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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홍보물... 윤 대통령은 '공감'이 뭔지 모르네요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김기춘 해명 복사한 대통령실, 공감 능력 실종된 대통령

등록 2022.08.10 15:52수정 2022.08.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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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 내린 폭우로 인해 9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부근 인도가 훼손되어 있다. ⓒ 권우성

 
"오늘 서울 곳곳에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 장면(현장)이야말로 진짜 비극이다."

진 맥켄지 BBC 한국 특파원이 9일 오후 전날(8일) 일가족 3명이 익사한 서울 신림동 빌라 사고 현장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했다. 그는 "(비슷한 반지하 주택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영화 <기생충> 속 재해보다) 실제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라고 강조하며 이런 분석을 덧붙였다.

"이들의 죽음은 큰 피해가 발생한 강남의 화려한 건물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주거에 적당하지 않은 반지하 주택에 수백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같은 날 오후 대통령실도 사진 한 장(카드 뉴스)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윤 대통령이 반지하 방 창 앞에서 쪼그려 앉아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진 속엔 '국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란 문구가 강조돼 있었다. 대통령실이 일가족의 비극적 참변을 사고 발생 만 하루도 안 돼 대통령 홍보에 버젓이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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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이 수해로 사망한 비극의 현장을 대통령 홍보에 버젓이 활용한 카드뉴스를 실은 대통령실 ⓒ 20대 대통령실

 
이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장면을 연상하게 했다. 대통령이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같은 느낌으로 바라본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2차 가해'부터 '공감 능력 부족' 등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차라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나 <기생충> 속 장면처럼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피난소를 찾아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라는 응원 아닌 응원이 답지할 만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여름휴가에서 복귀하자 국정 쇄신의 일환으로 대국민 홍보나 설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홍보 라인 교체를 시사한 바 있다. 그 홍보가 일가족 3명의 비극적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라니. 기록적 폭우라는 재해 상황을 다 함께 맞닥뜨린 국민이 참담함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이날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자.

대통령의 공감능력

이날 오후 윤 대통령은 사고 현장인 서울 신림동 빌라를 찾았다. 이진복 정무수석,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함께였다. 윤 대통령의 현장 점검 장면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과 똑같은 구도의 사진과 영상이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반면 홍수 피해를 입은 빌라 주민들의 항의는 크게 조명되지 못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0일 오전 6시 현재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 9명(서울 5명·경기 3명·강원 1명), 실종 7명(서울 4명·경기 3명), 부상 17명(경기)으로 집계됐다.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중 발달장애인인 언니(48)와 딸(13), 이들을 부양하던 백화점 면세점 하청업체 노동자인 여성(47)의 사망 소식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관련 기사]
반지하 계단으로 들이닥친 물... 세 여성은 문을 열 수 없었다 http://omn.kr/2078z.
"폭우에 사망한 엄마, 면세점 노동자들의 울타리였는데..." http://omn.kr/20793

쏟아지는 폭우와 재해 대응으로 경찰 출동이 늦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실이 강조하던 재난재해 매뉴얼이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재해 재난 피해 지역 현장 점검은 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이런 비극을 홍보에 활용한 것을 두고 전반적인 공감 능력에, 국민 안전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논란이 된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 되더라"는 문제의 발언도 이때 나왔다. 전체 발언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니 어제 (폭우가) 엄청난 거지. 서초동에 우리 제가 사는 그 아파트가 전체적으로는 좀 언덕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거기가 1층이 지금 물이 들어와 가지고 침수될 정도니...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이 되더라고요. 그러니 뭐... 아니 그러니까 제가 있는 아파트가 약간 언덕에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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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 되더라" ⓒ YTN

 
중부 지방에 호우경보가 떨어진 건 8일 정오 이후였다. 서울 곳곳에서 집중적인 호우가 쏟아지고 퇴근 시간 이후엔 폭우로 돌변, 강남 일대가 마비된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의 불, 아니 물 건너 강 구경 같은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용산 대통령실에서 퇴근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폭우가 쏟아지고 신림동 일가족이 침수 사고를 당했던 그때 윤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자택이 일부 침수되었다는 이유로 재해 대책을 전화로 지시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노무현‧문재인 청와대에서 근무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나 문재인 청와대에서 2년 반 근무했다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입을 모아 '퇴근 자체가 문제'라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애초 최첨단 종합상황실이 마련된 멀쩡한 청와대 지하 벙커를 무용지물로 만든 윤 대통령의 선택 자체에 국민이 의구심을 던지는 것도, '컨트롤센터가 아니라 폰트롤센터(전화를 뜻하는 폰과 컨트롤센터의 조어)가 됐다'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울러 신림동 반지하 침수 현장을 둘러본 윤 대통령은 "10분~ 15분 만에 침수됐다"던 주민에게 "근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바로 8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발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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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반지하 침수 현장을 둘러본 윤석열 대통령은 "10분~ 15분 만에 침수됐다"는 주민에게 "근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반문했다. ⓒ SBS

 
8년 전 집무실과 오늘의 상황실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한 정보를 보고받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결국 대통령 있는 곳이 상황실이란 말씀을 드린다."
- 9일 대통령실 관계자


"대통령이 계시는 곳이 바로 대통령 집무실입니다(...). 저흰 집에서 사무실로 출근하지만 대통령은 출근하시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 종일 근무하십니다."
- 지난 2014년 10월 국회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


상황실과 집무실이란 표현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른바 '박근혜 7시간' 행적에 대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8년 전 답변과 이번 폭우 자택 지시 및 '고립' 논란에 대한 대통령실의 해명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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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28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실 국정감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논란'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2014.10.28 ⓒ 남소연

 
8년 전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공유하는 국민들은 일가족 3명이 당한 비극 앞에서조차 홍보에 열중하고 '공감 능력' 부족을 자랑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는 대통령을, 정부를 어떻게 바라볼까.

공교롭게도 이날 여당인 국민의힘조차 대통령의 신림동 현장 방문 사진을 홍보 자료로 배포했다. 대통령이나 여당 모두 피해를 본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고 있는지, 공감 능력을 발휘할 의지 자체가 부족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전 정부와의 비교를 자처하는 콘트롤타워로서의 능력은 둘째치고 말이다. 

그리고 10일 오전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이 계신 곳이 곧 상황실"이라는 기존 대통령실 입장을 재차 확인하며 이런 발언을 내놨다. 자칫 역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강 수석의 발언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는 바다. 

"비에 대한 예고가 있다고 그래서, 비가 온다고 그래서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합니까?"
#윤석열 #폭우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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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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