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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삶에 오점 남겨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3] '시대의 양심'이었던 그가 하필이면 <조선일보>에...

등록 2022.08.02 15:27수정 2022.08.0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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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김지하 시인. 젊은 시절의 김지하 시인. ⓒ 아트앤스터디

 
우리는 역사적으로 지조와 절개에 대해 높은 가치부여를 해 왔다. 특히 존경하는 사람을 지조와 도덕적으로 청절한 인물에서 꼽는다. 이것은 대의ㆍ의리ㆍ명분으로 일컬어지는 성리학적인 규범의지의 전통성 때문일 것이다. 

조선 성리학의 도학적 지조인이라면 정몽주ㆍ길재ㆍ성삼문ㆍ김시습ㆍ김숙자ㆍ조헌ㆍ김종직ㆍ김굉필ㆍ조광조ㆍ정약용ㆍ최익현ㆍ황현ㆍ감창숙으로 이어진다. 세조를 도와 왕조에 큰 기여를 한 신숙주ㆍ정인지보다 성삼문ㆍ박팽년 등 사육신을 선호한다. 한때 20세기 한국의 가장 위대한 언론인으로 꼽히던 <시일야방성대곡>의 필자 장지연은 친일전력이 드러나면서 훼절의 낙인이 찍혔다.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이광수와 <3.1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최남선은 항일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변절자의 오명을 듣는다. 반대로 신채호ㆍ한용운ㆍ김창숙 등은 청사에 위명을 날린다. 

김지하에게 <오적>이 저항의 정점이었다면 <죽음의 굿판>은 훼절의 전향서 쯤으로 평가되었다. 그의 변신(변절)을 안타까워하면서 운동권 인사들의 속좁은 행태를 비판하는 논객도 있다.

늙고 외로워지면 사람은 보수화된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의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린 채 자기들끼리만 한자리씩 해먹으면, 명성도 잃고 지위도 갖지 못한 지식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변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힘들다고, 자신이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모든 사람이, 모든 노인들이 과거의 적에게 안기지는 않는다.(중략)

70~80년대는 참으로 험악한 시대였고,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소수의 잘나가는 운동권 출신 외에 대다수 과거 운동세력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간다. 김지하를 고문했던 세력은 과거의 운동권 명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여유와 아량을 과시하지만, 여전히 날을 세워야 하는 운동세력은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자기편의 약간의 차이를 참지 못하고 거친 공격을 해댔고, 결국 상처를 안은 수많은 동료를 적의 품으로 쫓아냈다. (주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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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과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계기로 신작 시집 <못난 시들> 펴낸 김지하 시인. 그는 순수했던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고 평가했지만 촛불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질된 부분에 대해선 아쉬워하며 이 다음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김지하의 오랜 지인으로 창작 판소리 명창 임진택은, 그의 사후 추모의 글에서 '위악자(僞惡者)'라는 신조어를 들어 설명한다. "위선자가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악자가 비난받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하가 민주 진보진영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 혹은 비난을 받게 된 계기가 두 번 있었다. 하나가 1991년에 벌어진 소위 '죽음의 굿판' 필화사건이다. 당시 과도한 공안 탄압과 경찰 진압으로 시위 대학생이 맞아죽거나 자결을 택하던 상황에서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 운운하고 나섬으로써 민주화운동이 타격을 입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중대한 오해가 개재되었다.

먼저 그 칼럼이 실린 조선일보 지면을 제대로 한번 살펴보라. 그 칼럼의 원 제목은 분명히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이다.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라"는 중간 크기의 글자로 된 또 다른 소제목일 뿐, (물론 그 같은 내용이 글 안에 들어있다 하더라도) 필자가 원래 정해놓은 그 칼럼의 방향이자 주제는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다. 그런데 자극적인 소제목이 갑자기 부각되면서 필자의 언설(言說)이 침소봉대(針小棒大)되어 만파(萬波)를 일으킨 것이 바로 '죽음의 굿판' 사건인 것이다.

이 사건은 '굳이 그러한 발언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명예를 누리고 있던' 김지하가 섬망(譫妄) 중에 저지른 위악적 행위의 자해적 결과였다. (주석 10)

저항시인, 민주화의 선봉, 불의에 맞선 지성 등 '시대의 양심'이었던 그가 하필이면 <조선일보>에, 독재와 저항의 첨예한 대결 시기에, 그같은 시론을, 발표한 것은 의로운 삶에 남긴 큰 오점이었다.


주석
9> 김동춘,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 <한겨레>, 2012년 12월 4일. 
10> 임진택, <위악자 김지하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2022년 6월 24일.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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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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