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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소주 날랐는데... 하이트진로 수십억 손배·아파트 가압류"

[대우조선 파업 이후 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 "돈으로 무릎 꿇리려는 회사, 배신감"

등록 2022.08.31 13:31수정 2022.08.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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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업무방해 혐의로 부동산 가압류를 당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엄기용 조합원. ⓒ 유성호

 
"23년 동안 불평 한 번 안 하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만 했어요.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믿고 참았어요. 그런데 집을 가압류한다니…"

하이트진로 하청 화물 노동자인 엄기용(56)씨는 자신의 이름 석자가 적힌 부동산 가압류 결정문을 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결정문은 엄씨의 경기도 이천 아파트 부동산 중 1억 원을 가압류한다고 돼있었다. 엄씨는 하이트진로로부터 손해배상 소송·가압류를 당한 당사자다.

엄씨를 비롯한 130여 명의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은 지난 6월 2일부터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원청인 하이트진로는 파업에 참여한 하청 화물 노동자 25명을 상대로 55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들 중 일부는 부동산과 화물차까지 가압류됐다.

23년째 하이트진로에서 일해온 엄씨는 한 달에 150~25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엄씨는 보통 새벽 5시 반, 일이 많으면 새벽 3~4시에 출근해 이천 공장에서 경기·강원권 직매장까지 한 번에 2만 병 넘는 소주를 실어 나른다. 하루 평균 두세 탕, 많으면 네 탕을 뛴다. 월 매출은 800~900만 원대지만, 기름값과 차량 유지비, 통행료, 보험료 등을 제외하고 남는 돈은 최저 임금 수준이다. 운송료는 15년째 제자리라고 했다.

엄씨는 "원청인 하이트진로는 하청 화물 노동자들과 계약 관계가 없다며 교섭은 나 몰라라 하면서 손해배상소송·가압류는 직접 걸었다"라며 "앞뒤가 맞지 않다"고 했다. 화물 기사들은 형식상 임금 노동자와 비슷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회사와 근로 계약이 아닌 도급 계약을 맺어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다. 여기에 원하청 문제까지 겹쳐있다. 엄씨 역시 하이트진로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 '수양물류' 소속이었다. 하이트진로에는 수양물류 소속 500여 명의 화물 노동자가 있고, 그 외 2차 하청 업체들에 100여 명의 화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오죽 배고팠으면… 파업 석달 동안 이탈자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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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업무방해 혐의로 부동산 가압류를 당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엄기용 조합원. ⓒ 유성호

 
올해도 운송료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이트진로 하청 화물 노동자 130여 명은 지난 3월 노조를 설립했다. 70여 명은 수양물류, 나머지 60여 명이 2차 하청사 소속이었다. 이들은 이후 사측으로부터 모두 계약 해지됐다. 노조 파괴라는 게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노조 설립 후 현재까지 이탈자는 0명이다.

엄씨는 "회사가 집단 해고처럼 강경책을 쓰면 파업 도중 이탈자가 생긴다던데, 우리는 오죽 배고팠으면 130명 중 이탈자가 한 명도 없겠나"라고 했다. "회사가 개별적으로 '파업 풀면 봐주겠다'고 갈라치기를 시도하지만, 들어가서 일을 하나 차를 세우고 파업을 하나 큰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치매인 홀어머니를 돌본다는 엄씨는 "석 달째 일을 못하니 대출만 늘고 있다"면서도 지난 16일부터 16일째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판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4명의 동료들을 먼저 걱정했다. 엄씨는 "누가 하고 싶어서 파업하고 저 위험한 데 올라가나"라며 "우리도 일을 하고 싶다. 추석엔 모두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씨를 29일 고공 농성장이 올려다 보이는 서울 강남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만났다.

"23년 소주 날랐는데… 돌아온 건 수십억 손배소에 아파트 가압류"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23년 소주 날랐는데... 돌아온 건 수십억 손배·아파트 가압류" ⓒ 유성호

 
  - 부동산 가압류 결정문을 받은 건 언제였나.

"법원 서류에는 6월 23일 결정된 것으로 나오는데 조금 더 지나서 알았다. 내가 집에 없을 때라 아내가 전달 받았다. 놀라서 걱정하는 아내에게 '별 거 아니다'라고는 했는데. 나도 보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눈앞이 캄캄했다. 제가 회사에서 1, 2년 일한 것도 아니고 23년째다. 회사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25년 전에 아내와 열심히 일해 분양 받은 내 소유 첫 집이다. 지금 집 시세는 한 2억 조금 안 될 것 같다. 집이 가압류 잡히면 당장 대출도 제한되고 매매도 막힌다는데. 사실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다. 동료들 마음 약해질까봐 얘기는 안 하지만… 회사에 배신감이 크게 든다."

