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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부모라면 대놓고 퍼주는 강력한 육아정책

[노동의 종말] 저출산 극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노동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등록 2022.08.17 08:41수정 2022.08.1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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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기자말]
대한민국은 소멸 중이다. 수많은 통계자료가 이를 증명하고, 국민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유일한 국가, 이에 따라 2021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한 국가, 'n포 세대'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이 인간의 본능인 출산조차 포기한 국가… 전쟁이나 가난 없이도 스스로 소멸의 길을 택한 이질적인 국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저출산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국가경제의 가장 기초적인 톱니바퀴가 되는 노동에서 저출산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인구 구조의 고령화로 인한 산업재해율의 증가부터, '4차 산업' 어쩌고 떠들지만 여전히 인간이 '인적 자원'으로서 중요한 절대 다수의 산업에서의 경쟁력 약화는 우리 사회가 아이를 더 낳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산업 일선을 바라보는 공인노무사의 시선에서, 동시에 결혼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신혼부부의 시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저출산 정책, 그 중에서도 노동정책 분야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육아휴직 장려 등 수많은 카드를 꺼내며 젊은 부모의 손에 딸랑거리는 아이 장난감을 들려주려 하지만, 당장 필자부터 정부의 현 정책이 출산에 따르는 제반 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꼭 아이를 낳을 만큼 '당근'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말해야 입 아프지만, 현행 노동정책상 출산 장려를 위한 수많은 카드들이 단순히 '제안'에 그치지 않기를 필자 또한 바란다. 그런 점에서, 우리 법제 또한 이하와 같이 노동자의 범위를 넘어서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부모 휴가 제도'가 등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부모 휴가 왜 필요한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출산 및 육아 관련 정책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당장 근로기준법에서 90일의 '산전후휴가(출산휴가)',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자녀 1인당 각각 1년씩의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보장한다. 이 중 산전산후 휴가 및 육아휴직 기간에는 최저생계를 위한 급여 일부가 고용보험으로부터 지급된다. 유급휴가·휴직을 다 쓴 이후에는 소위 '가족돌봄 3종 세트(휴직·휴가·근로시간 단축제도)' 제도도 있다.

하지만 설명부터가 복잡한 온갖 제도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생각보다 위 제도에서 출산휴가·육아휴직 외 나머지 제도는 정체조차 모르는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인사담당자들마저 헷갈릴 정도로 위 기간 중에 유급인 기간과 무급인 기간이 나뉘고, 유급인 기간에도 급여지급의 수준이 각기 다르고, 신청을 위한 절차·요건 또는 필요서류가 중구난방이어서 법에 상대적으로 무지할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 큰 '허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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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정부세종청사 부근 어린이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2018.8.24 ⓒ 연합뉴스

 
따라서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한 생명의 탄생과 관련되는 과정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출산 전 단계에서는 '난임치료휴가'로 사회적으로 고령화된 예비 부모가 진짜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의 법정 건강검진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현재의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등을 아우르는 제도가 필요하다. 출산 및 그 이후 단계에서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아우를 수 있는 일관되고 통일된 정책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제적으로 적어도 출산 및 그 이후 단계를 위한 통합 '부모 휴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각종 제도를 일원화하고, 주무 부처도 하나로 통합한다면 관리하는 측면에서도 사용하는 측면에서도 간편하다.


복합적인 출산 정책의 특성을 고려하여, 정부에서는 최초 '여성가족부' 신설 때의 취지처럼 노동 차원에서의 인구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통합적 기구를 만들어 재원(고용보험, 국민건강보험 등)·연구(인구정책/노동정책 관련 연구소) 및 시행(공단 및 현 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역할)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의 한계

더하여,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보장되는 온전한 부모 휴가 및 관련 급여 제도가 '일하는 사람' 모두로 확대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대 사회의 노동은 대단히 복잡하다. 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개념은 전체 노동 인구를 대변하지 못한다. 배달원 등으로 대표되는 고용보험법상 노무제공자나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이미 광의의 근로자에 포함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업무의 특성상 사용종속성이 약하지만 여전히 '을'의 입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프리랜서 용역계약자들이 있다. 나아가 벤처기업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1인사업자 등 자영업자도 많다.

심지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하여 모두가 임신·출산·육아 관련 제도의 혜택을 보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고용보험법의 그늘에 있는 1차 산업 등 적용 제외 종사자라거나 일반 기업 종사자라 하더라도 '쪼개기 계약' 등으로 계속근로기간이 짧아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제도가 복잡한 만큼 사용자가 마음 먹고 허점을 파고 들어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너무 많다.

