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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있는데 왜 버스를 못 타유?" 시골에서는 지금

사라지는 은행, 카드·페이 중심 결제... '금융 디지털화' 속 농촌 소외

등록 2022.08.25 19:22수정 2022.08.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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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들은 무거운 '돈 통' 관리에 애를 먹는다는 점, 주말에는 현금 수금 직원이 쉬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는 점, 요금에 '꼼수'를 부리는 승객 단속의 어려움 등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월간 옥이네

 
금융을 쉽게 풀이하면 '돈을 융통하는 일'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자유자재로 쓰고, 모으고, 투자할 수 있는 규칙과 힘이다. 이런 '힘'을 박탈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식, 채권, 대출 등 거창한 금융 서비스는 물론이요, 시내버스 이용, 예·적금, 심지어 동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조차 손해를 강요받는다면?

이것이 농촌에 불어닥친 '금융 격차'의 실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규칙에 적응하라'면서 변화를 채찍질하기만 한다. 정말 농촌은 시대에 뒤떨어진 곳이므로 도태돼야만 할까?
 
기술 발전이 불러일으킨 금융 격차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거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작게는 물건을 사고 교통편을 예약하는 일부터 크게는 은행 대출과 차량 구매까지 '손가락 까딱'만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세상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만민평등의 낙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역사가 보여주듯 모든 인간이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받는 이상향은 실현된 적 없고, 세상은 기술과 정보 격차를 통해 이권을 차등한다.

그나마 이런 '차별'이 예전에는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간의 '국가 차원'에서 벌어졌다면, 요즘은 도농과 연령대 등 국가 내부에서 불거진다.

다행히 도시와 농촌의 디지털 격차는 코로나19 범유행을 계기로 좁혀진 편이다. 교통, 금융, 의료, 행정, 복지 등 사회 다방면에 걸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서비스가 강화됐다. 농촌도 예외가 아니었다. 농어촌의 스마트폰, PC, 모바일 기기 등의 디지털 정보 기기 이용 능력을 종합 평가한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2021년 78.1%(2021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2019년의 70.6%보다 상승했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C 보유 가구 수는 일반 국민 대비 18.4%, 모바일 기기 보유 가구는 10.1% 낮다. 특히 '온라인 경제 활동률'은 일반 국민 대비 77.7%에 불과해 금융 분야의 격차가 도드라진다. 즉, 코로나19 범유행을 겪으며 스마트 기기 보급, 키오스크 운영 확대 등으로 농어촌의 '디지털 접근성' 자체는 좋아졌으나, 실질적으로 주민이 이를 활용하는 운용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농어촌 안에서도 격차는 존재한다. 위에 언급한 '온라인 경제 활동률' 조사 항목 중 '소득 증대·유지에 도움 되는 정보습득 활용률' 분야를 보면, 같은 농어민이라도 20대 이하는 73.2%, 60대 이상은 31.6%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온라인으로 금융 서비스 역량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고령층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기술 발전의 급류 속에서 '옛 방식대로' 금융 혜택을 누릴 유일한 방법은 은행 지점 방문이다. 그런데 시중은행은 농촌 지점을 출장소로 축소하거나 아예 폐쇄하고 있다. 은행이 내세우는 '경영효율화' 측면에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인구소멸로 사라져가는 지역 지점은 영업 효율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 이런 환경 탓에 결국 농촌 고령 주민들은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금융 접근 기회를 박탈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농촌 금융의 마지막 보루,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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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금융 범죄 피해 예방 교육을 실시한다. ⓒ 월간 옥이네

 
"좀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농협이 사라지는 날이 곧 그 농촌이 사라지는 날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농촌과 농협은 운명공동체예요. 농협은 시중은행과 달리 금융 업무뿐만 아니라 경제 업무도 같이 진행합니다. 경제사업본부에서 추진하는 영농 지원과 영농 자재 보급 사업, 곡물 수매 등은 농가 소득을 지키는 데다, 농촌의 경제 구조가 붕괴하지 않도록 자생성을 유지하는 긍정적 역할도 합니다."

이원농협 이중호 조합장의 평가대로 농협은 농촌 주민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전진기지나 마찬가지다. 만약 충북 옥천에서 농협이 사라지면 대전까지 금융 업무를 보러 가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비대면으로는 할 수 없는 경제 사업 신청이나 주택 청약 등의 업무를 보기 위해서라도 지점 유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농협이 진행하는 농민 대상 금융 교육과 금융 범죄 피해 예방 교육도 받을 수 없게 돼 피해자가 급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몇 년 전엔가, 옥천농협에서 진행한 금융 교육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금리 변동에 맞춰서 대출을 더 잘 받는 방법도 듣고, 계좌 관리하는 것도 배우고 그랬죠. 코로나 기간에는 온라인으로 열었다는데, 내가 그런 걸 할 줄 알아야 말이죠. 농협이 없어지면 여까지 찾아와 가르쳐줄 은행이 있겠어요? 지점도 없애는 마당인데."

