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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첫 공개변론에서 '아동성착취물론' 내놓은 법무부

위헌 여부 놓고 3시간 찬반 격돌... 청구인측 "말조차 금지되면 내심 형성될 수 없어"

등록 2022.09.16 11:48수정 2022.09.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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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제2조 1항과 제7조 1·3·5항의 위헌 여부 심리 공개변론 시작에 맞춰 대심판정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공동취재사진


2012년 한 20대 사진가는 북한 매체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글을 공유했다가 구속돼 2년 넘게 재판을 받았다. 2014년 재미동포 신은미씨는 한 통일 관련 행사에서 방북 경험담을 언급했다가 수사를 받고 강제 출국돼 이후 5년 간 입국 금지 조치로 한국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2021년 한 30대 시민단체 활동가는 대학생이던 10여년 전 통일운동 참가 이력을 수사기관이 갑자기 문제 삼으며 재판에 넘겨졌다. 2022년 고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의 항일투쟁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한 출판사 대표가 두 번이나 압수수색을 당했다.

죄목은 모두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 "국가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사정이나 정황)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1항)나 "이를 목적으로 한 이적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5항)는 7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는 죄다.

이를 두고 15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과도히 침해하는 위헌적 법률"이라는 주장과 "찬양·고무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기에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행위"라는 주장이 3시간 넘게 맞부딪쳤다. 국보법 제7조 1항·5항 등의 위헌성 여부를 심리하기 위해 헌재가 주최한 사상 첫 공개변론 자리다.

헌재는 2017년 수원지법, 2019년 대전지법이 낸 위헌법률심판제청과 개인 헌법소원 등 사건 11건을 병합해 국보법 7조의 위헌성을 심사 중이다. 7조가 헌재 위헌 심판대에 오른 건 1991년 법이 개정된 이후 8번째로, 앞선 7번의 심판은 모두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이적 행위 규정이 불명확해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점, 관련 책을 가진 것 자체로 이적성을 규정하는 등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과잉 침해한다는 점, 수사기관·법원의 7조 오·남용이 계속된다는 점, 헌재가 국보법 개정·폐지를 권고하는 국제인권조약도 심판 기준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 뿐인 안보 위협... 위협 현존·구체성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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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예정된 가운데,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청구인 측 신윤경 변호사는 7조가 목적의 정당성과 침해 최소성을 모두 갖추지 못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과잉금지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의 목적이 정당한지(목적의 정당성), 목적 달성을 위해 택한 방법이 적합한지(수단의 적합성),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인지(침해의 최소성), 보호하려는 공익이 침해되는 사익보다 더 큰 지(법익의 균형성) 등 4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갖추지 않으면 위헌으로 보는 헌법상 원칙이다.


신 변호사는 자유권을 제한할 땐 국가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구체적 위험'을 충분히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들었다. "위험의 명백성 뿐 아니라 구체적인 위험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임박했는지 증명돼야 함에도, 국보법은 현존하는 위험도 없는데 표현이 적극적이거나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표현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7조 위반으로 국가 안보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시각은 "추상적이고 말 뿐인 위험"이라고 했다. 특히 이적표현물 반포·판매와 달리 제작·수입·복사·소지·취득 등은 행위만으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창출된다고 볼 수 없어 이를 제한할 필요성도 없다고 강조했다.

조지훈 변호사는 "현재 남북한의 군사력·경제력은 수십 배 정도로 차이 난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라며 "현 시점에선 사실상 체제 경쟁이라는 말도 성립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상당히 많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눈에 안보여도 잠재 위험 막대"

법무부 측은 "이적행위로 인한 위험은 당장 가시적이지 않아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전쟁 등 위험이 현존하는 단계에선 막대한 피해가 초래돼 공권력 개입이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또 "일각에선 북한의 위협이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그건 현실을 도외시한 판단"이라며 "올해 5월에도 특수부대 소속 현역 육군 대위가 북한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북한의 안보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적표현물 소지·취득 자체가 어떤 위험을 내포하느냐는 재판관들 질의에 법무부는 "이적표현물은 단순 표현물이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표현물"이라며 "오늘날 기술 발전과 SNS 환경 등을 종합하면 이적표현물을 소지하는 위험성은 결코 마약류나 불법무기 소지보다 낮다고 보기 어렵고, 음란물, 아동성착취물도 소지 그 자체로 처벌한다"고 주장했다.

한 재판관은 이후 "표현물인 책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자신이 소유하는데, 내심에서 일어나는 양심 형성의 자유를 넘어서 양심 실현의 자유로 볼 수 있는 것이냐"는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양심 형성은 국가 개입 못할 절대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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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예정된 가운데,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교육센터 대표인 이정희 변호사(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방청을 위해 헌법재판소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신 변호사는 7조의 불명확성이 인간의 절대적 기본권인 내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도 밝혔다. "양심 형성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자체로부터 도출되는 본질적 내용"이라며 "실현을 허용받지 못한 양심과 사상은 온전히 형성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고, 말조차 금지되면 내심은 형성될 수도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국보법은 표현물의 제작부터 수입, 복사, 소지, 취득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데다 몸짓, 박수, 경례 등 비언어적 표현 행위 및 내심의 영역에 속한 동조 행위까지 처벌대상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훈 변호사는 이어 "소지, 취득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수사기관이나 법원이나 그의 내면을 추단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며 "어떤 생각으로 이걸 만들었는지 집요하게 묻는 것 자체가 양심 형성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청구인 측은 7조가 불명확한 법조항으로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도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범죄 행위와 형벌이 무엇인지를 예견하고 그에 따라 자기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범죄 구성요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원칙이다. 국보법 7조의 모호한 규정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지나치게 열어 뒀다는 것이다.

법무부 "군사정권 시절 아냐, 오·남용 통제"

반면 법무부는 "입법취지를 벗어나는 확대해석이나 법적용에 자의적인 판단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990년 헌재가 최초 한정합헌 결정을 낼 때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사정이나 정황)을 알면서"라는 찬양·고무죄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을 전제했는데, 이후 법 개정으로 이 문구가 7조에 반영됐으며 수사 실무와 법원 판결에도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과 달리 국보법 오·남용은 잘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근거로 검찰이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한 인원이 2013년 197명, 2014년 83명 등으로 지속 감소해 2019년 15명, 2020년 26명, 2021년 41명 등을 기록했고, 불기소 인원수는 2013년 25명에서 2014년 134명, 최근 2020년 137명 등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청구인 측은 이에 "여전히 오남용 사례는 많다. 10년전 동아리 활동을 이유로 기소하고 노래제창을 동조행위로 처벌하기도 했다"며 "기소건수가 적다면 국보법 7조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문제도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헌재, 국제 인권 기준 반영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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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예정된 가운데,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도로 건너편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끝으로 UN 자유권위원회 조약 등 국제인권조약에 준헌법적 위상을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청구인 측 서채완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의 심사 기준은 모든 헌법적 관점에서의 심사이므로 국제조약도 위헌심사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 변호사는 "7조는 자유권규약, 고문방지협약, 사회권규약 등 국제인권규약에 명백히 위배되며, 국제 조약기구, 유엔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들이 1992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 특히 제7조의 폐지를 촉구했다"며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가 비준·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무가 있고, 위헌심사 권한을 가진 사법부로서 잘못된 법을 바로잡아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청구인 주장은 헌법 학계의 통설, 헌법 조문과도 배치된다"며 "자유권 규약은 헌법 6조상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으로 보기도 어렵다. 자유권 규약은 존중하고 숙고해야 할 대상이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밝혔다. 
#국보법 공개변론 #찬양 고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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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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