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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가장 기대했는데... 등산화가 터져버렸습니다

[몽골여행기15] 65~66세 노익장들의 등정기... "힘들었지만 환상적 경험"

등록 2022.08.18 09:39수정 2022.08.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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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등산화를 신고 말칭봉 등정에 나섰던 궁인창씨의 신발 밑창이 떨어져 등산할 수 없게되자 프레지던트 오보로 되돌아와 누워버렸다. 악어입처럼 벌어진 신발을 본 몽골인들이 박장대소했다. "내가 말칭봉 등정을 포기한 게 아니고, 신이 나를 버렸다"고 말한 궁인창씨 말에 모두가 웃을 수 밖에 ⓒ 오문수

몽골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몽골 여행을 상상하면 어떤 걸 상상할 수 있을까? 끝없는 초원과 평화롭게 풀 뜯는 가축들? 아니면 물도 나무도 없고 모래만 가득한 고비사막? 대부분 드넓은 초원에 점점이 박힌 하얀 유목민 집 게르와 그 주위에서 한가롭게 풀 뜯는 가축들을 상상한다.

놀라지 마시라! 몽골에는 거의 바다와 같이 엄청난 넓이를 가진 호수와 강도 있고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도, 한여름이면 작열하는 태양 아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고비사막도 있다. 영하 40도에 달하는 겨울에 순록을 기르는 차탕족 마을도, 제주의 오름과 같은 화산폭발 현장도, 지진의 흔적도 볼 수 있는 장대한 스케일을 가진 나라가 몽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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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인근 카자흐족들이 키우는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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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머물렀던 캠핑장 모습 ⓒ 오문수

   
한국인들이 몽골여행을 떠나는 시기는 대개 한 여름이다. 해발 평균고도가 1580m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덥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습도가 높지 않아 여행할 만하기 때문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한국인 여행자에게 추천할 별난 여행지가 있다. 4천미터가 넘는 만년설로 덮힌 타왕복드다.


몽골 서쪽 끝 알타이산맥의 중심에 선 타왕복드에는 4천미터에 달하는 5개의 산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산 정상부는 몽골, 중국, 러시아의 국경선이 그어져 있어 3개국을 한꺼번에 밟아볼 수 있다.

타왕복드의 최고봉은 4374m의 호이텡산으로 등산용도끼, 아이젠, 등산용 로프 등을 구비한 전문 산악인이 찾는 곳이다. 반면 포타니 빙하 동쪽에 있는 말칭봉(4050m)은 일반 등산가들도 등정이 가능한 곳이다.

일반 등산가들이 가능하다고 해서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최고봉은 아닐지라도 산은 산이기 때문이다. 엄홍길 대장은 "등산할 때는 항상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말칭봉 등정... 너무나 힘들었지만 환상적 경험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의 21일간 몽골여행 중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4천미터가 넘는 만년설에 둘러싸인 말칭봉 등산을 눈앞에 뒀기 때문이다. 일행이 몽골 서쪽끝 도시 바양을기를 떠나 타왕복드 아래 야영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2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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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오보에서 말칭봉 등정에 나선 일행을 기다리는 푸르공 운전사와 바인졸 가족이 몽골 국기인 소욤보를 펼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타왕복드는 몽골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타왕복드에 오르는 건 몽골인들의 로망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기를 들고 기념촬영했다. ⓒ 궁인 창

     
부랴부랴 야영 텐트를 치고 식사를 마친 일행은 말칭봉 등정팀과 프레지던트 오보까지만 등산하는 두 팀으로 나누어 회의를 한 후 팀별로 등산 준비에 나섰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한 등정팀은 배낭에 아이젠, 스틱, 방한모자, 카메라, 물 500cc와 주먹밥을 준비했다. 안동립 단장을 비롯한 7명의 말칭봉 등정팀은 새벽 4시에 출발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타왕복드 등산이 두 번째인 필자도 말칭봉 등정팀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거절한 이유가 있었다. 몽골 출발 전 갈비뼈 골절상을 겪기도 했지만 10년 전 엄홍길대장과 함께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후 귀국해 열흘간 병원에 입원했던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화가 망가져 중도에 등반 포기하고 돌아온 '신이 버린 남자'

다음날 새벽 말칭봉 등정팀이 떠난 후 오전 야영장에 남아있던 필자를 비롯한 나머지 대원 4명이 10시경에 푸르공을 타고 프레지던트 오보에 도착했다. 그런데 새벽에 떠났던 궁인창씨가 나타났다.

"꼭 말칭봉 정상까지 오르겠다"며 큰 소리치며 호기롭게 떠났던 그였기에 이유를 묻자 등산화 코가 벌떡 일어선 신발을 보여줬다. 영락없이 악어가 입을 벌린 모습에 일행과 프레지던트 오보에 오른 몽골인들이 박장대소했다. 피곤해 빙하를 배경으로 누워있는 그 모습을 보니 정말 '신이 버린 남자'다.

