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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건희 여사의 표절 사실을 밝힌 까닭

[구연상 교수 글 전문] '표절하지 말라'고 가르친 학생들에게 떳떳하고 싶어

등록 2022.08.14 15:56수정 2022.08.1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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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논문 표절 의혹' 피해자인 구연상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가 14일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글쓴이 허락을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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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가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국민대에서 국민대 민주동문회, 국민대 동문 비대위, 숙명 민주동우회 회원들이 규탄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사실 나는 2022년 8월 1일 전까지 한국 학계의 논문 검증 시스템을 믿었고, 명백한 표절 논문이 '표절 아님'으로 판정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국민대의 '틀린 결론' 앞에서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오는 9월 1일부터 마주하게 될 나의 수강생들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표절은 악행이다'라고 가르쳐야 하고, 리포트나 기말논문에서 표절을 저지른 수강생은 그 고의성에 따라 점수를 깎거나 0점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수강생 가운데 누군가 '교수님, 영부인의 표절은 되고 제 표절은 왜 안 되죠'라고 묻는다면,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이 담당 교수를 존경하는 가운데 모두가 서로의 앎을 키워나가는 떳떳한 교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표절하지 말라'는 내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이미 '표절 논문'으로 확인한 김 여사의 학위논문의 '표절 사실'을 밝혀야만 했다. 만일 내가 같은 수업에서 표절을 저지른 두 기말논문에 대해 한 논문에는 'F학점', 그리고 다른 논문에는 'A학점'을 주었다면, F학점을 받은 학생은 자신의 표절 잘못을 아무리 깊이 뉘우친다손 치더라도 그 불공정한 결과에 대해 분노할 것이다.

김건희 논문 표절, 지도교수 책임도 크다

나는 김건희 여사가 표절을 저지른 데는 논문 지도교수의 책임 또한 매우 크다고 본다. 논문 지도(指導)는 말 그대로 논문의 주제와 목적은 어떠해야 하고, 논문은 어떠한 방식으로 쓰는 것이며, '좋은' 논문이 갖춰야 할 문제의식과 학문적 기여 등에는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를 가르쳐 학생이 그 가르침에 따르도록 하는 일이다. 

나는 김 여사의 박사논문에서 이러한 지도의 흔적을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그 논문에 '지도교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논문지도교수의 자리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 교수가 스스로 책임질 줄 모른다면, 그는 가르칠 자격을 이미 잃은 것이다. 교수는 권력자가 아니라 '증명된 앎'을 키워나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논문이 내 논문의 '짜붙 표절'(짜깁기로 붙여 몰래 따오기-기자 말)의 '죄(罪)'를 지었기에 이미 '학위논문'의 자격을 박탈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논문은 박사급 논문다운 이론적 고찰이 아예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채택한 방법론의 타당성에 대한 입증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설문조사의 절차와 내용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 대한 치밀한 분석까지 모두 빠져 있고, 논문의 핵심 가치라고 볼 수 있는 주장들은 아무런 증명 근거도 없이 체계나 순서도 없이 아무렇게 나열되고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그 논문은 박사논문으로 인정될 수 없다.

나는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전기 철학을 바탕으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지도교수 이기상)이라는 논문을 써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입학 때부터 철학의 개념들을 '우리말다운 우리말로 뜻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했고, 지난 30년 가까이 우리 학문의 갈말들(학술어(學術語))을 '우리말답게 뜻매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비록 그 성과는 초라스러울 따름이지만 아직도 내 호(號)를 스스로 '우박'(우리말답게 바로쓰기 박사(博士)-기자 말)이라 고쳐 짓고 죽을 때까지 저 뜻매김의 길을 갈고닦아 나가려 마음을 다잡고 있다.

나는 '우리말 뜻매김'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실에 바탕을 둔 문제들을 찾아 철학적 반성을 체계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현실에서 찾아냈던 '우리의 문제'는 문화(文化)와 기술(技術)이었다. 

문화는 한 나라의 사람들이 실제로 삶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모든 것'으로서 살림살이의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고, 기술은 사람들이 누리고자 하는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이론과 능력을 포괄하는 것이다. 나는 2000년에 1990년 말부터 불어닥친 한류 열풍의 원인을 찾아 철학적 분석을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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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상 교수가 만든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내용 일부분. 노란색으로 칠해진 곳이 표절 의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 구연상 페이스북

 
김 여사께서 표절한 내 논문 <디지털 컨텐츠와 사이버 문화>(2002년)는 이러한 나의 두 갈래 학문적 방향성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때 한류의 중심은 드라마였지만, 나는 한류의 역동성과 파급력을 그 내용보다는 그 형식, 말하자면, '디지털 컨텐츠'(기술적 측면)에서 찾았던 것이고, 디지털과 컨텐츠 그리고 그 둘이 다물려 만들어진 합성어 '디지털 컨텐츠'에 대한 '우리말 뜻매김'을 마련하고 싶었다. 

