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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친구 없어서... 성매매 덫에 걸린 경계선지능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 ③] IQ 71 이상도 지원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필요해

등록 2022.08.17 15:35수정 2022.08.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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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10명 중 1~2명, 사각지대, 느린학습자, 장애·비장애의 중간, 은둔형 외톨이.' 지능지수 71~84인 경계선지능인을 일컫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살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유아 시절부터 성인 이후까지 우리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과 편견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와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인식 또한 확산되고 있지만 한계는 여전합니다. <충북인뉴스>는 8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들의 학교생활과 성인이후 삶을 조명해보고, 문제 개선 및 대안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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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인뉴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계선지능인 성폭력 피해 양상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의한 성폭력이다. 경계선지능인의 상당수는 외롭고 친구가 없어 위안을 찾던 중 스마트폰에 의지하게 되고, 이를 매개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는 것.

A양도 그런 경우였다. A양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늘 노력했지만, 성적은 항상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부모는 좋은 학원, 좋은 과외선생님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거라 생각하며 좋다는 학원과 정평이 나 있는 과외 선생님을 A양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친구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관계는 늘 틀어지기만 했다.

그러던 중 지능검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 A양은 IQ72 경계선지능인이었다. 부모는 인정하지 않았고,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며 더욱더 학습에 매달리게 된다. 문제는 그러면 그럴수록 A양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는 것이다.

그런 A양에게 위안이 됐던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A양은 가상세계에서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그곳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은 말도 많이 시키고, 칭찬도 많이 해 주었다.

위안을 받았고 행복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고받았던 사진은 어느새 협박의 빌미가 되었고 성폭력, 자해, 자기학대로 이어지는 '고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스마트폰, 경계선지능인과 성폭력의 연결고리가 되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성폭력상담소 상담사들은 A양 사례가 최근 성폭행 피해를 입은 경계선지능 여성들의 '전형적인 코스'라고 말한다. 학업과 친구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해소할 곳을 찾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과 가상공간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은 곧 성폭력의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경계선지능 여성 청소년(청년)을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들은 SNS로 인한 성폭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20대 여성을 자녀로 두고 있는 B씨는 "다양한 경험이 없고 특히 성적인 부분의 경험이 없어서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 당할까봐 두려워요. 조금만 잘해줘도 따라가곤 하니까요. 늘 걱정입니다"라고 전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2020년 발간한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폭력 성매매 피해 예방방안(이하 '성폭력 피해 예방방안')'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당한 피해자는 친구가 없고 외로워서 스마트 폰 등을 이용한 채팅이나 온라인으로 남성 가해자를 자주 만났다.

특히 몇몇 피해자는 조건만남으로 성매매를 시작했고, 이들은 성매매 후에도 상대가 잘해주고, 돈도 줬고, 진심으로 대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만난 것처럼 좋고, 오히려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으며, 이용당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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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폭력 성매매 피해 예방방안’(부산여성가족개발원)

 
경계선지능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

경계선지능인 성폭력의 두 번째 양상이자 특징은 '장애인 성폭력'과 닮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SNS로 인한 경계선지능 여성들의 성 착취와 성폭력 피해사례가 늘고 있지만, 사실 경계선지능 여성들의 성폭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그 형태는 '장애인 성폭력'과 꽤나 닮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애인 성폭력은 ▲친족에 의한 ▲다수에 의한 ▲장기간에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는데, 경계선지능인 성폭력도 이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경계선지능이었던 C양도 그랬다. 10대였던 C양은 직접적인 친족관계는 아니지만, 사실혼에 있었던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을 반복적으로 당했다. 그러나 엄마 또한 경계선지능인으로 상처받은 C양을 돌보지 못했고, 결국 C양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원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C양이 선택할 수 있었던 곳은 장애인 시설. 그러나 이마저도 '71'이라는 지능지수로 장애인시설 입소에서 탈락됐다. C양은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일부에서는 비장애인 시설 입소를 원하는 경계선지능인도 있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계선지능 여성들의 대다수는 어쩔 수 없이 비장애시설에 입소하게 되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아픔을 겪는다.

"사실 경계선지능인들이 비장애 시설에 가면 완전히 소외되고 일단 천덕꾸러기가 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곳에서도 소통이 잘 안되니까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모든 것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경계선지능인은 그곳에서도 또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야말로 사각지대 중의 사각지대인거죠."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성폭력 사건이 재판으로 이어진다 해도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경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도, 또 성폭력 이후에도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지원은 전무하다.