물론, 정부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지난 2019년 7월부터 프리랜서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위한 출산 급여 제도를 도입하는 등 노력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최소한의 소득활동(출산일 이전 18개월간 3개월 이상)을 하였음을 입증하는 경우 매월 50만 원씩 3개월간 출산급여를 지급하는 이 제도는 그간 출산 휴가 및 출산 급여가 남의 떡에 불과했던 이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제도이지만, 상대적으로 요건이 복잡하기도 하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와 같이 복합적인 구조를 무시한 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하여 부모 휴가를 도입한다면 반쪽짜리 정책에 불과할 것이고, 그 점에서 기존의 노동관계법상 출산장려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보호해야 하고,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는 상대적으로 시간 분배 측면에서 자유로울 테니 덜 보호해도 된다는 안일한 시각에 깔린 그늘이, 작금의 노동관계법령상 출산정책을 망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아버지 할당제' 도입

적용 대상 차원의 검토가 끝난 뒤에는 부모 모두가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요즘의 젊은 아빠들은 애초에 가부장적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아빠도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 때문에 '일하는 아빠'와 '쉬는 엄마'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임금 격차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현실에서 돈을 버는 데 유리한 아빠가 경제 활동을 선택하면서 자연스레 여성 대다수가 경력단절로 접어들게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럼에도 선택지가 하나뿐이라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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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는 지난 1995년 부모 휴가(우리의 육아휴직에 해당)의 일수를 자녀당 390일에서 450일로 늘리면서 '아버지의 달'을 만들어 최소 30일 이상은 남성 노동자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였다. ⓒ Pixabay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없앤다"는 당연하고도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있지만, 산업구조 전체를 개편해야 하는 위와 같은 정책은 장기적 과제이므로 당장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급한 불 끄기가 될 수는 없다. 이에 최근 시행되는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 제도' 등 어설픈 당근 대신 강제성을 지니는 '부모 휴가 아버지 할당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서구권에서는 낯선 제도가 아니다. 스웨덴에서는 지난 1995년 부모 휴가(우리의 육아휴직에 해당)의 일수를 자녀당 390일에서 450일로 늘리면서 '아버지의 달'을 만들어 최소 30일 이상은 남성 노동자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였다. 이러한 제도가 가정 내 남성의 육아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효과를 일으켜 현재 아버지 할당 기간이 60일(총 부모 휴가 기간은 480일로 증가)까지 늘어났다.

부모 휴가 기간 전체에 걸쳐 부모 휴가 급여가 지급된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전체 480일 중 390일은 개별 수급권자의 월 임금 수준의 77.6%에 비례하는 금액이, 나머지 90일간은 일정 금액이 정액으로 지급된다.

대상자도 위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하여 임금노동자뿐만 아니라 급여를 받는 회사 대표, 자영업자까지 포함하여 아이를 낳는 이들에게 "대놓고 퍼주는" 강력한 지원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김연진·김진욱, <스웨덴의 남성 부모 휴가정책 발전과정과 한국에의 함의>, 2022).

이는 여전히 여성 중심의 육아를 강요하는 우리 법제가 보고 배워야 할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한다. 성 평등이라는 대단한 가치까지 논할 필요도 없이, 남성이 사회인으로서만이 아닌 가정 내 아빠의 역할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이 적어도 "여자는 육아휴직을 가니까"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노동자를 더 선호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라도 강제성 있는 규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보험으로서의 '부모 보험' 

위와 같은 제도는 수혜 범위를 급격하게 늘리는 만큼, 재원 확보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 출범 당시 보건복지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하였던 '부모 보험' 제도를 현실적인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단순히 정책 수혜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기존의 고용보험법상의 방식은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고용보험은 구직 급여(실업급여) 등 다른 역할도 겸하기에 온전히 그 재원을 저출산 정책에만 쏟아붓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수혜자에게 전가된 자녀 양육 부담의 짐을 분담하고자 이를 국가 차원의 신규 사회보험 제도의 하나로 신설하고 그 보험료를 재원으로 출산휴가수당과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인수위에 보고한 '부모 보험'의 토대가 되어 현재 건강보험료에 '장기요양보험료'가 포함된 것처럼 '부모보험료'를 일정 비율로 포함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계획처럼 2025년 이후 '부모 보험'이 시행될 수 있다면 위에서 논한 광범위한 부모 휴가 및 그에 따르는 부모 휴가 급여의 재원이 충분히 마련될 수 있다. 물론 그로 인해 사회 전반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으나 적어도 아이 한 명당 무조건 얼마 식의 선거용 정책에 소요되는 예산보다는 도입 취지의 당위성이 높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맞벌이가 당연하게 요구되는 이 시대에서 노동 정책을 무시한 단순 출산 유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았고 또 낳을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정책을 위해, 젊은 노동 인구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청취하고 적극 반영해야만 국가의 소멸을 막고 '실패한 정부'의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다.
#부모휴가 #저출산 #노동정책 #출산휴가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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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공인노무사, HR컨설턴트(위장도급/산업안전보건 등)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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