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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0명에게만 허락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증언 현장

[현장] '퐁니 학살 사건' 피해자 최초 법정 증언... '전쟁 범죄' 재판인데 방청 제한

등록 2022.08.10 11:56수정 2022.08.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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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베트남전쟁민간인학살사건 생존자 응우예 티 탄 씨가 국가배상소송에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어후, 사우나네 사우나야."
"아니 내가 왜 못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제가 저번부터 '큰 법정에서 열어 달라'고 법원에 누차 말했잖아요."


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동관 소법정 453호 앞의 좁은 복도는 50여 명의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30분 후 시작될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보러 온 이들이었다.

'법정 출입 자격'을 확인하던 경위를 향해 여기저기서 항의가 터졌다. 재판은 35명이 들어갈 수 있는 소법정에서 진행됐는데, 이 중 일반 시민에 허가된 자리가 겨우 10석에 불과했다. 나머지 25석 중 16석은 법조 기자단, 9석은 원고·피고 관계인 몫이었다.

평소 인터넷을 하지 않는 '파월 장병' 출신 70대 노인 3명은 방청권이 뭔지도 몰랐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후 2시 10명에게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한다'는 공지를 며칠 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 방청권이 있어야만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막연히 '중요 재판인데 누구든 볼 수 있겠지'란 생각에 왔다가 10명 선착순에 들지 못한 20대 청년도 출입을 거부당했다. 재판을 보지 못할까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12~13시께부터 줄을 선 이들은 방청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가 대한민국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최초의 소송으로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게다가 이날은 역사상 최초로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와 한국군의 전쟁 범죄를 법적으로 증언하는 신문이 예정돼 방청객이 몰릴 거란 예상이 가능했다.

이날 1시간 30분 동안 줄을 섰던 송아무개씨는 "법원도 이 사안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겠죠"라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76세 A씨는 "미리 큰 법정에서 열었어야지, (재판 정보는) 모두가 알 수 있게 해야지"라며 아쉬워했다.

8세 아이에 총 겨눈 한국군 "창자 흘러내려... 지금도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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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베트남전쟁민간인학살사건 생존자 응우예 티 탄 씨와 목격자 응우옌득쩌이 씨가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와 함께 국가배상소송 진술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증인신문은 오후 2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6시간 30분 내리 진행됐다.

소송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62)씨와 목격자이자 탄씨의 친척인 응우옌 득쩌이(82)씨가 법정에 나왔다. 이들은 1968년 2월 12일 '퐁니(Phong Nhị) 사건'의 피해자다.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부대원들이 퐁니 마을 주민 70여 명을 사살하거나 총살했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퐁니 사건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 중에서도 증거가 많이 남은 사례다.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문화통신청의 자료(1995), 주월미군 감찰보고서(1968~1969), 2000년부터 이어진 1중대 부대원들의 인터뷰 증언 등이 있다. 특히 당시 인근의 남베트남 민병대와 미군은 퐁니마을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고, 한국군이 빠져 나간 직후 마을로 들어가 사진 촬영, 사망자 확인, 생존자 구출 등의 수습 활동을 벌였다.

탄씨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2020년 4월 한국 정부에 3100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지금까지 다투고 있다. 그리고 이날 한국의 법정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첫 법정 증언을 했다. 

"그날 집엔 이모와 이모 아들, 언니, 오빠, 동생, 동네 오빠와 나 7명이 있었다. 엄마는 장사하러 아침에 밖을 나갔다. 그날 오전 총소리가 들렸다. 우리 7명은 방공호로 들어갔다. 이후 마당으로 들어온 한국군은 방공호의 우리들에게 수류탄을 들이밀며 고함쳤다. '안 나오면 수류탄을 던질 것'이라고 느꼈다.