"비장애시설에서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준이 맞지 않아요.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도 장애카드가 있어야 하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재판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루밍 경우에도 장애 파트로 가면 어느 정도 참작이 되는데 비장애로 가면 참작되는 게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상담사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경계선지능인을 장애로 분류하고, 비장애인과는 다른 별도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과 비슷한 정도 또는 같은 정도의 피해를 당하고 고통스러워 하지만, 실제 지원은 전혀 받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성폭력 피해 예방방안' 보고서를 통해 보다 분명히 경계선지능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보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경계선지능을 가진 사람 모두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다거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로 인해 사회적 적응이 어렵고, 인식의 왜곡이나 정서장애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동반되어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거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제2·제3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는 장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경계선지능인을 제도권 안으로

그렇다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 생애에 걸친 지원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일단 이것이 어렵다면 장애인에 준하는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

청주에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송은주 원장은 "가장 핵심은 IQ71 이상도 지원받을 수 있는 하나의 범주를 법적으로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계선지능인들에게는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상담부터 재판과정, 시설입소, 그리고 자립을 위한 주거시설 지원과 취업까지 전 과정에 걸쳐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IQ가 비장애 범주인 71이라 하더라도 장애등급 대상자인 IQ69와 (인지·사회성 부분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숫자 2~3차이로 지원 여부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의 '성폭력 피해 예방방안' 보고서 또한 경계선지능 여성 성폭력·성매매 피해 예방을 위해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 확보 ▲사회적응 지원체계 구축 △특수교육에서의 지원체계 강화 ▲의료지원 시스템 구축 ▲전문가 협력망 구축과 매뉴얼 제작 등 5가지 방안을 제시한바 있다.

이외에도 경계선지능인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경계선을 비장애로 끌어올리기 위해 아동을 압박하다 보면 아동은 SNS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하고, 결국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부설 성폭력상담소 상담사들은 "경계선 아이들은 친구가 핸드폰 안에만 있으니 SNS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채팅을 하고 성폭행까지 가는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가 없어요. 하지만 경계선지능이라 하더라도 부모가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70과 71, 작지만 너무 큰 차이

이쯤에서 경계선지능인 지원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장애판정의 핵심인 지능지수의 문제점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으로는 장애를 느끼고 있지만, 지능지수 2~3차이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적장애인 3급으로 판정받기 위해서는 지능지수가 50이상~70이하여야 한다. 또 여기에 사회성숙도 검사 결과가 보조적으로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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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문제는 이 기준이 정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즉 검사 당일 컨디션에 따라 2~3 정도는 충분히 바뀔 수 있고, 지능지수만으로 한 사람의 지능을 전부 판단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송은주 원장은 "예전에 만났던 친구는 놀랍게도 IQ가 91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IQ는 좋지만 조울증이나 정신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웠는데도 장애등급을 받지 못했어요. 조울증이나 정신장애 모두 경계선급이라 장애판정이 안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분명히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데 국가에서는 장애가 아니랍니다. 이게 바로 모순입니다"라고 전했다,

실제 학계에서는 IQ검사 자체에 대한 논란도 상당하다. 런던 사이언스뮤지엄의 로저 하이필드 박사 연구팀은 이미 2012년 전 세계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12가지 지능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 결과 연구팀은 "IQ테스트만으로 뇌 기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순이고 인간의 지능을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무엇을, 어떤 상태를 장애로 보느냐'하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라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의하는 장애인이란, '신체·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0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 5.4%다. 그러나 외국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장애 판단 기준은 지극히 인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020년 발표한 '2020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의 장애인 비율은 무려 35.7%이고, 그리스는 23.1%, 영국은 21%, 미국은 12.7%에 이른다. OECD국가들의 장애인 비율 평균은 24.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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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주요국 장애인출현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 활동가가 지난해 8월  <한겨레21> '한국 장애인은 왜 영국의 4분의 1도 안될까'를 통해 밝힌 다음의 내용은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장애는) 누군가가 지닌 손상 자체가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이 일정한 사회적 환경에서 어떤 활동의 제약과 차별을 경험하고 어떤 필요(needs)를 갖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애 인정 여부에서 여전히 철저하게 의료적 기준을 따르는데 이는 매우 임의적일 뿐만 아니라 여러 모순과 문제를 발생시킨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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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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