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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덕 기자'가 직접 가본 한국사시험 유적지 545곳

김종훈 기자가 쓴 <한국사로드 1>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등록 2022.10.03 11:47수정 2022.10.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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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역사, 특히 한국사에 관심이 많았다. 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서사가 어린 나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국영수 시간엔 졸았어도 국사 시간만큼은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칠판을 응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때는 2006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우연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아래 한능검)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때는 '한능검'이라는 시험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을 때였다. 수험서도 없어 학교에서 쓰던 중학용 국사교과서 한 권만 달랑 읽고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취득한 4급 인증서를 학교에 제출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한능검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생활기록부에 반영하기는 좀 힘들겠다"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후 학부와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하게 되면서 한능검을 볼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매일 보는 게 역사책이고 논문인데 굳이 한능검 인증서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한편으로 명색이 전공자인데 '그깟 한능검쯤이야...'하는 오만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다 최근 우연히 한능검 기출 문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문제들이 너무나도 난해했던 것이다. 명색이 전공자인데도 긴가민가하는 문제들이 상당했다. 고백컨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당장 시험을 치른다면 나 역시 고득점을 장담하기 힘들 것 같았다.

문제가 어려워진 만큼, 한능검 공부가 너무 어렵다는 사람들의 아우성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역대 왕의 계보며 연표며 유물들까지 외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점을 들어 역사는 어렵다고 푸념한다.

안타깝지만 역사 공부에 있어 어느 정도 암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 의미와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숫자와 이름을 암기하기에만 바쁘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역덕 기자가 안내하는 역사의 현장

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한국사로드>라는 책이 눈길을 끈다. '한국사 여행 스터디 가이드북'을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역덕(역사덕후)으로 살고 있는 현직 기자가 한능검 속에 등장하는 역사유적지 545곳을 직접 답사한 뒤 써내려 간 답사기이다.

<한국사로드>는 고대·중세·근현대 총 3부작 시리즈로 기획됐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고대사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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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로드> 1권 표지 ⓒ 텍스트CUBE


저자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는 실제로 한능검을 수차례 치렀다고 한다. 시험을 치르면서 한능검이라는 시험의 의미를 깨달았고, 한능검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유물과 유적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역사 공부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그 재미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시험을 치를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짙어졌고, 나만의 역사의식과 주관이 완성됐다. 무엇보다 시험을 통해 내 삶의 만족감이 엄청나게 커졌다. 그러니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이 좋은 걸 어찌 나 혼자만 알 수 있나'라는 생각과 함께." (6쪽)

그래서 저자는 한능검을 준비하는 이들이 좀 더 재밌게 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사로드>에는 수험서에는 담겨있지 않은, 농밀한 스토리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역사에 대한 관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혹 한능검을 준비하면서 구석기시대를 공부할 때 등장하는 '주먹도끼'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78년 4월 경기도 연천 한탄강 주변에서 한국인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주한미군 그렉 보웬은 '양쪽 면이 뾰족한 날카로운 돌'을 발견했다. 이른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의 발견이었다.

연천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까지 학계에서는 아시아 지역은 주먹도끼보다 후진적인 형태인 '찍개'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있었다. 반면에 서양은 그보다 선진적인 주먹도끼 문화권에 속해 있다고 보아 동·서양의 문화적 수준차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웬의 발견으로 아시아 지역 구석기문화에 대한 학설은 새로 쓰이게 됐다.

이런 스토리를 알고 나면 그저 '외워야 할 유물 1' 정도로 생각되던 주먹도끼가 다른 관점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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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한 그렉 보웬 ⓒ 텍스트CUBE


저자가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느낀 감상은 역사의 생생함을 전달해준다.

인스타 성지로 유명한 연천 임진강 '호로고루'. 매년 가을이면 꽃 축제가 열리면서 만개한 해바라기를 감상하러 온 젊은 연인과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곳 역시 남다른 역사적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은 알까? 이곳 임진강 호로고루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피 튀기며 싸운 최전선의 각축장이었다는 사실을. 삼국이 임진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 물리는 접전을 이어갔다." (114쪽)

실제로 백제 전성기인 4세기부터 5세기 중반까지 호로고루는 백제 땅이었고,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임진강 유역에서 백제군을 대파한 뒤부터는 고구려 영토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6세기부터는 신라 진흥왕이 임진강 일대를 점령하면서 고구려와 신라 양국이 국경을 마주했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저 푸르디 푸른 호로고루의 청보리밭도, 만개한 해바라기조차도 역사의 무상함을 더해주는 무대 장치처럼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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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성지인 '연천 호로고루'의 해질녘 모습 ⓒ 김종훈


"일생에 한 번은 역덕이 되라"

이 책은 '전국민 역덕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한 책이다. 책의 메인 카피 역시 "일생에 한 번은 역덕이 되라"이다. 역덕이 되면 뭐가 달라질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역덕이 되면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 새로운 발견이 삶을 좀 더 흥미롭고 풍만하게 만들어준다. 이는 이미 역덕으로 살고 있는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사로드>를 읽으면서 아직 나는 역덕력이 많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학부 시절 봄·가을마다 국내 답사를, 방학 때마다 해외 답사를 다니면서 웬만한 역사적 현장은 다 가봤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생소한 지역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언젠가 배낭 한 번 메고서 <한국사로드>가 안내하는 역사의 현장을 걸어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고 탄생할 또 다른 '역덕'들과 함께 말이다. 아참, 한능검 1급 도전도 버킷리스트에 슬쩍 올려두었다.

한국사로드 1 -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김종훈 (지은이),
텍스트CUBE, 2022


#한국사로드 #임정로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김종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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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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