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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 지났는데 대기자 2만여명... 실제 있던 일입니다

명절 기차표 끊기 20년... 올해는 대학생 아들의 도움으로 편하게 예매 성공했습니다

등록 2022.09.06 17:23수정 2022.09.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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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짜증 나 이건 모바일까지 된다고 좋아했더니 접속자가 더 많나 봐요. 느려도 너무 느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서둘러 출근을 준비할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 시계의 초침을 들여다보고 있다. 남들처럼 유명한 공연이나, 콘서트 예매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예매 하려는 것은 기차표다. 매해 두 번의 명절에 맞춰 연중행사가 돼버린 명절 기차표 예매. 해마다 하는 예매임에도 늘 사소한 사건, 사고 등으로 번번이 진땀을 빼곤 한다.  

20년이 다 되어 가는 명절 기차표 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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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지난 명절 기차역에서 ⓒ 정지현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내게 기차라는 교통수단은 단순히 여행을 즐기기 위한 수단일 뿐 교통의 편의성 목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기차는 우리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차가 없던 우리에겐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할 때 가장 효율적인 교통 수단은 기차였다. 평소 여행용 기차 예매는 출발일 1~2주일 전에 예매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명절 기차표 예매였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만 접속해서 티켓 예매가 가능한 이유로 예매가 쉽지 않았다.

처음 명절표 예매 때엔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 당연히 원하는 시간에 표를 구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아이는 명절 연휴 하루 전 기차표로 부모님 댁에 먼저 내려갔다. 설상가상 난 명절 전날 임시 버스 편을 구해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예매일만 생각했지 예매시간을 고려 못한 결과였다.

어떤 날에는 제 시간에 예매 사이트를 접속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컴퓨터 시간이 문제였다. 7시 정각에 접속해야 했지만 내 컴퓨터 시간이 2초 정도 빨랐다. 당연히 초침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난 정각이 되자 마우스를 눌렀고 컴퓨터 화면에 대기 접속자 'OOO명'을 기대했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글씨는 '예매 시간이 아닙니다'라는 에러 메시지였다.


급하게 창을 닫고 다시 예매 버튼을 클릭했지만 화면에 뜬 접속 대기자의 수는 '2만 명'을 훌쩍 넘은 숫자였다. 4, 5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좋은 시간대에 티켓을 예매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컴퓨터 시간 동기화 문제로 원래 접속 시간보다 1, 2초 먼저 누른 것이 화근이었다. 덕분에 그날 아침 회사 출근은 사무실이 아닌 서울역으로 바뀌었다. 급하게 서울역으로 출근해 한참을 줄을 섰다 간신히 현장 예매를 하고 오전 늦게 출근할 수 있었다. 

회사 일이 한창 바쁜 시기에는 명절 예매도 부담이 컸다. 항상 예매하는 시간이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보니 예매가 조금만 늦어지면 지각은 불을 보듯 뻔했다. 명절 예매는 해야 했고, 회사 일이 많아 선배들 눈치를 볼 때엔 명절 예매 때문에 늦게 출근한다는 얘기를 할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내 손과 운을 믿고 명절 예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기 접속자가 몇 백명일 때는 평소같이 출근이 가능했지만 대기 접속자가 몇 천명만 되면 늘 불안감을 느끼며 화면을 들여다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줄어드는 대기자 수를 보고 또 봤다.

특히나 나는 명절에 내려가는 하행선과 집으로 올라오는 상행선 노선이 전혀 달라서 예매를 이틀에 걸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댁은 경부선에 있는 포항이었고, 처가는 강릉선이 있는 강원도였기 때문이다. 명절 예매일 기준으로 예매 첫날은 보통 경부선이고, 둘째 날은 호남선과 강릉선 등이다.

그러니 내려가는 하행선은 첫날 예매하고, 올라오는 강릉선은 둘째 날 예매다. 당연히 이틀을 지각할 수 있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란 게 '자주 하니 는다'는 말처럼 명절 예매도 점점 몸에 익고, 주변에서도 내 이런 개인사를 이해하는 분이 많아졌다.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동안 명절 예매를 하는 일이 없었다. 고향 어머니 집에서 모시던 명절 차례를 이젠 나와 아내가 직접 지내야 해서 명절에 고향집에 가지 않게 되어서다. 마침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지방에 계신 아버지도 서울로 올라오기를 꺼려하셨다. 당연히 명절이 아닌 날 아버지를 찾아뵙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명절이 아닌 다른 날 이동하다 보니 명절 예매처럼 치열함은 없었다.

수강신청 성공한 아들이 알려준 꿀팁

하지만 작년부터 다시 명절 예매일에 맞춰 또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다. 아버지의 역귀성과 명절 처가 방문을 목적으로 다시 예매 전쟁에 참전했다. 그래도 작년부터는 아내까지 함께 하고 있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컴퓨터 두 대까지 써서 적극적으로 표를 구하기 위한 전쟁에 나섰다.

아내가 함께하기 시작한 사연도 이젠 내가 나이가 들어 손도 느려지고, 감도 줄어서 매번 표를 구하는 게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여곡절이 있었던 적이 몇 번 있지만 십여 년을 혼자 그리 잘 예매했는데 이젠 나이 들었다고 신뢰가 떨어졌단다. 함께 해보니 아내가 확실히 나보다 손은 빨랐다. 작년엔 그렇게 아내 덕에 티켓 예매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 예매일이 다가왔다. 번번이 틀어지는 시간과 작아진 내 가슴 시계 때문에 올해 예매에도 고생을 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명절 예매만큼이나 어려운 대학교 1학년 수강신청을 경험한 아들이 있었다.

"아빠, 나 오늘 수강신청 완벽하게 했어요. 대학교 1학년이 공강일 만드는 거 어려운 거 아시죠. 내가 그 어려운 걸 했어요."
"오오, 대단하네 아들. 비결이 뭐냐. 아빠 내일 명절 기차표 끊어야 하는데. 도움 되는 노하우가 있으면 알려주라."
"사이트별로 서버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 접속해서 코레일 사이트 주소 넣고 그걸로 시간 확인하면 돼요. 아빠 번번이 시간 못 맞춰서 고생했잖아."


그렇게 아들이 알려준 사이트에 접속해서 코레일 웹주소를 입력했더니 서버 시간이 브라우저에 떡하니 나왔고, 내 컴퓨터 시간과 1초 이상 차이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이트 시간을 확인하며 정각에 예매 접속 시도를 했고, 내 손이 느려졌음에도 접속 대기자 순번은 2천 명이 넘지 않았다. 덕분에 올해엔 수월하게 티켓 예매를 할 수 있었다.

명절 예매 전쟁은 아마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늘 들지만 이렇게 어렵게 구한 기차표 덕분에 가족들이 편하게 만나고, 만나서 즐겁고 행복하니 그걸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요즘엔 대부분의 노선이 고속열차로 바뀌고 있지만 예전만 해도 새마을호를 타거나 또 어떤 날은 느림의 미학인 무궁화호를 탈 때도 있었다. 정말 여행 가듯이 고향 가면서 달걀도 까먹고 마주 보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여러 해였다. 이제 그런 풍경은 찾을 수 없는 추억 속 장면이지만 요즘도 그날의 귀성길을 종종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아버지도 건강하시고, 처가 부모님들도 계시니 명절 때 왕래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 더 이상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날이 최대한 더디고, 늦게 오길 바라지만. 올 추석에도 미리 예매한 기차 타고 아버지를 뵙고, 처가 부모님을 뵐 생각을 하니 한가위 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처럼 마음이 훈훈하고, 따뜻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추석 #예매 #가족 #명절 #기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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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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