- 손배·가압류 대상이 된 이유는.

"노조에 직책을 맡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집회할 때 마이크 몇 번 잡았던 게 전부다. 내가 포함된 건 11명 대상 27억 원짜리 1차 손배소다. 처음엔 5명 상대로 5억이던 게 나중에 그렇게 늘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동료 14명을 대상으로 27억 원짜리 2차 손배소가 하나 더 청구됐다더라. 회사는 추가 피해에 대해서도 더 신청하겠다고 하고 있다. 파업했다고 거액을 들이미는데, 평소 우리가 일한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뜻 아닌가?"

- 손배 대상이 된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나.

"말해 무엇 하나.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금액인 걸. 속만 아프다. 다들 어이 없어 할 뿐이다. '이걸 어떻게 나눠서 낸다' 이런 얘기 할 처지도 아니고. 농으로 '우린 어차피 뺏길 것도 없다', '뺏길 재산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 친구는 화물차가 전 재산이라더라. 20년 넘은 차라 지금 팔아도 1500~2000만 원 밖에 못 받는다고. 그런데 27억? 웃음 밖에 안 나온다."

- 부동산 대신 화물차가 가압류 된 노동자도 있다.

"산 지 얼마 안 돼서 가격대가 좀 나가는 화물차들이 주로 잡힌 것 같다. 내 14톤 화물차는 2007년부터 탔다. 오래 돼서 돈이 안 된다. 2007년에 샀을 때 차 가격이 7000만 원 정도였다. 지금은 2억 원 정도까지 올랐다. 세 배나 오른 거다. 그런데 그 사이 운송료는 그대로다. 이게 말이 되나. 차를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꾼다. 차 사면 당장 5년에서 10년은 차량 할부금으로 다달이 수백만 원이 나갈 텐데. 정말 폐차 수준 아니면 새 차 못 뽑는다.

차가 오래 되면 고장이 자주 난다. 화물차는 일반 차량과 다르게 점검 한 번 받으면 기본이 100만 원, 사고라도 나면 1000만 원부터 시작한다. 1년에 사고 두 번 나면 사실상 그 해는 공친다는 얘기다. 사고 안 나길 빌면서 다닌다. 허구한 날 공업사 가서 차 고치고 있으면 그날은 돈도 못 벌고.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오래된 차를 몬다."

- 손배·가압류를 낸 주체가 수양물류 등 하청 업체가 아닌 원청인 하이트진로다.

"그렇다. 교섭을 해도 회사는 아직도 하이트진로에 물어봐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원청인 하이트진로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하이트진로는 우리가 자신들과 계약 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안 지려 한다. 그래 놓고 손배·가압류는 우리에게 직접 걸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 최근 대우조선해양도 파업을 했던 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배소를 내 논란이 일었다.

"우리도 그렇고, 돈 많은 사람들이 돈 없는 사람들을 돈으로 꿇어 앉히려는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이 알까. 우리도 좀 살려달라고 외친 것뿐인데…"

"새벽 5시 반부터 일… 월 급여는 150~25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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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업무방해 혐의로 부동산 가압류를 당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엄기용 조합원. ⓒ 유성호

 
- 언제부터 하이트진로에서 일했나.

"2000년부터다. 우리 조합원 중에 37년차, 38년차도 있다. 내가 50대 중반인데,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 60대 이상도 많다."

- 지난 3월 노조를 설립하고 6월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이유는.

"도저히 생활이 안 돼서다. 회사가 어느 정도만 우리 얘길 들어줬어도 차까지 세우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는 지금껏 군말 없이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 다음에 올려준다는 말만 믿고,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했다. 그렇게 참은 세월이 어느덧 15년이다. 15년 전 단가와 똑같은데 어떻게 살겠나. 다른 주류업체와 비교해도 그렇고 화물차 일하는 곳 중에 하이트진로보다 단가 낮은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 현재 급여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많이 버는 달이 200~250만 원 정도다. 적게 버는 달은 100~150만 원이다. 운송료는 양과 거리에 따라 계산된다. 순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새벽 5시 반이면 출근한다. 미리 상차가 돼있는 날이면 한 탕이라도 더 뛰려고 새벽 3시, 4시에도 나온다. 단가가 안 맞으니 탕수라도 늘리려는 거다. 한 번에 팔레트 20개를 싣는다. 팔레트 1개에 소주 30병 들이 박스가 36개 들어간다. 소주 2만 병 넘는 양이다.