무서워서 방공호를 나갔고, 나가는 순서대로 다 총을 맞았다. 언니(11세)와 동생(6세)이 죽었고, 오빠(15세)와 난 심하게 다쳤다. 이모는 집에 불을 내려는 군인을 말리다가 칼에 여러 차례 찔려 죽었다. 수세미 나무 아래, 입에 총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던 동생이 기억난다. 엄마를 찾기 위해 나가는 길에 배 밖으로 창자가 계속 쏟아졌다. 손으로 잡아도 나왔다. 이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탄씨 증언 내용 종합)


저녁 6시 증인신문을 시작한 탄씨는 54년 전 총에 맞은 경험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어떻게 한국군임을 아느냐는 질문엔 "한국 군복의 얼룩무늬 옷과 모자를 썼고,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했다"며 "얼굴만 봐도 그들이 한국인임을 구분할 수 있고, 한국군 외형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학살 사건의 피해는 54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다. 탄씨는 가난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고 총상의 후유증과 정신적 고통이 계속 남아 있다고 밝혔다.

"8~9개월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1년 정도 화교 집에서 아이 돌보는 일을 했다. 나는 내가 고아라고 생각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녔다. 12살 때부터 해방 후(1975년 15세)까지 학교를 못 다녔는데, 이 때문에 크게 절망도 했다. 지금도 복부가 꼬이는 고통을 일주일에 3~4회는 느낀다. 그때를 기억하면 너무 소름이 돋고 악몽도 꾼다."

탄씨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베트콩이 한국군으로 위장해 양민을 학살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까지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에 공식 사과를 한 적도, 관련 조사를 추진한 적도 없다.

탄 씨는 "한국 정부 입장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를 죽인 이들은 한국군이 맞다"며 "한국 정부는 사실을 인정해서 피해자들을 위로해 달라. 고통을 덜 느끼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총을 쏜 군인들을 향해 "왜 아무 것도 모르는 이에게, 어린이들에게 총을 쐈습니까? 군인들이 적을 죽이지 않고 왜 죄가 없는 사람을 죽였습니까?"라고도 물었다.

사과·인정 않는 한국... 생존자 "내가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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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베트남전쟁민간인학살사건 생존자 응우예 티 탄 씨와 목격자 응우옌득쩌이 씨가 국가배상소송에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어머니 사망에 대한 기억을 되짚을 때 탄씨의 감정은 격앙됐다. 법정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보이며 울먹였고, 갈라진 목소리로 진술을 이어 갔다. 어머니는 그 날 한 이웃의 집 13구 시체 더미 속에서 발견됐다.

그는 "엄마의 죽음을 기억하면 너무 고통스럽다. 너무 고통스러워요"라 반복해서 말하며 "'왜 날 죽이지 않았나, 가족 모두 죽었는데'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이날 탄씨보다 먼저 신문을 받은 득쩌이씨는 사건 당일 탄씨 어머니가 집단 총살을 당한 현장으로 끌려가는 걸 본 목격자다.

당시 '농민개발단'에서 주민을 보호하는 병력이었던 득쩌이씨는 "300m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과 맨눈으로 한국군이 '판반끄'(이름)의 집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는 모습, 집을 불로 태우는 모습을 봤다"며 "퐁니 마을의 집 대부분이 불에 탔다"고 증언했다.

한국군이 철수한 후 마을에 진입했던 득쩌이씨는 "두 군데에서 시체 더미를 발견했다. 판반끄 집에서 13구, 원고(탄씨) 집 근처에서 6구, 그 외 마을에 흩어진 14구"라며 "판반끄 집 마당에서 원고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해 수습했다"고 말했다.

득쩌이씨는 82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신문 3시간 내내 기억을 복기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변호인이 스크린에 마을 지도를 띄어 '어디서 지켜봤느냐', '시체더미를 본 집이 어디냐', '탄 씨 집은 어디냐' 등을 물을 때마다 증인석에서 지도 앞으로 걸어 나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으며 설명했다.

끝으로 재판장이 탄 씨에게 '재판장에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탄씨는 "나는 생존자 증인이다. 8세부터 지금까지 그 사건으로 인해 고통스럽다. 그때 입은 상처는 아직 아프고 잊을 수 없다"며 "사실대로 판결해주길 바란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며, 이걸 말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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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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