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오늘의 조여정 있게 한, 2010년 '과감한' 선택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김대우 감독의 에로틱 코믹멜로 <방자전>

22.08.08 11:13최종업데이트22.08.08 11:13
원고료로 응원
지난 1999년 정지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가 개봉했다. <해피엔드>는 북한 비밀 특수대 공작원(<쉬리>)에서 실직 가장으로 변신한 최민식의 연기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도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의 배우 전도연이 선보인 파격적인 변신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물론 당시만 해도 <접속>과 <약속>,<내 마음의 풍금>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전도연이 지나치게 성급하게 노출연기를 시도했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 <해피엔드>는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지로 굳어지던 전도연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됐다. <해피엔드> 이후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게 된 전도연은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전도연이 <해피엔드>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지 11년이 지난 2010년 또 한 명의 여성배우가 영화 속에서 파격적인 노출연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이 배우는 2019년 칸 영화제에서, 2020년에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세계적인 배우들과 나란히 레드카펫을 밟았고 2019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해피엔드>의 전도연처럼 <방자전>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크게 넓혔던 배우 조여정이 그 주인공이다.
 

조여정의 파격적인 연기변신이 돋보였던 <방자전>은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최연소 뽀미언니에서 대표 여성배우로

고등학교 시절이던 1997년 패션잡지 모델로 데뷔한 조여정은 1998년 <뽀뽀뽀>의 제 15대 뽀미 언니로 선정됐다.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연소 뽀미언니 기록이다. 1998년 송혜교, 최제우(개명 전 최창민) 등과 함께 시트콤 <나 어때>에 출연하면서 연기활동을 시작한 조여정은 2002년 시청률 50%를 넘긴 <야인시대>에 출연했다. 하지만 당시 조여정의 역할은 여주인공 중 한 명인 설향(허영란)의 친구A에 불과했다.

드라마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던 조여정은 2006년 영화 <흡혈형사 나도열>에서 김수로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 주연으로 데뷔했고 같은 해 여름에는 MBC 일일드라마 <얼마나 좋길래>에 출연했다. 하지만 조여정이 출연한 <얼마나 좋길래>는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동시간대의 KBS 일일드라마 <열아홉 순정>에 밀려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결국 조여정은 2010년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단행했다.

조여정은 춘향이 선비인 이몽룡이 아닌 노비 방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발칙한 설정의 영화 <방자전>에서 섹시한 춘향을 연기하며 파격적인 노출연기를 단행했다. 단순한 에로영화가 아닌 섹시 코믹멜로로 <춘향전>을 재해석한 <방자전>은 전국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조여정 역시 <방자전>을 통해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조여정 역시 <방자전> 이후 '노출 여성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이는 차기작이었던 <후궁: 제왕의 첩>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조여정은 2014년 <표적>과 <인간중독>, 2015년 <워킹걸>에 출연하면서 착실히 필모그라피를 쌓아 나갔다. 특히 신인배우 임지연에게 주연 자리를 양보하며 조연을 자처한 <인간중독>을 통해 한국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상을 수상했다.

2016년 <베이비시터>, 2017년<완벽한 아내>에 출연한 조여정은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범상치 않은 두 아이를 키우는 부잣집 사모님 연교를 연기하며 열연을 펼쳤다.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하며 '한국영화의 자랑'이 됐고 조여정 역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기생충>의 주역임을 증명했다. 조여정은 지난 달 송승헌, 박지현과 함께 김대우 감독의 신작 <히든 페이스>의 촬영을 마쳤다.

춘향전 캐릭터 개성 있게 비튼 영화
 

<방자전>은 조여정의 노출연기가 부각됐지만 충행과 이몽룡의 슬프고 애틋한 사랑이야기에 더 주목해야 하는 작품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조선시대의 연애소설 <춘향전>은 일제시대인 1923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7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방자와 향단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지난 1972년 이형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바 있다(당시 고 박노식 배우가 방자를, 고 여운계 배우가 향단이를 연기했다). 하지만 방자(고 김주혁 분)와 춘향(조여정 분)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는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이 유일하다.

<방자전>은 관객들이 학창시절에 배운 <춘향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비틀어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장원급제하는 멋진 선비 이몽룡(류승범 분)은 양아치에 가까운 인물로 나오고 오히려 노비인 방자(고 김주혁 분)가 상남자로 그려진다. 마냥 얌전한 춘향도 <방자전>에서는 적극적이고 섹시한 인물로 표현됐고 춘향이의 몸종 향단이(류현경 분)는 춘향에게 라이벌의식을 품고 있는 인물로 나온다. 

김대우 감독은 <방자전>의 캐스팅 단계부터 주연배우들의 수위 높은 노출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때문에 주인공 춘향 역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조여정이 기존 이미지와 다른 당당하고 진취적인 춘향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 출연을 결정했다. 이후 김대우 감독은 차기작 <인간중독>과 개봉예정인 <히든 페이스>에서 연속으로 조여정을 캐스팅했다.

많은 관객들이 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이나 코믹한 장면에만 집중했지만 사실 <방자전>은 방자와 춘향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슬픈 멜로물이기도 하다. 특히 방자에 의해 춘향가가 탄생하는 장면은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김주혁의 진정성 있는 연기와 만나 상당히 구슬프게 느껴진다. 영화의 주목도가 조여정에게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김주혁의 연기와 존재감이 없었다면 <방자전>의 재미는 크게 반감됐을 것이다.

90년대부터 각본가로 활동하며 <결혼이야기2>,<정사>,<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각본작업에 참여한 김대우 감독은 <음란서생>으로 250만 관객을 모은 데 이어 <방자전>으로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3번째 영화 <인간중독>이 140만 관객으로 아쉬움을 남겼고 강풀 작가 웹툰 원작의 <마녀>는 제작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는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히든 페이스>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어디에도 없던 역대급 변태 사또
 

송새벽은 어눌한 말투의 변태사또 연기를 통해 단숨에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가 송강호라는 대배우를 발굴했다면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은 송새벽이라는 개성 있는 배우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2009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형사 역으로 상업영화계에 뛰어든 송새벽은 <방자전>에서 변태 변학도를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현재까지도 느리고 어눌한 사투리 연기는 송새벽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아있다.

방자와 춘향이, 이몽룡이 그런 것처럼 류현경이 연기한 향단이 역시 기존의 <춘향전>에서 보인 향단이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주인집 아씨로 모시는 춘향이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끼는 향단이는 춘향의 집에서 쫓겨난 후 주막을 차려 부자가 되고 춘향의 '공식적인 정인' 이몽룡을 유혹한다. 류현경은 <방자전>을 통해 대한민국 대학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영화를 보다 보면 오늘날 스타가 된 배우들의 파릇파릇하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는데 <방자전>에도 그런 배우가 한 명 등장한다. 바로 춘향에게 옷을 입혀주는 한복쟁이로 짧게 출연했던 이제훈이었다. <방자전>에서 대사 한마디 없이 훈훈한 얼굴만 보여주다 퇴장하는 이제훈은 2010년에만 무려 7편의 영화(독립·단편영화 포함)에 출연하며 엄청난 다작배우로 활동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방자전 김대우 감독 조여정 고 김주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