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 수 없게 만든 세상에 책임을 묻다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함께 외치는 "다르게 살자"

등록 2022.09.20 09:17수정 2022.09.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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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두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과 하이트진로 화물운송노동자들의 투쟁이 사측과의 합의로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김형수 지회장의 22일 단식 끝에, 하이트진로는 25일의 고공농성 끝에 사측으로부터 요구의 일부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극단적 투쟁이 아니면 사측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서글픈 노동현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합의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게 된 핵심적 문제를 다 풀어내지는 못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운송노동자 모두 임금이 문제였는데, 이번 합의의 쟁점은 투쟁 이후에 발생한 사법적 처벌과 조합원 해고였다. 

극단적 투쟁을 계속해도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사업장도 많다.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은 임종린 지회장이 53일 단식을 했고, 5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시작해 최유경 수석부지부회장이 마지막까지 남은 40일 집단단식도 했다. 그러나 SPC그룹은 사회적 합의이행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의 핵심사항인 본사와 자회사 간의 동일임금 지급을 입증할 자료조차 내놓길 거부하는 실정이다. '노조파괴'의 대명사인 삼성전자는 해고자인 정우형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공식 입장조차 내질 않고 있다.

이러니 한국사회 노동자들은 더욱 극단적 투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애초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과 하이트진로 화물운송노동자들은 각각 단식과 고공농성 전에 이미 '옥쇄파업'과 '장기파업'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극단적 투쟁에 내몰리는 노동자들

'조선산업 불황시기 삭감된 임금회복', '유류비 인상으로 인한 운송료 인상', '사회적 합의 이행', '해고자 복직'과 같은 상식적이고 합리적 요구조차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면 관심조차 얻지 못하는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그나마 이를 통해서도 요구가 관철되거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손해배상청구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 할 수 있는 합법적 장치가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본은 노동자들의 투쟁은 손쉽게 무력화하면서 노동자와 시민을 상대로 엄청난 이윤을 뽑아내는 중이다. 유류비 상승으로 인해 화물운송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는 동안,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정유회사는 유가 상승분보다 더 많은 가격인상으로 폭리를 누렸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국내 4대 정유회사는 이미 올해 상반기에만 작년 한 해 수익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유류비 상승으로 발생한 사회적 피해를 정유회사에서 운송회사로, 운송회사는 다시 운송노동자에게 전가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해 불황기를 버티고 다시 호황을 맞은 대우조선은 기존 노동자들의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며 엄청난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하청 노동자들의 도크점거 파업으로 발생한 파업에 엄살을 부리는 중이다. 심지어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우조선 분리매각 계획 등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쟁의행위가 불가능하도록 책임의 경계는 모호하게, 노동자 간의 경계는 더 명확하게 하겠다는 속셈이다.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극단적 투쟁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노동자의 '준법정신'이다. 이는 세상을 합법과 불법으로만 재단하던 검사 출신 대통령의 한계로 지적되곤 하지만, 오히려 법은 사회정의를 집행하는 것으로, 정부가 대변하는 정의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물어야 한다. 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보장이 경제성장을 발목 잡는다는 자본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따져보아야 한다.

게다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감옥에 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사면한 뒤,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일정에 동석시킨 윤석열 대통령에게 과연 사법정의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자들의 극단적 투쟁에 대화조차 하지 않으며 불법행위로 매도하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극단적 투쟁은 반복될 것이다. 그런 투쟁들은 대부분 불법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엄벌에 처하고, 보다 큰 사회적 책임을 진 자본이 벌인 불법은 처벌하지 않는다면 합법과 불법은 무엇이고, 이를 판단 내릴 정의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사회구조를 개인의 능력차이로 만들어 차별을 합리화

사실 최근 한국사회는 '정의'의 부재를 시대적 화두로 삼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공정성 담론'이 그 가장 강력한 예시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성 담론'을 시대정신으로 삼는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하기도 했고, 젊은 사무직 고연봉 노동자들은 성과에 기초한 분배를 요구하며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다.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구호의 단순함과 기존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결합되어 '공정성 담론'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공정성 담론'이 정말 새로운 정의담론으로 자리잡게 될지는 의문이다. '공정성 담론'은 능력에 따른 분배보다 능력에 따른 차별의 의미로 사용되며, 자산, 학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기회의 차이를 개인 능력의 차이로 환원하고 있다. '공정성 담론'의 함정은 사회적 정의의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해서, 결국 개인의 능력차이로 마무리되는 이상한 논리전개에 있다.

노동자들의 극단적 투쟁을 두고 '공정성 담론'과 윤석열 정부의 '준법정신'은 올바른 해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돌릴 순 없지 않은가. 더불어 이 가난을 하청, 특수고용과 같은 '합법적' 노동구조로 합리화할수록 노동자들은 극단적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의의 공백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바로 노동자들이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극단적 투쟁이 사회적 피해를 야기한다지만, 사실 노동자들은 제 몸을 희생시켜가며 사회적 정의의 빈 곳을 채워가는 중이다.

"이대로 살 수 없다"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외침은 오늘날 극단적 투쟁으로 내몰린 모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다. 법대로 살았더니 돌아오는 건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다. 이대로 살 수 없게 만든 세상에 책임을 묻는 말이다.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들어 부자들의 배를 불리는 세상,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외침에 우리라도 대화를 시작하자. 그 첫 번째 응답으로 "다르게 살자"라고 함께 외쳐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김건수 님입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파리바게뜨 노동자 #김건수 #김용균재단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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