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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커밍아웃' 출연자들 큰 용기... 환자로만 보지 않았으면"

[이영광의 '온에어' 187] <주문을 잊은 음식점 2> 연출한 김명숙 KBS PD

22.08.11 15:17최종업데이트22.08.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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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잊은 음식점2>포스터 ⓒ KBS

 
2018년 경증 치매 환자들이 주문받고 서빙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선사했던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4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왔다. 2부작으로 서울에서 영업했던 시즌1과 달리 시즌2는 제주도에서 음식점을 개업해 방송도 6부작으로 늘어났다.

출연진 섭외부터 방송 마치기까지 제작 과정 이야기와 함께 방송을 끝낸 소회에 대해 듣기 위해 지난 3일 <주문을 잊은 음식점 2>를 연출한 김명숙 KBS PD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수신료 아깝지 않다는 반응 가장 좋아"

- KBS 1TV에서 방송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 2> 6부작이 지난 7월 30일로 종영했어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끝났다는 생각보다 아직도 계속 제작 중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다 불현듯 방송이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대해서 안심도 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조금 복잡한데, 어떻게 보면 꿈을 꾸고 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 왜요?
"한번은 출연했던 치매 어르신이 촬영했던 사실을 꿈이라고 착각하고 생생하다면서 촬영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어요. 가끔 치매가 아닌 사람들도 현실이 꿈결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방송이 끝난 시점에서 가만히 돌이켜 보니 한바탕 소란스러운 꿈을 기분 좋게 꾸고 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 시청자의 반응은 어떤가요?
"KBS니까 가능한 일이다나 수신료 아깝지 않다는 반응들이 가장 좋았고요(웃음). 방송 보면서 그리운 누군가가 떠올랐다는 말들 하시는데,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주변에 한두 분씩은 다 계신 거예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본인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공감의 댓글들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경증 치매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반응들이 많았는데, 경증 치매 단계에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다는 사실과 치매에 대한 무지함에 놀라는 분들도 계시고요."

- 시즌1을 마치고 4년 만에 한 건데 어떻게 하게 됐나요?
"2018년에 두 편으로 방송이 나갔는데 좀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좀 더 길게 다음 시리즈를 기획해보자는 제안이 있었고 준비하던 중에 코로나19가 발생했죠. 모든 방송 제작에 차질이 있던 시기였어요. 특히 기저질환 가능성이 높은 고령자가 출연하는 저희 방송은 이 시기에 제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지난 시즌 출연자들과 계속 연락하며 지냈는데,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쉬운 단절과 고립이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보건소에서 관리하던 치매 관련 시설들이 폐쇄되면서 하루아침에 집 안에 갇히게 된 거예요. 외부의 자극이 없으니 인지능력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목격하게 됐어요. 경증 치매 환자의 경우에 외부 자극과 루틴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그런데 펜데믹 시기는 오프라인에 외부 자극이 끊긴 시기였잖아요. 코로나가 조금 잦아들었을 때 코로나 시기에 진단받게 된 분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면 의미 있고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치매 환자가 희화화될까봐 걱정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4년 전에 제작할 때는 그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호감과 비호감 사이에서 톤 조절에 신경을 곤두세웠었어요. 이번에는 희화화에 대한 걱정은 많이 없었고, 이번 출연자들이 어렵게 출연을 결심했는데 헛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메시지 등을 표현하는 데 꽤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 준비는 뭐부터 했나요?
"제 생각이 맞는지 실현 가능한 일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했어요. 하루에 수십 명씩 치매 환자들을 접하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을 복수로 만나 자문받았어요. 이러한 활동이 의학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음식점 영업의 조건 등 환경을 다듬어 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주인공들을 찾아 나섰죠. 이 섭외 부분에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 어떻게 찾은 거예요?
"4년 전 첫 방송과 이번에는 섭외의 형태와 루트가 다를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번은 치매안심센터라는 치매 노인들이 이용하는 기관을 통해서 공개모집을 한 후 지원자 인터뷰를 통해서 최종 출연자를 결정했어요. 이번에는 기관들이 운영을 안 하는 상황이어서 다들 집에 꼭꼭 숨어 계셨죠. 전국의 경로당을 돌고, 종로 길거리 헌팅도 나가보고, SNS를 밤새 뒤지면서 발굴했어요. 정말 우연히 만난 분도 있고요. 정말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만났어요."

- 치매하면 떠오르는 게 생리현상 못 가린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닌가봅니다?
"중증 이후에는 그런 단계가 올 수 있지만 모든 치매인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예전부터 치매하면 '벽에 똥칠한다'는 인식이 강한데 주로 미디어에서는 중증 이후의 케이스를 소개하니까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점점 강화돼 왔던 것 같아요."

- '깜빡 4인방'에게 제안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
"본인과 가족 모두 원하는 분도 계셨고, 본인은 출연을 원하지만, 가족분들이 끝까지 고민한 분도 계셨어요. 촬영하러 제주도로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없던 일로 하자 망설이기도 했었죠. 치매 사실을 알리고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보통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은 아니에요."

- 그럼 출연진이 바뀐 건가요?
"바뀌지 않았어요. 출연자 중에 60세로 나이가 젊은 분이 계셨는데 가족분들이 끝까지 고민하셨어요. 부모뻘 되는 분들과 함께 '깜빡 4인방'이 되는 것이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셨던 거죠. 저도 그 망설임이 상당히 이해되고 그래서 설득하는 게 더 조심스럽고 고민이 깊었는데 어렵게 출연 결정을 해주셨고 제주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재미있게 활약하셨어요."

