31 13:29수정 2022.07.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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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 명지대 강경대의 죽음 이후 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시인 김지하는 5월 5일 <조선>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글을 게재, 학생운동을 비판했다. ⓒ 조선일보PDF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투신ㆍ분신이 잇따랐다. 지식인들의 시국선언도 뒤를 이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2월부터 6월까지 1,300여 명의 지식인이 시국선언을 발표한데 비해 이때는 1개월 여 만에 1만여 명의 지식인이 시국선언에 참여할 만큼 학생ㆍ지식인들의 시국에 대한 저항의식이 치열해지고 있었다. 언론은 당시를 '치사정국'이라 불렀다. 

김지하는 이해 초부터 <동아일보>에 회고록 <모로 누운 돌부처>를 연재하고 있었다. 거대 신문이 50대 초반 문인의 '회고록'을 연재할만큼 그는 보수세력으로부터 환대받는 필자였다. 

5월 5일자 <조선일보>는 김지하의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제목 아래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환상을 갖고 누굴 선동하려하나〉라는 시커먼 컷이 돋보이는 시론을 실었다. 시론의 전반부이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 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 라고 외친다. 그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 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 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 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매일 북치고 장구칠 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 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 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어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 이란 말도 즐겨 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정신인가, 아닌가? '과학' 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그는 이 시론에 이어 같은 신문 5월 17일자에 <다수의 침묵 그 의미를 알라>를 발표했다. '죽음의 굿판'은 마치 벌통을 건드리는 격이었다. 5월 9일 긴급 소집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회는 46 대 1 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그의 제명을 결정하고,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대학신문 <연세춘추>는 "70년대 민주화 투쟁을 통해 김지하씨의 투사와 순교자의 신화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최근에 와서 어리둥절하고 있다"며 "수십만의 민중들에게 지하는 이제 의식화 아닌 세뇌를 하려하고 있다"고 김지하를 비판했다.

<홍대신문>은 <오적의 작가 김지하님의 죽음을 애도하며>라는 한 학생의 시를 통해 "당신의 가슴은 벌써 돈 맛을 알았군요! 무릎꿇어 버릇하니 그게 편해졌군요!…… 아 당신은 당신이 쓴 시 속의 오적" 이라고 표현, 김지하를 '새 오적'으로 규정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진보적 문인들도 김씨는 "생명사상에 심취되어 사람 마음의 일들을  어둡게 보고 있거나 과대망상적인 명망가 의식에 사로잡혀 충격의 미학을 즐기고 있거나 민중의 편에서 권력의 편으로 자리를 아예 바꿔 앉았거나" 했다고 그의 '생명사상'과 '고백운동'을 싸잡아 비판했다. 


주석
5> 김삼웅, <곡필로 본 해방 50년>, 399~340쪽, 한울, 1995.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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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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