군북면에 거주하는 안영순씨는 NH농협은행이 진행하는 '행복채움 금융교실' 이수자다. 이 프로그램은 NH농협은행이 주관하고 각 지역 지부가 실행하는데, 옥천의 경우 농협은행 옥천군지부가 맡아 시행해왔다. 금융 지식이 부족했던 안씨는 교육 참여로 효율적인 예·적금 관리 방법을 배웠고, 적립률이 좋은 적금 상품도 하나 들 수 있었다. 시중은행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농협만큼 전국단위에서 대대적인 농촌 금융 교육을 펼치는 곳은 없다.

농촌에서 농협은 그저 '은행'이 아니라, 금융의 마지막 보루다. 애초에 농업협동조합, 그러니까 농민이 주인인 조합이기에 당연한 의무지만, 국가 행정기관인 우체국마저 수익성을 이유로 농촌 지점을 없애는 게 현실이다. 당장 옥천도 사라질뻔한 안남우체국을 겨우 지켜낸 과거가 있지 않은가.

금융 범죄를 걸러내는 '대면 안전망'

"어르신, 그거 보이스피싱 같은데요? 일단 더 자세히 확인해보셔야 해요. 요즘에는 정말 범죄 방식이 교묘해졌어요. 여기 안내장 보시고 저희 절차대로 확인 기다려주세요."

농촌 은행에 가면 가끔 듣게 되는 대화 내용이다. 보이스피싱·스미싱(문자를 이용해 금융 정보를 해킹하는 것) 범죄가 기승을 부린 몇 년 전보다는 기세가 죽었지만, 아직도 고령자를 대상으로 이런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옥천만 해도 올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한 공로로 표창받은 농협 직원이 군북지점을 비롯해 여럿 나왔다. 예방 횟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보이스피싱 시도 사례도 잦다는 뜻이다. 도시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농촌 고령자가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한 달에 보통 한두 번 정도 그런 사례를 겪어요. 그래도 농협 직원들이 사기 시도를 많이 걸러내요. 지난달에도 따님이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요구해 저희 농협에 찾아온 분이 있었어요. 정말 무서운 게, 요즘은 정도를 넘어 범죄 방식이 더 치밀하고 정교해졌어요. 전에는 유출된 개인 정보를 보고 어설프게 사칭을 시도했다면, 지금은 신분증까지 위조하고 연락처와 메일 주소까지 해킹해 감쪽같이 다른 사람 흉내를 내요."

이원농협 김영숙 대리의 말처럼, 농협은 농촌 금융 범죄 예방의 '3차 병원'이나 마찬가지다. 중환자의 마지막 보루가 3차 병원이듯, 농촌도 농협이 '최후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스미싱으로 휴대전화를 해킹해 통장 비밀번호를 빼가거나, 신분증을 위조하고, 구분이 불가능한 금융 기관 사칭 홈페이지를 제작해 계좌 정보를 훔치는 등 날로 진화하는 범죄 수법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고.

"대응 방법을 고민하다가 직접 보이스피싱을 '공부'하고자 일부러 당해본 적이 있어요. 물론 송금 전 단계까지만 진행했는데, 금융 종사자인 저조차 모르고 당했다면 속았을 거예요. 특히 농촌 주민이 취약한 디지털 사기 수법은 치명적이고요. 그래서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호가 필요한 '현금 사용할 권리'


'현금'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격차를 한층 부채질한다. 여기서 현금이란 지폐·동전 등 실물 화폐를 말한다. 지난 7월 1일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 대전광역시의 '현금 없는 시내버스'가 대표적이다.

대전광역시가 밝힌 바에 따르면, 대전 시내버스 승객 중 현금 지불 비율은 1.5%(2022년 기준)다. 1.5%의 승객을 위해 현금 요금통을 설치·관리하는 비용이 1억 원 이상이어서 낭비가 심하다는 게 이유다.

대전 제도가 옥천과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옥천과 대전을 잇는 유일한 간선버스 '607번 버스'도 현금 사용이 불가능해져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이른 아침, 대전에 가려고 군북면 이백리 정류장에 서 있던 이금순(83)씨는 버스를 타려다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 앞으로는 버스요금 현금 안 받아요. 9월까지는 시범 운영하고 10월부터는 정식 운영하니까 앞으로는 교통카드 준비하세요."

손에 구겨 쥔 천 원권 지폐와 500원 동전이 잠시 목적지를 잃고 방황한다.