예전에는 팔레트 18개만 실었다. 과적에 걸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단가가 안 맞으니 한 번 나갈 때 무조건 많이 싣게 된다. 팔레트 20개면 과적이 간당간당 하다. 나도 두 번 정도 걸렸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배차에 따라 다르지만 이르면 오후 4~5시, 늦으면 오후 6~7시까지 하루에 두세 탕, 많으면 네 탕을 뛴다."

- 한 탕 운송료는 얼마나 되나.

"이천 공장에서 소주를 싣고 주로 성남, 양주, 하남, 북의정부, 화성, 평택 등 서울·경기권이나 강릉, 춘천, 원주 등 강원권으로 운행한다. 보통 이천에서 하남까지 다녀오면 운송료가 12~13만 원이다. 양주에 다녀오면 16~17만 원이다. 매출을 월 단위로 한꺼번에 받는데, 한 달에 800~900만 원 정도 된다. 거기서 기름값 400만 원 넘게 나가고 통행료, 차량 유지비, 수리비, 주차비, 보험료 빼고 나면 말했던 것처럼 150~250만 원 남는다. 최저 임금 수준이다."

"원청인 하이트진로, 교섭 책임 피하면서 손배소는 직접… 극단으로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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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세 달째 월급이 없으니 대출로 버티고 있다. 지인들한테도 빌리고… 그나마 딸, 아들 모두 독립하고 직장 다녀서 망정이지, 아직 자식들 키우는 집은 너무 힘들 거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조합원 중에 파업 풀고 개별적으로 이탈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왜 그럴까.

운송 단가가 아주 배고픈 정도만 아니었어도 벌써 빠지는 인원이 생겼을 거다. 실제로 회사에서 따로따로 연락해서 '지금 파업 풀면 봐주겠다'고 회유한다. 워낙 배고프니까 안 통하는 거다. 들어가서 일을 하나, 파업을 하나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 차 굴렸다가 조그만 사고만 나도 그 달은 오히려 마이너스이지 않나."

- 고공 농성도 15일째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밑에 있는 사람들은 편하지, 옥상에서 버티는 동료들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이제 날씨도 한밤에 쌀쌀하고 오늘(29일)처럼 비라도 오면 피할 데도 없는데… 이천에서 밥을 지어와서 점심, 저녁 하루 두 번 식사를 올린다. 처음엔 많이 부실했는데 그래도 여기저기서 보내주신 연대기금 덕분에 요즘은 식사도 많이 좋아졌다. 그나마 다행이다.

마음 같아선 농성장을 계속 지키고 싶은데 치매가 있는 어머니가 계셔서 저녁이면 이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위에 있는 동료들 생각하면 돌아가는 길이 영 편치 않다. 어머니가 혼자 사시는데 3년 전부터 치매가 심해지셨다.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떨어져 내가 시골집에 들어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낮에는 간병인이 있는데 저녁에는 내가 꼭 집에 있어야 해서..."

- 사측 입장엔 변화가 있나.

"오늘도 교섭에 진척이 없었다고 들었다. 목요일(9월 1일)에나 다시 보자고 했다더라. 회사가 정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제 곧 명절도 다가오는데 언제까지 시간을 끌겠다는 건지…

우리도 일하고 싶다. 우리가 평생 나른 소주다. 우리 파업으로 그 소주를 불매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보는 우리 심정은 어떻겠나. 마음이 찢어진다. 회사는 강자고 우리는 소수 약자 아닌가. 강자가 베풀어야 하는데 오히려 회사가 손배·가압류까지 걸고 우리를 극단으로 몬다.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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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 업무방해 혐의로 부동산 가압류를 당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엄기용 조합원. ⓒ 유성호

  
[관련 기사]
"하이트진로의 '끔찍한' 손배소, 전세계 화물 노동자 분노" http://omn.kr/20f3w
"11년차 월급이 150만원"... 강물에 뛰어든 화물 기사들 http://omn.kr/205jw
[대우조선 파업 이후 ④] "인력난이라면서.. 해고와 손배 5백억에 환멸" http://omn.kr/20ekd
#하이트진로 #하청 #화물노동자 #손배가압류 #가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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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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