김 여사께서는 '디지털 운세 컨텐츠'를 주제로 잡았기에 '디지털 컨텐츠'에 대한 우리말 뜻매김을 '우리말다운 우리말'로 풀어내는 내 논문에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출처 표시로 그에 대한 감사를 표했어야 마땅했다.

김건희 스스로 표절 시인하고 학위 취소 요구해야

하지만 김건희 여사는 2007년의 논문에서뿐 아니라 그 표절 의혹과 표절 사실이 드러난 2022년 현재까지 모르쇠를 잡고 있다. 그분의 '모른 척하기'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몹쓰리'(악행)로서 한국의 모아리(사회(社會)가 그동안 민주주의(民主主義, 우리 모두가 모두를 위해 모두에 의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일)를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서 나람(나라의 사람들,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영부인의 지위에 계신 분은 나람의 뜻을 높이 받들고, 그 말과 행동으로써 그 뜻을 구현해야지, 그것을 뒤로 되돌리는 잘못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우리 모두의 나라)이다"라는 말에 나오는 '우리'는 '운명 공동체'를 뜻하고, '모두'는 갓난아기로부터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다 아우른다. 

영부인의 모르쇠잡기는 '우리'를 '분노'의 공동체로 몰고가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사람들의 성난 마음을 풀어주는 데는 '진심어린 사과'만이 약(藥)이다. '사과(謝過)'는 자신이 자신의 허물로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스스로 떠맡아 지고, 자기 자리를 떠나거나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떠맡으미(사과하는 사람)는 가장 먼저, 잘못의 책임이 자신의 허물에 있음을 깨끗하게 시인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잘못의 피해를 본래대로 돌이키려(회복 回復)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진정(眞情)한 사과는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지만, 말뿐인 사과는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다. 

김건희 여사의 사과가 그 진정성이 전달되려면 적어도 사과의 두 번째 단계까지는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표절 시인'과 '학위 취소 요구'가 들어있어야 한다.

지난해 7월부터 2022년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표절 논란'은 2008년 광우병 사태의 전개 과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마도 광우병 촛불집회와 관련한 기억들은 크게 둘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시위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멀리서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그 문제 해결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흐려지는 기억일 것이다. 어쨌든 모든 기억은 그 뒤 새롭게 닥쳐온 수많은 굵직한 문제들에 이리 긁히고 저리 할퀴는 바람에 빛바랜 사진처럼 잊혀 갈 것이다. 이러한 망각은 축복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 모든 상처를 딛고 건강해졌다는 징표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는 '우리'를 다시금 새롭게 둘로 갈라놓았다. 이때의 갈라짐은 쪼개짐에 가까워 '우리'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그들' 또는 '저들'과 함께할 수 없는 '적(敵)'으로 나누고 말았다. 진영 논리는 진실의 블랙홀과 같아서 그 반작용으로 '말도 안 되는 말들'과 '거짓들'(가짜뉴스)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쪽 사람'과 '저쪽 사람'으로 갈리어 서로를 헐뜯는 데 혈안(血眼)이 되었다. 진실의 목소리는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처럼 순간 흩어질 뿐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하고 말았다.

사람의 삶은 본디 '함께살이'이자 '따로살이'의 운명을 타고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때마다 헬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갈래로 찢어지기도 하고, 그로써 낱사람으로 하나하나 흩어지기도 하지만, 갑자기 큰물이 넘치듯 한 자리로 쏟아져 나와 '집단적 신체'처럼 한몸으로 움직이는 큰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이때 모아리(사회(社會))는 격변(激變)이나 격랑(激浪)의 고비에 놓인다. 토인비는 역사의 발전이 미메시스(Mimesis, 닮아나감)와 네메시스(Nemesis, 복수 復讎 되갚음, 앙갚음)의 원리로써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나람(국민)이 엘리트(지도자, 指導者)를 따르려 할 때 그 모아리는 발전하지만, 그들이 진입장벽을 만들어 특권을 누리면서 나람의 뜻을 배반할 때 모아리는 혁명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제 일을 다 하는 가운데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바라기한다. 행복(幸福)은 사람이 저에게 아프고 괴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저가 바라는 바의 막힘과 걸림이 없이 더 바랄 게 없는 마음(만족,滿足)에 놓이는 것을 뜻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나라는 '올바른 법'에 의해 다스려질 때만 세워질 수 있다. 그 법과 시스템이 한쪽에게 치우쳐 기울어진 나라는 적은 사람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을 불행으로 빠뜨린다. 불행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건져줄 의무와 책임이 나라(국가,國家)에 있는 한 국정을 맡은 사람은 언제나 '법의 올바름'을 실천해야 한다.

슬기맑힘!

[관련기사]  
표절피해 교수 첫 요구 "국민대는 재조사, 김건희는 사과하라" http://omn.kr/2076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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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상 숙대 교수. ⓒ 구연상 페이스북

 
덧붙이는 글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가 14일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글쓴이 허락을 받아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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