- 치매는 나이가 어린 사람도 걸릴 수 있나요?
"65세 이상부터 노인 인구로 포함이 되는데 65세 이하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을 초로기 치매(조발성 치매)라고 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초로기 치매 환자가 10년 전에 비해서 4배 정도 늘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60세인 분이 출연하셨지만 아주 드문 일이 아니고 실제로 30대, 40대에도 치매인 분이 계세요."

"주인공들에게 힐링 주고 싶어 제주 선택"
 
- 시즌1은 서울에서 하셨는데 이번에 제주도에서 하셨잖아요. 출연자들이 여행하는 걸 원했다고 나오던데 설명해 주세요.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가장 원하는 장소에 음식점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이 코로나19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평소 이용하는 센터나 보건소 프로그램 등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태였고, 지난 3년간 치매 환자분들은 집 이외에 갈 곳이 없었어요. 섭외하며 100명이 넘는 분들을 만났는데 가장 원하는 것을 물어보니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죠. 치매 당사자와 보호자들에게도 일상의 작은 일탈이자 힐링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주도를 촬영지로 택했어요."

- 제주도 가니 어땠나요?
"서울에 음식점을 차렸을 때는 집에서 출퇴근하는 형식이었는데, 이번에 제주에 음식점을 차리면서 보호자와 함께 4박 5일 여행을 온 셈이 된 거죠. 낮에는 음식점으로 출근하고 아침저녁에는 개별 숙소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치매 진단 이후에 가족여행이 처음인 분들도 있었는데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해요. 무엇보다 4월 말의 제주도 풍경이 훌륭하니까 행복해하셨는데 제작진이 특히 음식점 장소를 정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어요."

- 왜요?
"출연자분들 인생에서 큰 도전을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기회는 앞으로 많지 않을 텐데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음식점을 오픈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도 행복한 추억을 선사하고 싶었고요."

- 영업은 3시간 한 것 같은데 분위기가 어땠나요?
"12시에 문을 열어서 3시까지 영업을 하고 문을 닫은 거예요. 수익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 식당이었던 거죠. 점심시간 동안 하루 3시간의 노동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는 자문을 받아서 의학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게 조건을 만든 거였어요. 마지막 영업일에는 입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깜빡 4인방을 무척 설레게 했어요."

- '깜빡 4인방'은 시간이 가며 호흡이 맞는 것 같은데 영업시간에 어떻게 했나요?
"치매가 없는 사람들도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안 해본 음식점 영업을 하자고 하면 긴장이 되잖아요. 치매 어르신들도 똑같아요. 첫날 오픈 직전에 서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말다툼이 있었어요. 순간 매니저, 셰프들 이를 어쩌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금세 싸웠다는 사실을 잊고 웃으면서 대화하셨어요. 영업 둘째 날에는 예상치 않게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위기 상황이 닥치니까 더욱 똘똘 뭉쳐서 상황을 헤쳐 나가시더라고요. 마지막 영업 전날에는 식당 문을 닫고 인근 바닷가로 소풍도 가고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더욱 돈독해졌어요."

- 중간중간 '깜빡 4인방'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국내 최초 '치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에요. 시청자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관찰 예능의 형식을 취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휴먼 다큐멘터리죠. 주인공에 대해 깊숙이 들어가야 할 때는 전통적인 다큐 촬영의 기법으로 담아내려고 했어요."

- 시즌1에서 함께했던 방송인 송은이씨와 이연복 셰프가 이번에도 참여했고 또 방송인 홍석천씨와 배우 진지희씨가 합류했잖아요. 이들은 어떻게 섭외하게 되었어요?
"다시 한다면 송은이 매니저와 이연복 셰프는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지난 시즌에서 기억이 좋았고 단일 프로그램으로 연속성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편수가 3배 늘어나면서 상황을 좀 더 풍성하게 해줄 역할들이 좀 더 필요했는데, 홍석천씨는 요식업 경험이 있고 주방과 홀을 전천후로 커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성소수자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맞서 왔다는 점에서 어르신들의 치매 커밍아웃을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죠. 또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했고 평소 관심 있었던 진지희 배우를 캐스팅하게 됐어요."

- '깜빡 4인방'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고 이름 부른 게 좋았던 거 같아요.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 치매 환자, 치매 노인으로 뭉뚱그려지잖아요.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성격도 개성도 천차만별인데 어느 순간 치매 노인으로 모든 걸 설명하게 되는 게 슬펐어요. 치매에 걸렸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으로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했어요."

-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 소개해 주세요.
"치매 어르신 두 분이 제주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는 제주도에 가고 싶은데 여기에 와 있으니 갈 수 없다는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기도 했고, 지난 방송 출연자 중에 한 분이 제주 식당을 깜짝 방문했어요. 즉 <주문을 잊은 음식점> 1기생이 2기생을 보러 기습 방문한 것이죠. 자연스레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며 80대인 후배들 군기를 잡으시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 혹시 시즌3에 대한 계획도 있나요?
"2018년에 첫 방송된 이후로 4년 만에 이번 시리즈를 방송하게 됐어요. 시즌1에서 2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오래 걸렸지만, 시즌3는 바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치매 당사자들을 위한 데이케어 센터일 뿐 아니라 치매인들이 환자가 아닌 시민의 자격으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에요.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치매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의 종류와 양상을 사회구성원들이 적절히 인지하고 대응 방식을 학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죠.

시즌3에서는 음식점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이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상상도 하고,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실험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된다면 여러 가지 소수성을 대입하고 만남의 장소를 음식점 이외로 확장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방송을 위한 한두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이식 가능한 지속적인 시도로 제대로 자리 잡기를 원합니다."
김명숙 주문을 잊은 음식점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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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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