"헌 등산화를 신고 포타니 빙하 옆 초원길을 걷는데 눈과 얼음이 녹아 진창길을 걷다 보니 등산화 밑바닥에 발라뒀던 본드가 떨어졌나 봐요. 물이 새는 등산화를 신고 등정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등정을 포기하고 되돌아왔어요. 내가 등산을 포기한 게 아니고 신이 나를 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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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칭봉 하단부에 설치된 베이스캠프 모습. 헌 등산화를 신고 말칭봉에 오르던 궁인창씨의 신발 밑창이 벌어져 그의 등정은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초원길은 눈과 얼음이 녹아 곳곳에 진창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 안동립

     
다음은 고조선유적답사단을 이끌고 말칭봉 정상 도전에 나섰던 안동립 단장과의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새벽 4시 캠핑장을 떠난 일행이 프레지던트 오보에 도착하자 먼동이 붉게 떠올랐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오보에서 말칭봉 위치와 산행루트를 설명한 후 포타니빙하 오른쪽에 펼쳐진 초원을 따라 3500m 산 두 개를 넘어가니 베이스캠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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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45분에 일어나 푸르공을 타고 5시 50분에 프레지던트 오보(3080m)에 도착한 말칭봉등정대가 주먹밥을 먹고 있다. ⓒ 궁인창

   
베이스캠프에는 화장실과 집, 게르가 있었다. 평탄한 초원길을 지나 조금 더 가니 빙하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와 돌 굴러가는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경사가 심한 잡석지대에 들어서니 돌과 잡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사람이 오를 수 없을 정도다.

식물한계선을 지나니 울긋불긋한 야생화들이 지천에 깔려 있어 지친 일행들을 즐겁게 해줬다. 일행이 3시간 20분 동안 이동한 거리는 9.5㎞. 드디어 말칭봉 하단부에 도착했다. 이윽고 흙길이 끝나자 거대한 너덜바위 지대가 나타났다. 경사도 60~70도, 고도차 800m가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앉아서 공격할 루트를 살펴보니 사람이 다녔던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일행은 전날 이해선•전신자씨가 정성껏 만들어준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산행 시간이 6시간이 넘었는데도 아직 너덜바위와 씨름하고 있으니 죽을 지경이다.

만년설이 쌓여있다고 해도 한여름이라 해가 뜨면 덥고 구름이 몰려오면 싸락눈이 내린다. 늦가을 복장인데 냉탕과 온탕을 오가니 피곤이 배가 됐다. 오르는데 3시간 내려가는 데 3시간 도합 6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관리인 말만 듣고 각자 500cc 물 한 병씩만 지참한 물이 떨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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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만년설, 오른쪽은 바위와 자갈투성이인 너덜지대라 너무 힘든 일행들. "아이고 힘들어라! " ⓒ 안동립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이번 여행에 참석한 첫 번째 이유가 말칭봉 등산이라고 말하며 호기롭게 나선 박인석씨가 고산병 증세로 머리가 아프다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아! 언제 정상까지 올라가지?" 마음이 심란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일행에게 엄홍길 대장의 말이 생각났다. "눈이 게으르지 발은 게으르지 않아요!" 드디어 산행 7시간 30분 만에 마지막 고비인 3880m 능선 위에 올라섰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능선 북쪽 사면은 만년설 쌓인 직벽이고 남쪽 사면은 빙하지대까지 잡석이 쌓여 있어 발을 잘못 디디면 산 아래까지 굴러떨어질 수 있다. 다행히 박인석씨가 다시 기운을 차려 일행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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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말칭봉 정상에 오른 대원들이 "해냈다!"며 환호하고 있다 ⓒ 안동립

           
드디어 산행 8시간 만에 말칭봉 정상에 올라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정상에는 돌로 쌓은 오보에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고 하닥이 묶여 있었다. 몽골, 중국, 러시아 국경에선 일행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14시 37분, 구름이 몰려와 날씨가 급변할 것 같아 일행은 서둘러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훨씬 힘들다. 더군다나 너덜지대가 아닌가. 몇 명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산사태 지대에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푸르공 운전사가 기다리는 프레지던트 오보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말칭봉 정상에 오른 6명 중 한 사람을 제외한 5명이 65~66세 노익장이다. 관리인으로부터 왕복 6시간이면 충분할 거라는 말만 믿고 말칭봉 등정에 나선 일행은 18시간 30분 만에 캠핑장에 돌아왔다.

지친 모습으로 캠핑장에 되돌아온 등반대원들의 얼굴에 피곤이 깃들어 있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에 젖어 행복해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몽골 여행팀에 합류한 첫 번째 이유가 말칭봉 등정이라고 말한 박인석씨가 등정 소감을 말했다.

"제가 몽골여행에 참여한 첫 번째 이유가 말칭봉 등정이었고 두 번째는 고비사막 횡단이었어요. 몽골여행 초반에 허리를 삐끗해 몽골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좋아졌어요. 말칭봉 등정팀과 합류했지만 3500m부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 산행을 포기하고 너덜바위 속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강렬한 햇살에 놀라 눈을 떴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몸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아 위를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일행들이 산을 오르고 있어 따라붙어 정상까지 올랐으니 목표를 이룬 셈입니다. 내 인생에 또다시 말칭봉에 오를 기회는 오지 않을 텐데 소망을 이뤘으니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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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왕복드에서 가장 높은 산인 호이텡산(4374m) 모습으로 전문산악인들만 등정이 가능한 산이다. 몽골 최고봉이기도 하다 ⓒ 오문수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말칭봉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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