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멀리하던 내가 변한 이유

등록 2022.09.13 10:51수정 2022.09.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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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주는 선물 ⓒ Paige Cody, Unsplash


글을 쓴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나는 그렇게 책을 가까이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최근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해커스 토플 보카(영단어책)'를 흘려가며 얘기했을 뿐이다. 왠지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무언가 다가가기 무섭다는 생각이 느껴지기도 했다. 


독서에 관심을 가진 건 조카가 태어나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우리 집안에서 책을 좋아하는 작은 생명체가 태어난 것이다. 엄마라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기저귀를 차고 포동포동한 미쉐린 모습을 한 조카는 책을 치즈 다음으로 좋아했다. 나를 보면 이내 동화책 하나를 낑낑거리며 가져와 읽어달라며 기저귀찬 엉덩이를 엉거주춤 내 얼굴에 가져다 대며 양반다리를 한 내 무릎 위에 앉기 일쑤였다. 

그림을 따라 내려가며 한 자 한 자 동화책을 읽어주는 내내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책이 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해 멀어져만 갔던 독서의 기쁨을 그제야 좋은 것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말이 있듯이 작은 생명체로부터 독서라는 새로운 세계로 발걸음을 어렵지 않게 들이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책과 가까이 또 다른 순간은 바로 글을 쓰고 난 이후다. 무언가 몰입해서 나의 글을 생산해내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 다른 작가들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오타 하나만 보고 잘못 쓴 글이네, 라고 덮어버렸던 내 손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무엇보다 변하지 않을 줄만 알았던 세상이 달라 보였다. 누군가의 글이 눈에 들어오고, 좋은 문장은 새기려 따로 필사를 하고, 나도 무언가를 써보자, 하는 글감이 떠올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책 읽는 게 스트레스였다면 이제는 즐기며 어떤 좋은 표현이 나올지 찾는 재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책들이 바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주는 위안, 가족의 성취, 전쟁의 고통, 기억의 지혜를 입증하는 저자들의 말이다. 기쁨과 눈물, 즐거움과 고통, 모든 것이 보랏빛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나에게도 세계관이 있다


책과 함께 마주하면 우리 안의 온갖 감정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방 안에 앉아있는 나에게 한없는 기쁨을 안겨다 줄 수도 있고, 주인공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느끼는 절망, 또는 회복을 통해 전해지는 또 다른 감정이 든다. 이 모든 감정은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다가온다. 이런 경험은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고 생각에 갇히지 않게 만들며 간접경험을 하게 해 준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권태로울 때 쉬이 무기력해지기 쉽다. 그럴 때 한 구절이나 심오한 문장을 읽으면 이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준다. 오래된 고전을 꺼내 읽어보아도 저자의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생기를 얻는다. 어쩌면 독서는 무기력한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 부스터일지도 모를 일이다. 

책과 만나면 이렇게 수많은 감정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내 안에 일어나는 순수한 생각에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가고 있는 길, 걸어갈 길을 대입시키며 나만의 세계가 드넓게 펼쳐지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잃어버렸던 영혼이 그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 내면의 힘으로부터 샘솟게 된다. 책은 그 자리에 앉은 나에게 단시간에 수많은 경험을 선물해 준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독서 #책 #세계관 #에세이 #일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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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외유내강인 여행작가. 낯선 도시를 탐닉하는 것이 취미이자 일인 사람.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여행 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학 교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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