"무슨 버스가 현금을 안 받는대유?"

하지만 '제도'는 항의를 허락하지 않는다.

"607번 버스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사정을 설명하는 기사도 난감한 표정이다. 드문드문 앉은 승객들은 안내 때문에 출차가 늦어지자 미간을 찡그린다.

"참말로, 돈 안 받겠다는 말은 머리털 나고 처음 듣네. 이제 교통카드만 된다 이거잖아. 아 나도 카드 있어. 여기선 현금만한 게 없으니 그러지. 카드 쓸 줄 몰라 이러간? 버스회사는 촌에서 카드 충전하기가 쉬운 줄 아는가봐. 아 읍 사람들이야 충전할 데 많으니까 몰르지. 나처럼 면 사람들은 버스 타려면 맨날 농협 가서 충전해야 되는 거여? 무릎팍도 애린데 농협까지 가려면 큰일났네."

옥천농협 군북지점 앞에서 만난 송아무개씨도 화가 잔뜩 났다. 뻔히 돈을 들고도 탈 수 없게 하겠다는 세상 심보에 '부아'가 치밀어서다. "관리 편하게 하겠단 거 아녀. 시골에서 현금 쓰지 말라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삼양사거리 정류장에 서 있던 이아무개 이병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100일휴가(신병위로휴가)'를 나와 고향 옥천을 찾은 그는 버스 탈 때 자기도 모르게 현금에 먼저 손이 간단다.

"시행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부대에 있어서 이달부터인지 몰랐습니다. 젊은 저도 그러는데 어르신들은 어떨지 눈에 선합니다." 현금 사용 금지 자체보다도 시행 정보가 전해지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란 것.

'금융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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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과 대전을 잇는 유일한 간선버스 '607번 버스'도 현금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 월간 옥이네

 
반면 현장에서는 다른 소리도 나온다. 버스기사들은 무거운 '돈 통'관리에 애를 먹는다는 점, 주말에는 현금 수금 직원이 쉬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는 점, 요금에 '꼼수'를 부리는 승객 단속의 어려움 등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카드로는 요금을 속일 수 없죠. 500원짜리 대신 100원을 내거나, 일부러 다 동전으로 바꿔서 금액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만드는 수법으로 버스요금을 덜 내는 분이 간혹 있어요. 기사들은 소리만 들어도 다 알고, 실제 적발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게 다 업무 피로도 증가로 이어지고요."

버스요금 외에도 실생활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금 사용권 박탈'사례는 많다. 편의점부터 커피 전문점까지, 일부 매장들을 제외하곤 어디서나 '페이'라 이름 붙은 여러 간편 결제 서비스가 상권을 점령했기 때문. 할인·적립 혜택은 '페이'와 제휴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현금 사용자는 상대적인 손해를 본다.

배달 앱, 온라인 쇼핑, 여행, 숙박 등 소비 생활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런 '페이 혜택'을 찾는 풍경은 일상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현금은 도태당해야 할 '낡은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옥천에 오면 불편할 때가 많아요. 옥천읍은 간편 결제 가맹 가게가 많아 상관없는데, 면 단위로 가면 사정이 달라져요. 도시 습관대로 현금도, 카드도 안 들고 왔다 결제를 위해 휴대전화를 내밀면 당황하시죠. 도시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로 다 되니까 지갑을 아예 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그렇고요."

주말에 고향 청성면을 방문한 이원효(34)씨는 현금 사용에 부정적이다. 옥천에 오면 오히려 세상이 수십 년 전으로 후퇴한 것같은 당혹감을 느낀다고. 일종의 '역체감'이다. 결국 금융에 신기술이 적용될수록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점점 커지고, 이는 농촌 금융을 '갈라파고스'로 만드는 암울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면 농촌도 변화를 피할 수만은 없다. 아날로그에 집착하다 디지털이 '시대 표준'이 된 세상에서 국가 경쟁력을 급격히 잃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 격차를 해소하고 기술 변화의 부작용을 줄일 정책과 대안 마련은 뒷전인 채 무조건 빠른 대응만을 채찍질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농촌에서 유일하게 대면 업무가 가능한 농협마저 없었다면 농촌 금융 생태계는 이미 완전히 붕괴했을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뒤처졌다는 이유로, 느리다는 타박으로 농촌 금융 격차를 정당화한다면, 결국 금융 범죄 피해 증가와 농촌 경제 붕괴라는 비싼 대가를 치룰지 모른다. 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은행이 꿋꿋이 남아 지점을 운영하고, 현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직원에게 통장을 맡기고 현금으로 버스요금을 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그것이 최소한의 '금융 참정권'인 사람들이 농촌에는 분명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옥이네 통권 62호(2022년 8월호)
글‧사진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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