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4 05:28최종 업데이트 22.08.04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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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실 싫은 것들 투성이 입니다. 하지만 싫은 것들로 둘러싸인 이 세상이 끔찍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싫은 것들에 대해 그것이 왜 싫은지 , 어떤 해악이 있는지 끊임 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싫은 것들을 너무 쉽게 악마화 하지 않고 그 싫음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쩌면 세상을 조금은 덜 끔찍하게 바꿀 좋은 생각들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기자말]
이 글은 일터에서 주로 '회의합시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회의가 끔찍하게 싫은 사람이 읽어도 괜찮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우리의 일터에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회의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도 우선 밝혀둔다. 이따금 회의를 하지 않는 일터가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회의가 필요 없는 일터는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회의는 우리가 일터에서 수행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회의가 싫은 이유 : 할 말이 없다

일단 회의가 싫은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자. 사회 초년생 시절에 내가 회의를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였다. 회의 참여자가 할 말이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회의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다. 회의자료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을 때, 다수의 참여자가 알고 있다는 이유로 내용에 관한 사전 공유 없이 회의를 진행할 때가 그렇다. 말없이 앉아있는 신입사원은 '새로우니까 아무거나 톡톡 튀는 말을 해보라'는 주문을 받곤 한다.

되물어야 한다. 당신은 신입사원일 때 얼마나 새로웠느냐고. 새로움이란 지나온 과거를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할 때나 겨우 가능하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백지는 깨끗할 뿐이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둘째, 어떤 종류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다. 회의 목적에 대한 사전 공유가 없을 때 그렇다. 회의랍시고 부득이 사람들을 모아놓고선 결정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회의를 시작할 때가 있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 던져진 주제를 두고 사람들이 얹어대는 이런저런 말들은 목적지를 잃은 채 꼬리의 꼬리를 물고 산으로 간다. 산꼭대기에서 서로의 말꼬리를 잡으며 싸워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회의가 싫은 이유에 추가될 수 있겠다.

셋째, 무슨 말을 하면 큰일이 나는 경우다. 힘껏 용기를 내서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좋은 의견이네요. 당신이 그 일을 한 번 추진해보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반대로 '아 그건 뭘 모르고 하는 말인 것 같네요'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어떤 종류의 반응이든 큰일이다. 발언자가 갑자기 일을 떠맡게 되는 것도 큰일이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질책받는 일도 큰일이다. 회의 전에 내용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잘못은 사라지고, 회의 중에 잘 모르고 이야기 한 사람의 잘못만 남는다. 인간의 두뇌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저장한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하든 큰일이라면? 회의는 공포다.
 

하루종일 회의하다 지쳐버린 글쓴이의 그림일기 ⓒ 최유리


회의를 하는 이유 : 너와 나의 연결 고리

회의가 필요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늘 함께 일하고 있고, 해야만 한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나의 두뇌가 오른손에 컵을 잡는 것을 명령하고 목구멍은 삼키는 일을 수행해내듯이, 함께 일하는 여러 사람의 두뇌가 하나의 뇌처럼 움직일 수 있게 생각을 공유해야만 함께 일을 해낼 수 있다. 어떤 한 방향으로 조직을 이끄는 사람에게 회의는 중요하다.

인간이 구글 드라이브라서 딱 한 번만 정보를 올려두면 전부 동기화돼서 핸드폰에서도 볼 수 있고, 컴퓨터에서도 볼 수 있고, 태블릿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김 과장의 생각도, 이 대리의 생각도, 최 부장의 생각도, 박 차장의 생각도 순식간에 동기화가 되면 얼마나 편리할까.

우리는 직접 표현하기 전까지는 상대가 어떤 정보를 갖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어떤 인식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초코파이가 달다는 사실 뿐인걸. 회의란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통해 서로가 가진 인식의 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목적이 불분명한 발언이 오가는 회의자리는 무척 당황스럽다. ⓒ 최유리

 
싫어도 해야 한다. 그래서 회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한다. 첫째, 회의는 참여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를 바란다. 같은 회의에 10년째 참석하고 있는 사람이든, 처음 참석하는 사람이든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보 공유의 기준은 처음 참석하는 사람에게 맞춰져야 한다. 그렇게 1차, 2차 회의를 거듭해가며 회의 참여자들의 정보 공유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 논의에 필요한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분명히 결정하고 함께 진행해야 할 일들을 꼼꼼히 짚어가며 진행하자. 사전 합의가 없는 회의는 말꼬리 잡다 산으로 간다.

둘째, 회의를 통해 어떤 결과를 도출할 계획인지 정해놓고 시작하길 바란다. 함께 진행하고자 하는 하나의 일이 있다면, 목적에 관한 이야기인지, 혹은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지, 대상에 관한 이야기인지 명확히 구분하며 참석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결과를 정리해야 한다.

일단 이야기를 듣고 결론을 내보자는 계획은 계획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상명하복 문화에 찌들어있는 한국의 조직에서 최고 권위자의 의견이 결론이 되고 만다. 모든 구성원들이 마지못해 따라가는 수동적인 결론 말이다. 회의 주재자는 보고에 대한 코멘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회의의 목적에 맞춰 다 같이 만든 결론을 정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회의가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회의를 할 이유가 없다. 조직은 각자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가장 활기차고 생산적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 전제다. 누군가의 발언이 한 사람만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의견이 나왔다면 다양한 의견을 보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각자의 생각을 덧붙이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강점을 파악하고 함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회의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표현된 말들은 그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못하는 것을 잘하는 것은 어렵지만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은 정말 쉽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할당받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게 제일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을 일답게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회의가 힘든 이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 회의는 그 자체로 일이 될 수 없다. 회의는 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회의만 하다가 하루를 끝내놓고서는 온종일 열심히 일했다고 말하지 말자. 그게 제일 싫다.

없어도 되는 회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의견을 내는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없다면 회의해서는 안 된다. 혼자서 결정하고 통보할 요량이라면, 논의를 위한 회의가 아니라 보고만을 위한 회의라면, 회의가 타인의 일을 그저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하지 말자.

눈으로 글을 읽는 속도가 입으로 말하는 속도보다 빠르다. 초등학교에서 그 어려운 받아쓰기를 해가며 문자를 배웠던 이유 중 하나는 정보를 빠르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보고를 위한 회의라면 문서로도 충분하다. 시간을 단축해 조금 일하고 많이 놀아야 한다. 놀아야 행복하다.

재밌는 사실은 혼자 노는 것 보다 함께 노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함께 놀기 위해서는 함께 할 줄 알아야 한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회의 하지 말자.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유명 패러디처럼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다짐받는 사람들이 아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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