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날리는 내륙을 벗어나 태평양을 마주하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32] 보석처럼 아름다운 에메랄드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

등록 2022.08.24 15:47수정 2022.08.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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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많이 찾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댐 전경. ⓒ 이강진

 
황량한 호주 대륙 한복판에서 흙먼지와 함께 오래 지냈다. 오늘은 지금 지내는 바칼딘(Barcaldine) 동네를 마지막으로 오지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목적지는 에메랄드(Emerald)라는 동네로 정했다. 인구가 1만5000여 명 정도 되는 큰 동네다. 또다시 지평선을 가로지르며 운전한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숲이 우거진 산봉우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나무가 울창한 산들을 만나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광야에 일자로 뻗은 도로가 아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산길을 새로운 분위기에 젖으며 운전한다. 높은 산을 오르나 싶더니 전망대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전망대에 잠시 주차했다.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산과 산 사이로 도로가 굴곡을 그리며 전개된다. 숲이 울창하다. 황량한 내륙은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풍경도 황량함과 대비를 이루며 또 다른 신선함을 선사한다.

에메랄드 동네에 들어선다. 오랫동안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던 전화와 인터넷도 마음껏 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쇼핑센터와 식당이 많아 좋다. 식사에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규모가 큰 야영장은 캐러밴을 가지고 다니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야영장 바로 옆은 잔디가 넓게 펼쳐진 골프장이다. 늦은 오후 한가한 골프장 잔디를 밟으며 걷는다. 식당에서 저녁도 해결한다. 오지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강이다.

다음날 느긋하게 일어나 새로운 동네에 도착하면 늘 하던 대로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나이가 많은 여자 직원 혼자서 근무한다. 며칠 이곳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하니 정보지 몇 개를 건네주며 가볼 만한 장소를 알려 준다. 보석 이름을 가진 동네 에메랄드는 1879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화와 과일 농사 그리고 사파이어 등 광산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무척 친절하다. 직업의식도 있겠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가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원이 추천한 안내소 뒤편에 있는 공원(Morton Park)을 둘러본다. 공원에 오래된 건물 서너 채가 보인다. 초창기 이곳에 정착해 지내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건물들이다.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교회 건물이 시선을 끈다. 초기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교회는 1884년부터 1977년까지 교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십자가는 보이지 않지만, 교회 종은 아직도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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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정착민을 위해 건립한 교회 ⓒ 이강진

 
건물들을 벗어나면 특이한 산책로(Mosaic Pathway)가 있다. 타일을 이용한 모자이크 작품 30여 점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모자이크를 감상하며 걷는다. 마을 초창기의 삶을 비롯해 미래의 모습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발아래 깔려있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음양이 그려져 있는 모자이크다. 요즈음 서양에서는 명상이나 요가 등 동양 사상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우리 동네만 해도 대문에 불상을 비롯해 동양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물질문명에 식상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로를 끝까지 걸으면 대형 이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젤에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걸쳐있다. 물론 모사품이다. 이젤 높이가 25m나 된다. 그림도 가로세로 7x10m 되는 대형이다. 남반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모사품이라는 설명이 있다. 해바라기를 재배하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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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개의 모자이크 작품이 널려있는 산책로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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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에서 가장 크게 제작되었다는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 ⓒ 이강진

 
가까운 곳에 있는 식물원(Botanical Garden)에도 가본다. 동네를 지나는 작은 강을 따라 조성한 식물원이다. 식물원 입구 공터에는 캐러밴 대여섯 대가 주차해 있다. 강이 내려 보이는 경치가 좋은 장소다. 유료 야영장과 같은 편의 시설이 없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장소다.

식물원에 들어선다. 강 옆으로 산책로가 계속된다. 언덕 위에는 이름 모를 꽃으로 가득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특별히 할 일 없는 여행객이다. 시간도 많다. 계속 걷는다. 특별히 바라는 것 없이 자연과 하나 되어 있는 지금이 좋다.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며 한가한 오후에 빠져든다.

다음 날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댐(Fairbairn Dam)을 찾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댐이다. 도로변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호주 내륙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과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농장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황량한 들판에서 풀 뜯는 가축만 보다가 초록색 우거진 과수원을 보니 좋다.

댐에 도착했다. 규모가 크다. 자동차로 댐을 건너니 전망대가 있다. 넓은 댐이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물은 적은 편이다. 이곳은 낚시터로도 유명한 것 같다. 큼지막한 물고기 조형물과 함께 이곳에 서식하는 물고기들 이름이 쓰여 있다. 저수지에는 작은 배 두어 척이 배회하고 있다. 낚시할 곳을 찾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작은 야영장도 있다. 내가 지내는 야영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 생활을 등진 외진 곳에 있는 야영장이다. 그런데도 야영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캐러밴이 많다. 잠시나마 문명 생활을 등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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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은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 이강진

 
하루가 끝나갈 무렵 시내를 찾았다. 화려한 조명으로 동네 중심가는 화려하다. 식당도 줄지어 있다. 오랜만에 불빛으로 요란한 거리를 걷는다. 현대인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모든 시설이 코앞에 있다. 문득 저수지에서 지내는 여행자 생각이 난다. 문명의 불빛과 떠들썩함 대신 적막함과 수많은 별이 주위를 감싸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간사한 것일까. 도시에 있으면 오지가, 오지에 있으면 도시의 번잡함이 그리워지곤 한다.

오늘은 내륙을 벗어나 태평양이 가로막은 해안으로 떠난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동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왔다. 따라서 근처의 유명한 관광지는 이미 둘러보았다. 올라오면서 들리지 않았던 동네에 있는 야영장을 알아본다. 그러나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지난번에 들렸던 예푼(Yeppoon)에 어렵게 한 자리 예약했다. 확실히 호주 동해안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흔한 표현으로 산 넘고 물 건너 동쪽으로 계속 운전한다. 광활한 지평선과 황량한 들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바다에서 가까운 대도시, 지난번에 지나쳤던 록햄톤(Rockhamton)에 들어선다. 교통이 혼잡하다. 오랜만에 섰다 가기를 반복하는 긴 자동차 행렬에 끼어든다.

드디어 태평양이 넘실거리는 바닷가 야영장에 도착했다. 오래된 야영장이다. 시설도 좋지 않다. 그러나 가격은 내륙에 있는 좋은 야영장과 다름이 없다. 이틀 정도만 지내고 떠날 예정이기에 불편한 시설에 신경 쓰지 않는다. 캐러밴 설치를 끝내고 야영장 주위를 걸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다음날은 무료함도 달랠 겸 지난번 기억을 되살려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항구에는 대형 요트를 비롯해 고깃배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언덕 위에 있는 공원에도 들렀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보는 풍경이지만 처음 보는 것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고 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이미 보았던 것에 대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를 유발하기에 꼼꼼히 살펴본다. 따라서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은 이미 보고 경험한 것은 대충 흘려보내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이론이다.

생각해 보면 어제와 같은 날은 없을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모든 사물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호기심 있게 볼 수 있는 순수한 시선을 간직하고 싶다. 하루하루를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항상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당에 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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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공원에서 바라본 예푼(Yeppoon) 바닷가 마을.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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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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